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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종의 비애 세종의 눈물 1 - 조선 정치의 민낯을 적나라하게 드러낸 왕실 최대의 비극, 개정증보판 ㅣ 단종의 비애 세종의 눈물 1
유동완 지음 / 휴앤스토리 / 2026년 5월
평점 :
<환생했더니 단종의 보모나인>이라는 웹툰을 즐겨 보고 있다. 이것도 아마 영화 <왕과 사는 남자>의 여파이지 싶다. 별로 관심도 없다가 하나가 유행을 하니 연결되서 궁금해지는 현상이랄까. [단종애사]라는 책도 궁금했는데 소설보다는 이런 인문학 역사책이 조금은 더 사실적으로 설명을 해줄 것 같다는 느낌으로 읽어봐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역시나 많은 것을 새로 알아가고 배웠다. 웹툰에서 여자주인공으로 나오는 나인이 왜 그리 문종에게 부드러운 옷을 입을 것을 권하고 비누를 만들었는지도 그 이유를 알았다. 문종이 종기로 인해서 죽었다는 것을 알았기 때문이다. 환생했으므로.
웹툰에서는 홍위의 어린 시절을 그린다. 당연히 문종도 같이 나오고 의외로 세종도 자주 등장을 한다. 이 책을 읽고나서야 알았다. 세종이 그토록 홍위를 아꼈다는 것을 말이다. 그러니 당연히 나올 수 밖에 없었던 것이었다. 자신의 자식을 아끼는 만큼이나 손자를 사랑했던 할아비였다. 비단 할아버지로서의 사랑이 전부가 아닌 적자 우위를 주장하는 만큼 홍위가 자신의 다음을 이어 왕이 될 것이라 생각하고 욍이 되었을 때의 수업을 어려서부터 시킨 것이겠지. 그로 인해 홍위가 얻은 것은 무엇이었을까.
1권은 크게 원손에서 세자가 되기까지의 삶과 조선 6대 왕과 상왕으로서의 삶인 두 부분으로 나누어져 있다. 1장에서는 홍위가 태어나면서 할아버지가 그에 대한 기대가 얼마나 컸는지를 보여주고 있다. 세종은 다들 알다시피 세번째 아들이었다. 무조건 첫째가 이어가야 한다는 그 정통성을 깨트린 것이다. 그래서였을까. 유난히 정통성에 집착하는 모습을 보여준다. 그것이 문종에 이어 홍위에게까지 연결된 것이다. 아직 홍위는 어리기에 세종이 행했던 정치에 대한 것들이 나온다. 세종은 어진 임금으로 한글을 창조한 그런 왕으로 존경을 받고 있지만 그 반면에 자신의 정책이 오히려 홍위가 불행해지는 결과로 이어지기도 했다. 문종과 홍위에게 많은 영향력을 미쳤던 세종. 만약에라는 것 만큼 허무한 것은 없지만 문종이 조금만 더 오래 살았다면 어떠했을까? 어린 홍위가 넉넉히 정사를 처리할 정도만 자기 자신을 지킬 정도의 능력이 되는 때까지만 살아주었어도 그렇게 슬픈 삶은 되지 않았을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을 한다.
왕이 되었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 상왕이 되어버린 단종이다. 상왕이란 보통 세자가 왕이 되고 원래 왕이었던 아버지가 물러 나는 경우에 쓰는 단어다. 삼촌이 왕이 되므로 인해서 나이도 훨씬 어린 조카가 상왕이 되어 버린 케이스라니. 수양대군은 그렇게도 권력을 탐하고 싶었을까.
영화에서는 금성대군이 중요한 역할로 나온다. 영화는 시간 제한이 있기 때문에 모든 것을 다 담아내지는 못한다. 이 책을 읽고나니 그 이유를 알겠다. 미술책에서 보던 안평대군의 그림이 어떤 의미를 담고 있는지도 말이다. 그냥 무작정 안평대군의 그림이 이거다 라고 막연하게 외우기만 했을뿐 그 사람이 누구인지도 나는 모르고 있었던 것이 아닌가. 역사에 대해서는 정말 무식쟁이나 다름이 없다.
사육신이 누구인지는 알고 있었어도 자세한 사건에 대한 것은 알지 못했다. 아니 잊었다고 봐야 할 것이다. 분명 [조선왕조실톡]을 읽을 때 중요하게 언급이 되었을테니 말이다. 성삼문과 박팽년, 유응부까지는 확실히 기억했는데 신숙주를 사육신으로 알고 있었다. 이번 책에서 읽고 확실하게 알았다. 이제는 절대 잊지 않을 것 같다. 그런데 그걸 알고 있는가? 성삼문도 처음에 왕위 찬탈 후 공신 책봉할 때 이름이 올라가 있었다는 걸 말이다. 이홍위 복위를 꾀했던 인물이 왜 명단에 올라가 있었을까. 본문에 따르면 그것은 수양대군이 합리화 하려고 일부러 넣었을 가능성이 높단다. 의심만았던 수양대군. 이런 잔꾀들로 모두를 속여 넘기려고 하다니.
사육신을 중심으로 한 세조 제거는 왜 실패로 돌아갔을까. 왜 그리 대략적인 계획만 세워두었을까. 모사를 준비할때는 자고로 플랜 비뿐 아니라 그 다음에 그다음에 그 다음수까지 세워야 하는 것이 당연한 일이거늘 자신들의 계획이 모두 다 잘 이루어질 것이라고 지나치게 낙천적으로만 생각했던 것일까. 처음부터 막혀버린 그들의 계획은 차라리 시도도 하지 않는 것만 못한 꼴이 되어 버렸다. 이것이 단종이었던 홍위의 남은 생을 더 재촉했을지도 모를 일이고.
거사는 무너지고 모두 잡혀간 와중에 형국을 당하던 성삼문의 이야기와 유응부의 이야기가 나오는데 각기 285쪽과 304쪽에 따로 나옴에도 불구하고 불에 달군 쇠를 배에 놓았다거나 그랬을 때 쇠가 식었으나 다시 달구어 오라고 한 말이 동일하게 쓰이고 있다. 성삼문의 이야기는 연려실기술에 유응부의 이야기는 추강집에 실리는 등 자료 출처도 다른데 어찌 이런 같은 반응이 나왔을까. 처음에는 사람 이름이 잘못된 줄 알았으나 다시 살펴보니 각기 다른 사람의 이야기임이 확실했다. 그들의 대범함을 살릴 에피소드라서 같은 거였을까 아니면 진짜 똑같이 행동을 했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