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끼 소각 지침
마커스 클리워 지음, 김지원 옮김 / 문학수첩 / 2026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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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말정말 이상한 일이 당신에게 주어졌다면 당신은 그 일을 할 것인가 말 것인가. 이상하면 안 하면 되지 뭐라고 가볍게 생각하지 말라. 당신은 지금 몇달 월세를 내지 못해 쫓겨날 처지이고 동생 약도 당장 사야 한다. 즉 나갈 돈은 줄줄이인데 알바도 잘렸고 수중에 있는 돈은 다 긁어보아도 없다. 이런 지경에 주말만 일하면 큰 돈이 들어온다. 이런 조건이라면 그 일을 하겠는가 말겠는가. 답은 이미 정해져 있는 것 같다.

여기 동생 젬마와 함께 살고 있는 메이시가 있다. 아버지는 사고로 돌아가셨다. 사흘에 9천달러라는 거액을 받기 위해 찾아간 간병인 자리는 관리인 자리였다. 하지만 그 지침이 수상하다. 그래도 이미 선금도 받았고 주말만 일하면 된다라는 생각으로 용기를 내 본다. 하지만 역시나 만만치 않다.

관리인이 해야 할 일은 크게 세가지였다. 새벽에 불을 한 시간 동안 꺼둘것. 쉽게 생각했다. 불 꺼놓고 자면 되지 뭐라고 말이다. 그게 아니었다. 이 집의 배선은 엉망이라 지 멋대로 불이 켜진다. 돌아다니면서 그걸 일일이 꺼야한다. 그게 뭐 꼭 배선 문제이겠냐마는. 시간 맞춰 일어나서 여기저기 끄면 되지라고 생각했지만 7초라는 시간이 넘어서 메이시는 실패했다. 두번째, 집 안에서 토끼를 발견하면 밖으로 내쫓으란다. 쉽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역시나 시간 제한이 있다. 10분이다. 그 안에 못보내면 이번에는 그 토끼를 태워야 한단다. 그것도 산 채로 말이다. 헐. 토끼가 얼마나 빠른데 그걸 잡아서 태우라고. 거기다 벽난로에 불 피우다 시간 다 가겠네.

마지막은 방문자를 차단하라는 것이다. 저녁 6시부터 열두시간 동안 집에 찾아오는 푸른 눈의 사람으로부터 무조건 숨으란다. 아니 대체 그들이 누군데 숨으라는 거냐고. 하기야 그래도 세가지 미션 중에서는 가장 쉽지 않은가. 그냥 무시하면 된다. 누가 집을 두들기던 말던 말이다. 그러나 이 찾아오는 사람이 아는 사람이라면 또 달라진다. 자신이 그리워하는 사람, 보고 싶어하는 사람, 친한 사람이라면 무시하기가 어렵지 않은가. 사람의 약한 마음을 공략하는 것이다. 메이시는 과연 성공했을까.

공포 영화의 법칙을 들어가면서 이야기는 끊임없이 주인공을 몰아간다. 이러면 이렇게 되겠지? 하지만 그게 전부는 아니야. 이렇게 되면 다시 이렇게 될 것이야 하면서 말이다. 다른 등장인물은 없다. 처음에야 집주인도 나오고 동생도 나오고 집 근처를 배회하던 여자도 나오지만 이 이야기의 대부분은 메이시 혼자서 이끌어 간다. 그야말로 혼자서 북 치고 장구 쳐야 하는 입장인 것이다. 그러니 이 난리통을 만들어 놓을 수 밖에. 모든 규칙들 때문에 집은 난장판이 되고 만다. 내가 만약 이 집을 관리하라고 맡긴 집주인이었다면 기함을 하고도 남을 일이다. 이 모든 규칙에서 메이시는 살아남았을까가 심히 궁금해진다.

그나저나 원제는 caretaker 즉 관리인이다. 하지만 토끼 소각 지침이라는 그야말로 호러 느낌이 직관적인 제목으로 바꾸었다. 관리인과 토끼 소각 지침. 누구라도 토끼 소각 지침에 더 끌리지 않을 수가 없다. 더구나 이렇에 더운 여름날이라면 대체 토끼를 어떻게 소각시키라는 것인지 궁금해서라도 이 책을 한번 더 집어들게 되지 않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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