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엔더스 ㅣ 블랙 로맨스 클럽
리사 프라이스 지음, 박효정 옮김 / 황금가지 / 2015년 8월
평점 :
절판
로맨스를 상징하는 빨강, 하양, 핑크. 이런 모든 색을 다 한꺼번에 섞어 버리면 어떤 색이 나올까. 그것은 바로 검은색, 블랙이다. 블랙 로맨스 클럽은 모든 종류의 로맨스들을 다 다루고 있다. 좀비와의 사랑이야기를 그린 '웜바디스', 한편의 sf영화를 보는 것 같은 느낌의 '리부트', 때로는 추리와 결합된 발랄한 로맨스를 보여주기도-'선암여고 탐정단'- 한다. 정말 오랜만의 블랙로맨스클럽. 이번에는 '스타터스'의 속편이다. 스타터스를 읽지 않았고 이 책만 읽는다 하더라도 재미나게 읽을 것이 분명하지만 혹시 이전에 스타터스를 읽은 사람이라면 반드시 읽어야 할 책이다. 그야말로 완결판이다.
첫 작품답지 않는 필력을 자랑했던 리사프라이스의 스타터스, 나이가 많은 엔더들이 자신의 젊음을 되돌릴수는 없으니 젊은이들의 몸을 빌려서라도 젊음을 느껴보고 싶다는 야심을 품고 시작된 굉장한 작품이었다. 어떻게 그런 발상을 해 낼 수 있었는지 정말 작가의 뛰어난 상상력에 감탄을 금하지 않을 수 없다. 엔더스. 스타터스가 스타터들을 중심으로 이야기를 이끌어 갔다면 이번에는 그 이야기에서 살아남은 캘리의 마지막 이야기이다.
아픈 동생을 위해서 돈이 필요했던 캘리는 바디뱅크에 가서 자신의 몸을 빌려주지만 그 바디뱅크가 없어지면서 그녀는 더이상 그런 생활을 계속하지 않아도 된다. 더군다나 자신의 몸을 빌려갔던 헬레나는 자신과 그녀의 손녀 앞으로 집을 남겼고 그러므로 인해서 편한 생활을 유지할 수 있게 된것이다. 그저 그렇게 평안한 생활이 계속되었으면 좋으련만 신발을 사러 나간 동생을 만나러 간 쇼핑몰에서 그녀는 자신의 생각속에 들어온 그를 다시 만나게 된다. 올.드.맨.
프라임이 없어졌다고 해서 그녀의 몸에 있는 칩이 없어진 것은 아니다. 그녀의 머리속에 심겨진 칩을 통해서 언제든 올드맨은 그녀의 생각을 침해할 수 있게 된 것이다. 또한 그것을 무기로도 사용할 수 있다는 것을 아주 명확하게 잘 보여준다. 그녀 앞에서 스타터를 폭파시킨것. 그 스타터 역시 머리속에 칩이 숨겨진 메탈이었던 것이다. 자신의 머리속에 폭탄이 심겨진 것이라는 것을 알게 된다면 당신의 심정은 어떠하겠는가.
아니 폭탄을 둘째치고 끊임없이 내 머리속에서 이야기하면서 나의 생각을 침해하는 그 어떤 존재가 있다면 어떠한가. 그는 나를 통해서 모든 것을 보고 심지어 나를 움직일 수 있기까지 하지만 나는 아무것도 할 수 없다. 그저 당하고만 있어야 하는 수동적인 존재일뿐 내 쪽에서 반격을 할 수는 없는 것이다. 내가 말하는 것을 그가 듣기는 하지만 나의 그의 숙주일뿐 단지 내 인격과 내 인성은 존재하지 않은 채 사라지고 마는 것이다.
올드맨. 그는 도대체 왜 캘리에게 이런 짓을 하는 것일까. 다른 모든 스타터들은 살인을 할 수 없는 칩이 심겨져 있다. 하지만 유일하게 캘리에게 심겨진 칩은 살인가능명령을 수행할 수 있다. 그녀는 특별한 존재인 것이다. 그렇다면 올드맨은 특별한 그녀를 통해서 누구를 죽이고자 하는 것일까 아니면 또 다른 속내가 있는 것일까. 흔히 스릴러에서 행해지는 반전이 sf적인 느낌이 강한 이 책에서 드러난다. 사실 다른 추리나 스릴러 장르를 많이 읽은 사람이라면 벌써 예측했을것이고 그렇게 흘러가겠다하는 생각이 들게끔 만들어 버리는 장치이기는 하지만 그래도 나름 반전의 묘미를 준다.
하나하나 풀어가는 그리고 정리되어 가는 이야기들. 캘리는 자기가 원하는 대로 머리속의 칩을 제거할수 있을까가 가장 큰 관심사이다. 그리고 올드맨과의 관계 또한 궁금증을 자아낸다. 반격에 반격을 거듭하면서 결말을 향해가는 엔더스. 누구나 스타터였고 미들을 지나서 엔더가 된다. 시간의 흐름을 거스르며 살 수는 없는 법이다. 자연의 이치를 따르는 것이 가장 최선이라는 것을 드러내주는 것일까. 다시 한번 캘리의 활약상에 몸을 맡겨볼 타이밍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