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 이야기는 일인칭 시점으로 쓰여서 이야기 속의 나라는 존재는 마치 작가와 동일하게 느껴진다. 작가로 설정이 되어서 이상하고 괴이한 이야기를 듣는 것을 좋아하는 것은 물론 그것을 바탕으로 이야기를 쓴다는 점이 그러하다. 더구나 작가의 작품을 좋아하는 사람이라면 당연히 알고 있을 그런 부분까지도 나와 있어서 더욱 반갑다. 바로 작가의 다른 작품이 언급된 것이다. 대만 작가들과 함께 한 '쾌'라는 작품을 읽은 바 있어서 저 문장을 읽었을 때의 반가움이란. 이러다보니 극중 나와 작가를 동일시 생각하지 않을래야 않을 수가 없다.
아들을 7살이 되기 전에 어떤 한 집에서 일주일동안 지내게 만든 아버지. 그동안 아이는 밖으로 나가지 말라는 명령을 받는데 다른 친구를 만난 아이는 잠깐이면 되겠지 하고 밖으로 나간다. 그 아이는 어떻게 되었을까. 제일 처음에 나온 <은거의 집>의 줄거리다. 집이라는 존재는 작가에게 굉장히 큰 영향을 주는 듯이 보인다. 화가, 흉가 그리고 마가로 이어진 집 시리즈를 비롯해서 기관이라는 제목의 작품도 작가가 사는 집이라는 부제가 붙어있지 않던가. 그래서 더욱 흥미롭게 여겨지는 바이다.
누군가의 죽음이나 사고를 예견하는 그림 이야기를 그린 <예고화>는 상당히 흥미로왔으며 실제로도 이런 일이 있을까 하는 궁금증을 가지게 된다. <모 시설의 야간 경비>는 솔직히 약간은 쉬어가는 페이지처럼 느껴졌고 < 부르러 오는 것>이라는 제목의 이야기도 역시나 집과 관련된 이야기이며 마지막으로 표제작인 <우중괴담>은 오래전 자신과 같이 작업을 했던 북디자이너를 만나 그의 괴담을 듣는 것으로 마무리 한다.
미쓰다 신조는 작가의 이름이 곧 그 장르가 된다. 그런 독보적인 캐릭터를 가진 작가다. 그런 특징만으로도 앞으로 계속 작가의 작품을 읽게 되는 계기가 될 것이다. 분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