굿바이, 욘더
김장환 지음 / 비채 / 2022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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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마다 고유의 속도를 가지고 있다. 절대적으로 빠르게 읽혀서 페이지 터너라는 별명울 붙여야 할 정도의 이야기가 있는 반면 충분히 긴 호흡으로 한 박자 쉬고 두 박자 쉬고 그렇게 느리게 느리게 읽어주어야 할 이야기도 있는 법이다. 절대 빠르게 읽지 말아야 할 이야기, 그것이 바로 이 책 굿바이 욘더다.

미리 말하지만 이 이야기는 개정판이다. 전에 나왔었지만 어느 순간 잊혀졌었고 그 이야기를 새로 발견해 내서 드라마로 만들었다. 그렇다. 이 책은 드라마 <욘더>의 원작소설이다. 이쯤되면 더 궁금하지 않은가. 감독은 이 책에서 어떤 점을 발견해서 그것을 드라마로 만들 생각을 했는지 말이다. 어떤 매력을 꺼낸 것일까. 나는 그 포커스를 찾고 싶었다.

요즘 사람들 죽어가는 거, 그게 그냥 죽은 게 아니오. 모두 욘더로 간 거지.

188P

여기 아내 이후를 병으로 떠나 보낸 남자 김홀이 있다. 이 세계에서 누군가의 떠남은 참으로 간단하다. 단지 몇 번의 클릭으로 이루어지는 장례식. 그들에게는 진정 아무도 존재하지 않는 것인가. 가족이라던가 친지라던가 또는 친구라던가. 그런 사람들에게는 간단히 메세지 하나만으로 누군가의 떠남을 알린다. 그리고 이 년 후 잊혀졌던 메일에서 그녀 이후가 부르는 메세지를 발견한다. '여보, 나야'라는 제목의 메세지. 그렇다. 이 이야기는 오직 이후와 김홀 그 두 사람에게 초점이 맞춰져 있다. 물론 그들이 다른 공간에서 만나는 사람들도 존재하지만 기본적으로는 그들 둘이다. 그들의 사랑이 이 이야기의 핵심이라고 볼 수도 있겠다. 이후는 세상을 떠났지만 김홀이 자신을 찾아올 수 있도록 여지를 남겨 두었고 김홀은 고민 끝에 그녀를 따랐다고 볼 수 있다. 그런 결정을 하는데는 무엇이 작용했을까. 만약 그가 자신의 부모를 생각했었다면 그가 그렇게 그녀를 따라 욘더라는 공간에 입성할 수 있었을까. 나는 그것이 알고 싶어졌다. 

나는 또 알고 싶어졌다. 사이버 이모탤리티, 가상공간에 마련된 불멸의 세상, 또 다른 말로 하면 사이버 천국이라고도 불릴 수 있는 그곳. 거기에 가면 누구나 영원히 생을 유지하고, 행복하게 지낼 수 있다는 곳. 이곳에서 살던 사람들이 이곳을 떠나 가는 곳. 이곳에 있는 사람들은 그저 상상으로만 그곳에 그들이 존재할 것이라고 믿어야만 하는 그런 곳. 그곳에 갔다 돌아온 사람은 없기에. 작가는 SF적인 판타지를 구현하고 있지만 그것은 어쩌면 종교라는 것에 바탕을 둔 것이 아닐까. 누가 보아도 이것은 극락이나 천국을 의미하는 것과 유사하지 않은가. 이 세상을 떠난 사람들을 만날 수 있는 곳. 그런 곳이 있다면 나는 어떤 선택을 할까. 그곳을 위해서 이곳을 버릴까 아니면 아직은 이곳에 남을까. 

'지금 아닌 다른 곳에 더 나은 곳이 있다'는 믿음이란 것이었다.

42P

극단적인 선택을 하는 사람들은 아마도 이 세상에 대한 힘듦을 가지고 있었을 것이다. 이 세상에 살고 있는 사람들에 대한 환멸이라던가 부당함 그리고 억울함도 있었을 것이다. 살아간다는 것 자체가 힘들었을 것이다. 그랬기에 그런 끔찍한 선택을 자행할 수 있었을 것이다. 그들은 그 이후의 삶이 있었다고 믿었을까. 아니면 단지 끔찍한 이곳을 떠날 수 있는 것만으로도 감사하며 떠났을까. 여기 아니면 다른 곳이 있다는 전제가 있다면 그래도 여전히 사람들은 이곳에 남는 것을 선택할까.

당신은 한 다발의 뉴론, 나는 한 움큼의 회로일 뿐이에요.

219P

본문 속에서는 사람과 더불어 각종 사이보그들이 공존한다. 사람들은 오래 살기 위해서 또는 자신만의 편리를 위해서 자신들의 장기를 인공적인 기관으로 바꾸어 놓았다. 신경으로 구성된 인간이라는 존재. 그리고 회로로 구성된 사이보그라는 존재. 그들 사이에 다른 점은 무엇일까. 어느 존재가 더 우월한 것일까. 아니 애초에 그런 것을 따질 수 없는 대적관계이려나. 만약 인간과 사이보그의 결합이 이루어진다면 그들의 자손은 어떠한 존재로 구성될지 그 또한 상상하기 힘든 그런 요소이기도 하다. 

개정판 작가의 말에서 이 소설에서 쓰였던 단어들을 좀 바꿔야 할 필요성이 있었지만 오래된 것은 오래된 대로 두었다고 했다. 개작이 이루어지지 않았다는 소리다. 본문 속에서 쓰인 단어나 명칭이나 기술들은 이미 우리에게 바짝 다가와 있기도 하다. 컴퓨터가 발달되고 인터넷이 상용화되면서 우리의 삶은 걷잡을 수 없이 빠른 속도로 변화하고 있다. 기술의 발전이 그런 속도를 만들어 냈다. 분명 내가 어렸을 때만 하더라도 드르륵 거리면서 문을 닫을 수 있는 흑백 티비가 있었고 엄마가 시집 올 때만 하더라도 할머니가 살았던 그 동네에는 전기가 들어오지 않는 곳도 있었다고 했는데, 할머니 집 화장실은 푸세식이라서 냄새와 벌레와 싸우며 화장실을 참아야만 했었는데 요즘 친구들은 그런 시절이 아주아주 몇백년 전으로만 여길 수도 있겠다는 생각도 든다. 빠른 세상이다. 그만큼 적응하기가 힘들기도 하다. 그래서 이 이야기가 빠르게 읽히지 않는다. 누군가를 그리워하고 보고 싶어하는 마음은 누구나 다 가지고 있을 것이다. 그 마음 하나로만 욘더로 향하기에는 내가 가진 사랑의 깊이는 아주 얕은가보다. 아니면 나는 아직은 이 세계에 더 발을 붙이고 살고 싶은지도 모르겠다. 언젠가는 그곳으로 이동을 할 수도 있겠지만 아직은 읽을 책들이 더 많이 남아 있는 이곳에서 남아 있고 싶은 마음으로 굿바이 욘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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