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역일을 딱 한 번 해본 적이 있었다. 전문적으로 돈을 받고 하는 것은 아니었고 국제 스포츠 대회에 자원봉사자로 참여를 했더랬다. 뭐 대단한 건 아니고 선수들 길안내 같은 그런 자질구레한 일이긴 했지만 인터프리터란 명찰을 목에 걸고 있는 동안은 괜히 뿌듯했다. 지금은 알아듣기라도 하면 땡큐랄까.
이 책은 독특하게 희곡도 아니면서 그런 비슷한 구조로 편집되어 있다. 나는 말한다, 내 통역사가 말한다 라는 문장이 번갈아가면서 나오고 그 사람들이 한 말이 뒤에 따라붙는 방식이다. 물론 화자가 바뀌면 앞에 나오는 주어가 바뀐다. 그런데 중간중간 나는 생각한다라는 문장도 있어서 전부가 말하는 것이 아님을 알 수 있다. 생각한다 다음에 나오는 문장은 진짜 사람이 속으로만 생각할 수 있는 진짜 마음을 보여주는 것 같아서 간혹 웃음이 나기도 한달까. 가족이긴 해도 다 말하지 못하는 내용도 있는 법이다.
덴마크로 입양된 나는 간간히 한국에 와서 진짜 가족들을 만난다. 엄마와 언니들 때로는 아빠와 조카들까지. 한국어를 하지 못하는 나는 통역사를 대동해서 가족들을 만난다. 정확히 나와 있지는 않지만 대화로 미뤄 보아 통역사는 덴마크에 살고 있는 한국 가정의 사람으로 보인다. 나는 덴마크어와 영어는 할 줄 알지만 한국어는 단어나 인사말 정도만 아는 듯 하다. 눈치로 때려 맞추는 것도 있고. 시간이 흐를수록 한국어를 조금 배우는 것 같기는 하나 전면적에 나서서 사용해 볼 엄두를 내지 못한다. 아마도 어색할까봐 자신이 하는 말을 사람들이 아니 가족들이 알아듣지 못할까봐 그래서 그런 것이겠지.
이미 몇번 만난 상태에서 시작된 이 책의 이야기는 코로나 시기를 거치고 어느 순간 그렇게 끝났다. 통역사와의 관계가 영원할 것 같았지만 그렇지도 않았다. 사람의 관계라는 것이 어디 영원한 것이 있으랴. 이야기 속에서 나오는 모든 것들은 아니겠지만 어느 정도는 현실과 동일하다. 본문 속에서 등장하는 책 제목도 작가가 쓴 책과 동일하고 입양갔다 진짜 가족을 만나는 것도 작가의 경험을 그대로 담았다. 만나는 작가와 번역하는 작품의 제목 또한 현실과 동일하다. 그렇다고 이 이야기를 에세이로 보기는 힘들 것 같다. 작품 분류에도 엄연히 소설로 되어 있을 만큼 말이다. 그런 설정은 성소수자로 설정이 되어 있는 나라는 주인공과 작가가 다른 사람이라는 것을 구분해 주는 기준일까.
가족들이 말하는 것을 알아듣지 못하는 나는 그들의 이야기를 그저 무음으로만 이해한다. 책에는 그래서 공간이 많다. 단순하게 마침표만 찍혀 있는 문장들. 그 문장들을 나는 통역사가 이야기가 해주기까지 기다린다. 남의 말을 전달한다는 것. 가장 가까우면서도 내면적인 작업이라 생각된다. 아 다르고 어 다르다는 말도 있듯이 누군가의 말을 말한 사람의 생각 그대로 옮긴다는 것이 결코 쉽지 않기에. 2023년에 다른 통역사를 데리고 서울에 와서 가족들을 만났던 나. 조카들이 성장을 해서 영어로 어느 정도 소통이 가능해지게 되었다. 그로부터 삼년이 지난 지금의 나는 한국어를 좀 배워서 자신이 하고 싶은 말을 통역사를 대동하지 않고도 그대로 다 말할 수 있었을까. 통역사와의 관계는 그것으로 끝이었을까 다른 사람을 만나긴 했을까. 왠지 모르게 그 다음의 이야기가 계속 상상이 되어진다. 작가의 행보를 응원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