천계살의 블랙 앤 화이트 시리즈 66
나카마치 신 지음, 현정수 옮김 / 비채 / 2015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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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래전 소설들을 읽다보면 그 당시 시대상을 알 수 있게 된다. 소설이란 공간적 배경과 시간적 배경을 바탕으로 하고 그 속에서 벌어지는 사건을 그리고 있으므로 아무래도 작가가 살고있 는 그 당시 시대상들이 잘 드러나기 마련이다. 판타지라던가 sf소설처럼 전혀 다른 배경을 바탕으로 하고 있다면 조금은 덜하겠지만 말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오랜전 쓰여진 작품에도 불구하고 그 내용이 탄탄해서 배경은 다르지만 지금 읽어도 어색함이 없이 읽혀지는 책들이 있다. 아마도 이 책이 그러한 경우일 것이다.

 

[모방살의]란 제목의 책으로 처음 알게 되었던 작가의 책이다. 서술형트릭을 좋아하는 독자들의 사랑에 힘입어 입소문을 타고 알려졌던 작품. 그 역시도 오래전 작품이지만 그것을 알아본 독자들의 성원에 의해서 재출간되었었다.  같은 작가의 그 다음 책이다. 이 역시도 작가가 처음에 썼던 원제와는 다른 제목으로 바뀐채 출판이 되었다. 별개의 작품이지만 제목만으로는 시리즈 같은 느낌의 작가의 작품. [모방살의]를 시작으로 [천계살의], [공백살의], [삼막살의], [추억살의]까지 여러편의 살의들이 줄지어 있다. '신인상 살인사건'이었지만 '모방살의'라는 제목으로 바뀐 경우는 원제 자체가 약간은 사람들이 짐작할 수 있어서 바꾼 것이 아닐까.

 

이 책의 원제는 '산책하는 사자'였다. 산책하는 사자. 사자가 우리가 알고 있는 그 동물을 의미하는지 아니면 저승사자 할때의 그 사자를 의미하는지 자세히 알 수는 없지만 같은 작가의  다음 작품이라는 점을 감안해 볼때, 그리고 서술트릭을 활용한 작품이라는 점을 보았을때 '천계살의'라는 이름의 살의 시리즈가 훨씬 더 나은듯이 느껴지는 것도 사실이다. 여섯편의 장편 중 두편을 본 느낌으로는 여섯편의 살의 시리즈가 완성되면 다 모아 놓은 후 시간을 두고 여러번 반복해서 읽어보고 싶은 느낌이 든다.

 

모방살의도 그랬지만 이 책 또한 처음 읽었을때의 느낌과 어떻게 해서 일이 벌어진 것인지 다 알고난 이후의 느낌이 전혀 다르다.  처음 읽었을 때 캐치하지 못했던 것을 다시 읽을 때는 알아낼 수가 있다. 그냥 별거 아니라 생각하고 간과하고 넘어갔던 부분이다. 모방살의에서의 날짜라던가 이번 책에서의 숫자라던가 하는 부분이다. 신경쓰고 보지 않으면 놓치게 된다.

 

모방살의에서는 작가가 중심인물이다. 신인상을 탔던 작가의 죽음. 그리고 그의 죽음에 얽힌 미스터리. 이번에도 역시 작가가 중심인물이다. 전편과 비교해서 다른 점은 전편에서는 작가가 중심인물이고 그 사건이 벌어진 후 그 사건을 알아내려는 일종의 다큐 작가가 등장해서 작가중심주의로 이야기가 펼쳐졌다면 이 이야기는 작가와 그 작가를 담당하는 편집자 그리고 그 작가가 원하는 이야기를 부탁한 작가 겸 배우 중심으로 이야기가 펼쳐지게 된다.

 

능력있는 편집자인 아스코는 어느날 전화를 한 통 받게 된다. 데뷔당시부터 화려했던 작가였지만 발전이 없다는 핑계로 자신이 거절을 했던, 그 이후로 뛰어난 작품을 보지 못했던 야규 작가의 전화이다. 그는 자신이 특이한 작품을 썼다면서 잡지 [추리세계] 편집부 소속인 그녀에게 읽어봐달라고 부탁을 한다. 야규작가가 쓴 추리소설은 이른바 범인맞추기 릴레이소설이다. 자신이 사건을 만들어서 문제편을 구성하고 다른 작가가 그 문제편을 읽고 해답편을 써서 범인을 맞추는 것이다. 일종의 추리게임이다.

 

문제편을 제시한 그는 해결편을 쓸 작가로 오노미치 유키코를 지명한다. 배우이자 작가인 그녀. 왜 그는 꼭 그녀에게 해결편을 써달라고 부탁을 한 것일까. 아스코에게 원고를 넘긴 후 그는 자신이 생각한 해결편을 쓰려 짧은 여행을 떠난다. 과연 유키코가 그 제안을 받아들여서 해결편을 쓰게 될까. 쓰게 된다면 그 내용은 원작가인 야규작가가 쓴 해결편과 얼마나 다르게 될까. 서로 다른 해결편을 비교하면서 읽는 것도 독자들에게는 색다른 즐거움일 것이다.

 

야규작가가 만들어 낸 소설 속 내용은 다음과 같다. 평범한 한 부부가 있다. 어느날 남편과 다툼을 한 아내는 집을 나가고 며칠후 돌아오겠지라고 생각했지만 받은 것은 편지 한 통. 친구네 집에 있었다면서 온천에 들렀다 집으로 가겠다고 일정을 상세하게 말해주고 집에 돌아가면 재미난 이야기를 해주겠다고 적힌 편지. 그러나 그녀는 자신이 적은 일정에 맞춰 집으로 귀가하지 못하고 시체로 발견된다. 과연 그녀를 죽인 범인은 누구일까. 친구부부, 남편, 아니면 남편의 회사에서 일하는 공장직원들. 등장인물은 많지 않다. 그 속에 범인이 있을까. 아니면 전혀 모르는 낯선 행인일까. 여기서부터 독자들은 사건에 주목하게 된다. 그리고 야규의 원고도 끝이 나 있다.

 

우리가 주목할 것은 야규의 원고뿐 아니라 전체를 흐르는 맥락이다. 야규는 왜 이런 문제를 만들어서 유키코에게 풀라고 부탁을 한 것이며 과연 이 이야기의 범인이 밝혀지고 사건이 해결이 되었을때 어떤 일이 일어나느냐 하는 것이다. 전작에서도 두 개의 서로 다른 사건이 모호하게 얽혀있었다. 실타래가 마구 꼬여있는 표지에서 보듯이 별개의 사건처럼 보이는 두 개의 사건이 얽혀 있기도 하고 하나처럼 보이는 사건이 어느 순간 두개로 나누어지기도 한다.

 

이 책도 마찬가지다. 방심하는 순간 내가 어느쪽 이야기를 읽고 있는 것인지 혼동하게 될 것이다. 정확하게 어느 부분에서 나누어야 할지 감을 잡아야 한다. 그것을 잡아내는 순간 모든 것은 명확히 풀릴것이다. 하지만 엉켜버린 실타래를 풀어본 적이 있는가. 실의 첫머리는 좀처럼 잡히지 않는 법이다. 이것인가 하고 잡아당기다 보면 어느새인가 다른 쪽으로 연결되어 있는 것을 볼 수 있을 것이다.

 

작가가 처음 원고를 쓰고 편집자에게 보였을때 수많은 포스트잇들이 달려서 다시 돌아왔다고 했다. 어안이 벙벙했던 그는 끈기있게 정정을 했고 다시 교정을 했지만 그 이후에도 여러번 그는 원고를 고치고 또 고쳐야만 했다. 원고를 고치고 퇴짜맞고 하는 장면들이 이야기속에서 너무나도 실제적으로 잘 그려지는 것은 그 자신이 당한일이어서 그랬던 것이 아닐까. 믿을 것은 원작자밖에 없다는 편집자의 말처럼 그는 고치고 또 고친후에야 만족하는 이 작품을 손에 얻을 수 있었을 것이다.

 

두 편의 작품에서 모두 등장하는 작가. 다음 번 이야기에도 작가가 등장을 할까. '고교야구살인사건'이라는 원제에 미루어본다면 그렇지 않을 가능성도 있어 보이지만 '공백살의'라는 바뀐 제목이 의미하는 것은 무엇일지 벌써부터 궁금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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