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이야기는 백석과 그 친구들에 관한 이야기다. 교과서에 가장 많이 수록된 작가 백석이라고 하는데 아무리 모르는 사람이라고 해도 아마 '나와 나타샤와 흰 당나귀'라는 시는 들어보았음직 하다. 사실 나는 백석을 친일파 시인으로 알고 있었다. 그래서 그에 관한 이야기는 더 잘 몰랐던 것이 아니었을까. 검색을 해보니 친일파라는 소리는 없고 작가의 말에 따라면 월북 작가라는 소리는 있었던 것 같다. 원래 그의 고향이 북쪽이었던 것을 지적하면서 월북이 아니라 재북으로 해야 한다는 작가의 말에도 일리가 있다고 느껴지는 대목이다.
조선일보에서 일을 하게 된 백석이 출근 첫날 선배로 오인한 허준을 만나게 된다. 정말 다른 성향을 가진 두 사람이지만 두 살 차이에도 불구하고 그들은 서로를 알아보고 절친이 된다. 이후 입사를 하게 된 신현중까지 어떻게 보면 직장 동료였던 그들 셋이 광화문 삼인방으로 불리게 된 이유는 무엇일까.
신문사를 중심으로 세 명의 이야기가 전개된다. 대한제국이 사라진 경성이다. 일본이 지배를 하고 있던 시기였기는 하나 아직까지 전면적으로 압박이 들어온 것은 아닌 것 같다. 그래도 신문사가 백석이 일을 하는 조선일보를 비롯해서 조선중앙일보와 동아일보까지 건재하고 거기에 더하여 잡지까지도 잘 발행되고 있었으니 말이다. 이 이야기 속에서는 을씨년스럽다의 유래부터 시작해서 남대문역에서 폭탄 의거를 했다는 강우규 열사의 이야기나 김동리 작가의 <바위>와 <무녀도> 속에서 드러나는 지방주의를 비롯하여 목이 길어 슬픈 사슴으로 유명한 노천명 시인까지 참으로 다양한 그 시대 사람들의 이야기가 곳곳에서 드러나고 있어서 청소년들에게는 조금은 낯선 분야가 아닐까 하는 생각도 든다. 김동리 작가의 무녀도를 중학교 때 처음 읽었던 나에게는 반가운 이름이었고 반가운 책 제목이었지만 말이다. 그만큼 요즘 청소년들이 고전 문학을 읽지 않음을 드러내고 있는 것이 아닐까. 물론 나도 중학교 방학숙제로 읽어야 할 책목록이 아니었다면 무녀도를 그때 읽었을 리는 없을테니 그만큼 학교 교육의 중요성을 드러낸다. 요즘도 학교마다 필독해야 하는 책 리스트가 있으려나.
언제까지나 영원할 것만 같았던 삼인방도 결국은 어떤 사건을 계기로 어긋나버리게 된다. 친구 사이에 일어날 수 있는 일이려니 하지만 그런 것 때문에 멀어지게 된 그들의 우정이 어찌 보면 든든하지 못한 것 같기도 하고 나중에 다시 풀리게 되는 걸 보면 비온 뒤에 더 땅이 단단하게 굳는 것도 같고. 일본은 대한민국을 야금야금 집어 삼켜 결국 후반부에는 창씨개명을 언급하고 있따. 그후에 조선어 말살정책도 나오겠지. 그때에 비교하면 우리는 정말 행복한 시대에 살고 있는 것은 아닌가 하는 생각을 해본다. 백석과 광화문 삼인방이 남긴 글들이 있어서 다행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