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한 주관적인 리뷰입니다.
프롤로그에서 저자는 핸드폰에 잠식되어 버린 자신의 일상을 이야기 하면서 필사책 의뢰를 받아서 작업을 하다가 펜으로 문장을 쓰면서 극적인 기분 변화를 맞이했다고 한다. 현재를 살아가는 모든 사람들이 다 그렇게 느끼지 않을까. 손에서 핸드폰을 놓아야 한다는 것을 알면서도, 눈을 떼야 한다는 것을 알면서도 좀체 놓을 수 없는 그것 말이다. 나 또한 인스타를 보다 보면 그야말로 시간이 순삭하는 경험을 많이 해서 절전 모드로 해 놓고 기본 화면에서 앱을 안 보이게 하는 등의 노력을 통해서 줄이려고는 하고 있는 중이다.
이 책은 다양해서 좋다. 기본에 내가 가지고 있는 필사책들은 소설이거나 시집이거나 하는 경우가 많았다. 명언이 있는 책도 있지만 내 성향에는 맞지 않아 소장하지는 않았다. 이 책은 그야말로 다이제스트다. 우리가 흔히 알고 있는 소설들 외에도 영화나 희곡의 대사나 자기계발서와 에세이 그리고 생각지도 못했던 연설이나 철학자들의 말까지 정말 다양한 문장들이 가득하다.
이 책은 낯설어서 좋다. 필사책들은 익숙함을 선호한다. 아는 문장을 따라 쓰는 즐거움을 주는 것이다. 이미 알고 있는 문장들이니 그 익숙함을 보장하는 것이다. 하지만 익숙함은 지루함을 낳을 수도 있다. 그래서 대부분이 많이 알려진 소설을 엮어서 필사집으로 만드는데 이 책에는 생전 처음 보는 작가들의 글 뿐 아니라 일기와 편지까지 있어서 한번도 보지 못했던 사람들의 글들을 읽는 새로움을 준다.
이 책은 사철편집이라 좋다. 대부분의 책들과는 달리 필사책은 밑에 무언가를 받치고 써야만 한다. 그래서 책등의 존재가 불편하게 느껴지는 경우가 많은데 이 책은 몇몇 다른 필사책들과 마찬가지로 사철제본을 선택해서 책등과 상관없이 책이 자연스럽게 펴지도록 해 두었다. 그런 소소한 배려가 필사책을 선택할 때 선호하는 대상이 된다.
올해 하반기의 나의 책 선택의 가장 큰 특징은 필사책의 비율이 늘었다는 것이다. 영어 필사의 즐거움을 깨달아버려서 소설을 서머리 해 놓은 필사책을 두 권 끝냈고 지금은 영어 필사 한권과 일본어 필사 한 권 그리고 윤동주 시집까지 틈틈히 생각날 때마다 쓰고 있는 중이다. 그중에서도 이 책은 쓸 때마다 다른 즐거움을 선사할 수 있는 책일 듯 하다. 필사할 때 한번도 사용하지 않았던 연필을 일부러 선택해서 써 봤는데 종이의 사각거림이 좋았다. 두께감 있는 종이라 진한 펜으로 써도 비치지 않아서 더 좋았다. 여러가지 필기구를 다양하게 이용해 봐도 좋겠다. 하단에는 이 작품의 배경이나 설명을 간략히 하고 있어서 상식이 늘어가는 기쁨도 함께 맛볼 수 있어서 더욱 즐겁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