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사 & 겐 블랙 앤 화이트 시리즈 63
미우라 시온 지음, 홍은주 옮김 / 비채 / 2015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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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어마다 그 어감이 주는 느낌은 저마다 다르다. '엄마'처럼 부르기만 해도 생각만 해도 눈물이 나는 단어가 있고 '파랑'처럼 듣기만 해도 시원해지는 느낌을 주는 단어도 있다. 개인적으로는 그랬다. '할머니'하면 무언가 조금은 시골틱한 냄새가 느껴지고 푸근한 느낌이 드는  반면 '할아버지'라는 단어는 그저 나에게는 별 의미없는 그런 존재의 단어였었다. 그것은 저마다 살아온 인생이 다르니 그 느낌도 저마다 다 다를 것이다. 하지만 할아버지에 대한 느낌은 누구나 비슷하지 않을까?

 

그렇게 별 볼일 없이 느껴지던 할아버지의 이미지가 변해간다. 아마도 백세노인 알란할배가 등장하면서부터가 아닐까. 할아버지 혼자서 즐기는 모험 이야기에 전 세계 사람들은 푹 빠졌고 그 이후 영원한 사랑을 꿈꾸며 자살을 기도하던 까칠한 오베할배에 이르기까지 우리는 할배들에게 환호하고 있었다. 물론 배낭을 메고 옹기종기 다니는 꽃할배들의 열풍도 무시할수는 없다. 그런 할배가 이제는 둘이다. 성격도, 하는 일도, 생긴 것도 전혀 다른 할배 둘. 하지만 그 둘의 브로맨스는 상상이상이다. 이보다 더 유쾌하고 재미나고 감동적인 우정이 있을수 있을까 싶을만큼 시간을 잊게 하는 이야기. 역시 미우라 시온이다.

 

사실 그냥 '마사와 겐'이라는 촌스런 제목을 보았을때만 해도, 지극히 일본인스럽게 생긴 할배 둘이 그려진 표지를 봤을때만 해도 읽어야 하나 말아야 하나 고민했던 것도 사실이었다. 생일선물로 이 책을 고른 친구가 있어 궁금하기도 했다. 왜 이 책을 골랐을까 하면서 말이다. 하지만 그것은 심각한 오류였다. 그 친구보다 먼저 읽어본 나는 그 친구의 안목에 엄지를 치켜들 수 밖에 없었고 당장 주말이 지나자마자 그 책을 주문할 수 밖에 없었다. 요렇게 귀여운 할배 두분이시라닛.

 

마사와 겐이라는 할배가 있다. 물론 실제 이름은 이것보다는 길다. 일본이름도 나름 애칭이 있었다는 것을 이제야 느꼈다. 서양식 이름은 워낙  많이 부르고 익숙해져서 있어서 줄여서 불르는 닉넴이 있다는 것도 알고 그게 더 편하기도 하고 해서 많이 불렀지만 일본 이름이 그런식으로 되었다는 것은 일본 소설을 읽으면서도 느끼지 못하고, 인식하지 못하고 지나간 부분이기도 했다. 구리마사와 겐지로. 실제로 할아버지의 이름은 그렇지만 어린시절부터 몇 십년을 걸쳐 친구를 하고 있는 그들에게 그런 정식이름보다는 마사와 겐이라는 툭툭 던지는 이름이 훨씬 더 편하게 느껴진다. 은행을 다니다가 퇴직한 마사 그리고 일본의 전통 기법을 사용해서 장식품을 만들어 내는 겐. 행동도 크고 사람들의 이목을 신경쓰지도 않으며 약간은 자기 중심중의의 겐과 조심성있고 매사에 반듯반듯하며 규칙적인 것을 좋아하는 마사가 어떻게 친구가 될 수 있었을까.

 

전후세대였던 그들이지만 겐은 전쟁으로 가족을 모두 잃고 혼자가 되었고 마사는 피난을 다녀와서 전쟁이후에 돌아왔기 때문에 그것을 모르고 살아가는 사람이다. 그들은 전쟁이후에 다시 만났고 서로를 걱정해주며 평생을 친구로 그렇게 살아왔다. 사실 노인들의 날이란 별다른 것이 없을 것 같다. 어제가 오늘같고 오늘이 내일같고 그런 날들의 연속일 것 같다. 한마디로 죽을날만 기다리는 것일까. 요즘은 할아버지, 할머니들도 자신만의 취미를 발견하고 그것을 배우러 다니시고 사회활동도 많이 하시는 편이긴 하지만 말이다. 열심히 일을 해서, 돈을 벌어서 키워놨지만 딸 둘은 시집가서 집에도 오지 않고 부인마저 딸집에 가버리고 자신의 집에 덜렁 혼자 남은 마사. 만약 그에게 겐이 없었다면 아마도 그의 일상은 매일매일이 같았을 것이다. 하지만 장인으로써 제자 한명을 데리고 아직까지도 부지런히 작품생활을 하는 겐 덕분에 그를 도와주기도 하고 그의 집에 가서 그의 제자와 함께 셋이서 밥을 먹기도 하는 등 하루하루를 재미나게 보낸다.

 

일상적인 이야기라 자칫 잔잔하고 지루해하지 않을까 걱정하는 사람이 있다면 그런 걱정은 붙들어매라고 다시 충고해주고 싶다. 미우라 시온이다. 작가의 전작을 본 사람이라면 이미 알고있다. 그의 글이 주는 힘을 말이다. '배를 엮다'처럼 '사전'이라는 얼핏보면 지루한 단 하나의 소재를 가지고도 재미나게 이야기를 풀어내고 긴 시간을 걸려서 이야기를 끌고 가면서도 전혀 세월의 흔적을 남기지 않고 깔끔하게 풀어낸 작가다. 그런 작가의 글로 인하여 이 책 또한 그럴 것이라 믿어야 한다. 실제로 그러하기 때문이다. 아니 이 책에서는 한단계 없그레이드 되었다. 곳곳에 숨어있는 위트가 빛을 발한다. 데굴데굴 구르게 폭소하는 장면보다는 충분히 공감하고 느낄 수 있는 이야기들이 산재해있다. 서양식 유머처럼 단번에 따라잡지 못하고 한박자 또는 두박자 늦게 피식거리는 그런 웃음도 아니다. 묘하게도 아시아권이라는 것 때문일지는 몰라도, 번역이 잘 되어서였는지는 몰라도 바로바로 나오는 웃음을 지우기는 힘들다.

 

물론 일본식 표현이 제대로 마루리 지지 않아 약간 아쉬운 부분도 있긴 하지만 그냥 넘어간다 해도 충분히 이해할 수있는 단어들이다. 가령 마사가 허리가 아파서 약국에 사러가는 습포는 실제로 습포라는 게 따로 있는 것일까 아니면 내가 아는 그 파스일까. 이런 종류말이다. 혼자보다 둘이 있을때 더욱 시너지가 발휘되는 그런 캐릭터들이 잇다. 최근 읽었던 책 중 '나오미뫄 가나코'가 30대 여성의 우정을 다루고 있다면 이 책에서는 그보다 곰삭은 할배들의 진한 우정을 느낄 수 있을 것이다. 아주 오래 끓여서 진한 액기스만이 남은 그런 국물맛. 그야말로 국물이 끝내주는 그런 한 그릇의 곰탕이 생긱나는 그런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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