애프터 다크 블랙 앤 화이트 시리즈 64
무라카미 하루키 지음, 권영주 옮김 / 비채 / 2015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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째깍째깍. 시한폭탄도 아닌데 이 책을 펼치는 순간부터 머리속에서 계속 일초일초 흘러가는 시계소리가 들리는 것만 같다. 아마도 처음 페이지에 나와 있는 시간과 각 챕터 처음에 나와있는 시간 때문에 그런 생각이 드는지도 모르겠다. 밤 11시를 기점으로 해서 끊임없이 이야기가 계속되면서 시간은 흘러간다. 시간순으로 흘러가는 이야기. 에리와 마리의 이야기가 교대로 나오지만 시간의 반복은 없다. 끊임없이 시간은 지나간다. 하루밤이 이렇게도 길었던가.

 

이 책, 세번째 읽는다. 처음 두번의 '어둠의 저편'이라는 제목으로 이번에는 영어 제목으로 해서 조금은 산뜻해져 보이는 애프터 다크라는 이름으로. 사실 처음 읽었을때는 아무런 생각없이 읽었다. 읽을 책이 없는 장소였고 눈앞에 하루키라는 유명작가 이름이 보였고 그래서 읽었다. 그리고는 기억속에서 잊었다. 그 이후 방에 놓인 하루키 책을 보고 내가 이 책을 읽었던가 하는 의문점에서 읽었다. 읽다보니 이해가 되지 않는 부분들이 많아져서 얇지만 다른 두꺼운 책보다 몇배의 시간과 공을 들여 읽었던 기억이 난다.

 

이번이 세번째. 번역상으로 크게 달라진 점은 없는 것 같다. 일단 표지면에서 정말 어둠의 끝을 달리던 컬러감이 조금은 새벽을 달리는 컬러감의 표지로 바뀌었다. 아주 깊은 심연의 동굴에서 빠져 나온 느낌이 든달까. 그리고 각 페이지마다 고양이 그림으로 약간의 귀여움을 강조했다. 집에서 기르는 펫과는 다르지만 밤은 역시 길고양이들의 셰계라고나 할까 그런 면을 드러내보이는 것 같아서 통일성을 빼놓을수도 없다.

 

한밤중. 당연히 모두가 집에 있어야 할 시간. 이 시간에 마리는 집을 나와 24시간동안 하는 음식점에 앉아 있다. 가출청소년인가. 그녀는 왜 집에 머물러 있지 못하고 이 밤에 나와서 이곳에 앉아 있는 것일가. 딱히 누구를 만나거나 일이 있는 것 같지도 않은데 말이다. 아무 생각없이 앉아 있는 그녀 앞에 한 남자가 나타난다. 자신의 이름을 밝힌 그는 예전에 마리와 한 번 본 적이 있다. 그렇다고 해서 얼굴만 알 뿐 그닥 친한것도 아니지만 반색을 하는 그 덕에 잠시동안 이야기를 나누게 된다.

 

마리의 이야기와는 다르게 에리의 이야기는 '누군가' 라는 다른 사람의 시점을 준다. 그 누군가는 바로 책을 읽는 우리일지도 모른다. 그저 잠을 자고 있는 에리. 밤에는 잠을 자는 것이 원래 당연한 것이니까 그렇게 특이하다고 생각되지 않을지 모르겠다. 그러나 그녀는 벌써 두달째 잠을 자고 있다. 그것을 우리는 지켜보는 것이다. 요즘 방송되고 있는 드라마의 한 주인공을 보는 듯 하다. 일부러 식물인간 상태로 만들어 버린 한 여자. 과연 에리도 그런 존재인걸까.

 

에리에 관한 이야기는 한참 후에나 알 수 있다. 마리의 입을 통해서 말이다. 그녀가 왜 그렇게 잠을 자는지 마리도 정확한 이유는 알지 못하지만 적어도 에리가 식물인간 상태는 아니며 죽을 정도로 잠을 자는 것은 아니며 최소한의 영양은 섭취하고 씻기도 한다는 것을 말이다. 단지 그런 최소한의 움직임을 빼면 잠만 잔다는 것이다. 백설공주라고 불리울 만큼 이쁜 에리. 그리고 그에 비해 평범한 마리. 자매들간에는 어떤 감정이 존재하는 것일까.

 

형제간에 비교는 하지 말아야 한다. 하지만 사람이다보니 같은 집안에 아이가 둘 이상 있으면 비교가 되는 것은 사실이다. 드러내놓고 하던 하지 않던간에 말이다. 공부를 잘하는 아이가 있을수도 있고 특별히 더 이쁜 아이가 있을수도 있다. 하지만 이쁘면서 공부도 잘하고 말도 잘듣는 아이가 있다면 부모는 물론이거니와 다른 어떤 사람이라 할지라도 그 아이를 더 이뻐할 수밖에 없는 것은 당연한 일 아닐까. 아이도 키워보지도 않았으면서도 학생들과 함께 오래 하다보니 아마 조금은 그 느낌을 이해할 것도 같다.

 

밤은 끊임없이 흘러간다. 그냥 아무 생각없이 잠을 자고 있는 에리에게는 그저 그런 시간일지 몰라도 깨어있는 마리에게는 끊임없이 사건들이 일어나는 시간이다. 같은 '밤'이라는 시간대속에서 잠을 자는 에리와 깨어있는 마리. 한쪽은 계속 잠을 자고 한쪽을 잠을 자지 못한다. 그녀들은 어떤 자매였을까. 같은시간을 배경으로 해서 일어나는 두 자매의 이야기. 어둠의 저편에는 무엇이 있잇으며 어두움이 지난후에는 어떤 새벽이 올까. 어떤 어둠이라 할지라도 시간이 지나면 새벽은 오는 법이다. 그녀들에게 새벽이 와서 애프터 다크 후 찬란한 햇살이 비치는 '낮'이 시작되길 바라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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