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버린 도시, 서울
방서현 지음 / 문이당 / 2025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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궁금해졌다. 작가는 어떤 의도로 이 소설을 쓴 것인가 하고 말이다. 처음에 제목만 보고서는 소설이 아닌 줄 알았다. 서울이라는 도시가 너무나 혼잡하고 복잡해서 나는 이 도시를 버리고 소도시에서 살아야겠다라는 그런 생각의 신변잡기적인 에세이인 줄로만 알았다. 일단은 이 책이 소설이라는 것에 약간은 호기심이 동했고 둘째는 이제는 그냥 익숙해버린 수저론을 소설 속에 접목시켰다기에 어떻게 전개했는지가 궁금했었다.

주인공인 나는 부모에게서부터 버림받은 아이였다. 폐지를 줍는 할머니가 주워서 키워준 아이. 당연히 나의 계급은 최하가 될 수 밖에 없었을 것이다. 만약 할머니가 나를 거두지 않았더라면 어떻게 되었을까. 박스 안에서 아무도 모른 채 죽었을 수도 있고 할머니가 발견했어도 고아원에 보냈다면 그곳에서 성장할 수도 있었을 것이다. 또 모르지. 좋은 양부모를 만났을 수도 있고 해외로 입양이 되어서 한국말은 하나도 못하는 그런 사람이 되었을 수도 있다. 사람의 하나뿐인 인생은 누가 정해 놓은 게 아니라서 어떻게 펼쳐질 지는 아무도 모르는 일이다.

이야기를 읽어가면 읽어갈수록 내내 이 시대적 배경을 의심하게 된다. 스마트폰이 나오고 주위 장소적 배경을 설명해 놓은 것을 보면 분명 지금 이 시점 현재를 바탕으로 하고 있는데 반해 똥수저 흙수저 동네 아이들이 하는 말이나 행동을 보면 너무 그야말로 쌍팔년대 대사 같다는 생각이 든다. 아이들이 반에 있는 혼혈인 반 학생들을 튀기 새끼라고 비하한다던지 선생이 자신의 아빠가 가지고 있는 차를 그리고 설명하는 숙제를 낸다던지 하는 것이다. 일부러 그렇게 접목을 시킨 것일까. 이 수저 동네의 차이점을 설명하기 위해서 말이다. 굳이 그렇게 하지 않아도 충분히 이해가 될 것 같은데 배경과 대사와 등장인물들의 캐릭터가 용케 잘 맞물려지지 않아서 계속 동그렇게 만들려 해도 허물어지는 모래로 만든 흙더미가 떠올려졌다. 어떻게 구형을 만들려해도 부스러져 버리는.

똥수저 동네에 살던 나는 불이 나고 후원금을 받아서 흙수저 동네로 옮겨가게 된다. 그곳에서 아파트가 주된 배경인 은수저 동네와 고급 빌라인 금수저 동네를 알게 된다. 그곳에 사는 친구를 통해서 말이다. 물론 그렇게 되기까지는 공부를 해서 그들의 위치와 비슷하게 맞추려는 피나는 노력이 따랐다. 만약 내가 여전히 공부를 못하는 존재로 있었다면 윗수저 동네에 사는 아이들이 나에게 관심이나 주었을까. 아니 아이들이야 친하게 지낼 수 있다고 해도 부모들이 같이 어울리지 못하게 말렸을 가능성도 매우 높다. 못 사는 집이라 하더라도 공부를 잘 하면 인생이 달라질 수 있다는 것을 암시라도 하는 것일까.

태어날 때부터 부모를 고르고 집안을 골라서 태어나는 사람은 그 누구도 없다. 자신의 환경과 처지를 선택할 수는 없다는 소리다. 그렇다고 자신은 아무 것도 가진 것이 없다고 한번뿐인 인생을 마구잡이로 살 것인가. 물론 그것도 자신의 선택이니 무엇이라 비난할 이유는 없다. 단 그냥 열심히 살 필요는 있지 않을까 그것이 내가 가진 개인적인 생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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