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사랑
히가시노 게이고 지음, 민경욱 옮김 / ㈜소미미디어 / 2022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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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러가지 소재를 다양하게 사용해서 독자들에게 읽는 재미의 참 맛을 알려주는 작가가 바로 히가시노 게이고가 아닐까. 자신이 좋아하는 스포츠 분야를 활용하기도 하고 학교 폭력이나 또는 로맨스까지도 모든 것에 미스터리를 더해 자신만의 확고한 장르를 만들어 낸다. 얼마 전 읽었던 이케이도 준의 [노사이드 게임]은 대기업 럭비팀의 이야기였는데 [외사랑]에서는 대학 미식축구팀이 그 주인공으로 등장한다. 

약간의 차이는 있겠지만 이런 것만 봐도 일본의 스포츠 세계는 우리보다 조금은 더 넓음을 알 수 있다. 올림픽에서도 다양한 종목에서 메달을 따는 이유가 이런 뒷받침이 되어 주는 것 때문이 아닐까. 우리나라에서도 인기 종목만 집중육성하는 것이 아닌 다양한 종목의 여러 선수들이 운동에만 집중할 수 있는 여건이 되면 좋을 것 같다. 

매년 날을 정해놓고 만나는 데이토대학 미식축구부 선수들. 그들은 모일 때마다 자신들의 마지막 경기를 되새긴다. 그런 날이었다. 그녀를 만나기 전까지는 말이다. 스가이와 데쓰로는 귀갓길에 미쓰키를 만난다. 함께 활동했던 그녀였기에 모임에 나오지 않은 것을 이상하게 생각했지만 무언가 숨기는 듯한 그녀를 자신의 집으로 데려간 후 터진 그녀의 고백은 더 큰 폭탄이었다. 

미쓰키는 말이야, 내게는 친구야. 남자냐 여자냐는 상관없어.

친구니까 어떤 위험이 닥치더라도 무슨 짓을 해서든 지켜주고 싶어.

일반적인 논리나 규칙 따위 난 몰라. 만약 그렇게 할 수 없다면 친구가 된 의미는 없어.

아니, 애초에 그건 친구가 아니야.

85p

데쓰로는 미식축구부의 매니저였던 리사코와 결혼했다. 리사코와 미쓰키는 당연히 친한 친구였다. 자신이 사람을 죽였다고 고백한 친구에게 당신은 무슨 말을 할 수 있을 것인가. 범인인 친구를 숨겨 줄 것인가 아니면 자수하라고 권유를 할 것인가 그것도 아니라면 범인이 여기있다고 신고를 할 것인가. 오랜만에 보는 친구가 분명 예전에는 여자였는데 남자의 모습으로 나타난다면 당신은 그 친구에게 무어라 말을 할 수 있을 것인가. 친구라는 존재는 어디서부터 어디까지 인정해줄 수 있는 것일까. 남사친이나 여사친이라는 말이 생겨난 지도 오래되었다. 사귀는 사이가 아닌친구지만 단지 성만 다른 그런 사이다. 그런 존재를 어디까지 인정해 줄 수 있느냐는 것도 상당히 많이 왈가왈부되었던 주제 중에 하나다. 대체 사람의 성이라는 것이 무엇이길래.

"나는 남녀를 차별하지 않아."

"차별해서는 안 된다고 생각할 뿐이지. 그게 바로 남녀는 서로 다르다고 생각한다는 증거야. 똑같이 생각하면 애당초 차별이라는 단어 자체가 머리에 떠오르지 않지."

"그렇게 말해도 현실적으로 차이가 있잖아. 그 차이에 따라 행동하는 게 그렇게 나빠?"

443p

미국에서는 백인과 흑인을 차별했었다. 노예해방이 되고 나서 차별금지법이 생겼지만 요즘 시대에도 흑인들에게는 더 강압적으로 수사를 하거나 발포를 하는 등 차별은 여전히 남아 있다고 볼 수 있다. 서양에서는 동양 사람들을 차별했었다. 비하하는 말을 하는가 하면 무차별폭력도 행해졌었다. 코로나 이후 바이러스가 중국에서부터 시작되었다는 것이 증명되고 난 이후 한동안은 그런 차별이 더 심하게 이루어졌다.

기본적으로 사람은 남자와 여자 둘로 나뉜다. 제3의 성이라는 것이 등장하고 있지만 개인적으로는 그런 기준은 무의미하다 생각한다. 어찌했건 남자 아니면 여자가 아닌가. 자신이 태어난 성 그대로 살아가는 것이 가장 바람직하다고 생각하는 주의다. 굳이 왜 다르게 살아야 할 이유를 찾지 못했기 때문 일수도있다. 미쓰키는 자신이 결혼을 해서 아이를 낳았음에도 자신이 여자임을 인정하지 못하겠다고 했다. 그래서 자신은 꼭 남자가 되어야만 한다고 했다. 성차별 때문에 세상에서 자신이 하고싶은 일을 하지 못한다면 억울하기는 할 것이다. 예전에는 그랬을 수도 있다. 조선시대만 하더라도 여성들은 결혼해서 아이를 낳는 것 외에 할 수 있는 일이 많이 없었으니 말이다.

그러나 요즘은 어떤가. 성차별금지법도 생겼고 자신이 노력만 한다면 어느정도는 하고 싶은 일들을 하면서 살지 않는가. 자신이 하고 싶은 일을 하지 못하는 것이 남자가 아니어서 또는 여자가 아니어서라고 하다면 그것은 하나의 핑계가 되지 않을까. 군인을 비롯한 대부분의 곳에서 남녀가 평등하게 때로는 여자가 더 우월하게 일을 하는 것을 본다면 말이다. 물론 신체적으로 남자와 여자는 많은 차이를 가지고 있다. 그렇기 때문에 올림픽을 비롯한 스퐃츠 경기에서 남자부와 여자부를 나누어서 진행을 하고 있다. 기형으로 인해서 남자도 아니고 여자도 아니게 태어난 존재들은 가끔 있다. 이야기 속에서 나온 무쓰미가 그런 경우다. 그런 존재들은 대다수가 아닌 몇몇 일부인 경우일 뿐이다. 때문에 새로운 법을 만들어 낼 수는 없는 것이 아닐까.

젠더이슈에다가 차별 문제까지 더해서 기반으로 쌓고 하나의 살인사건을 그 위헤 착실하게 얹은 이 이야기는 여타 다른 히가시노 게이고의 작품들과 마찬가지로 지극히 많은 것들을 생각하게 만든다.

마지막으로 궁금한 것 하나. 처음에 미쓰키는 화장이 엉망인 상태로 등장한다. 데쓰로는 그것을 나중에야 파악하는데 파운데이션도 뭉쳐있고 화장품을 닥치는 대로 칠한 듯 하다고 표현하는데 그것은 미쓰키가 남자로 살아가면서 화장을 하는 법을 잊어버린 것을 의미하는 걸까 아니면 남자로 살아가기 때문에 화장을 안했다는 것을 의미하는 걸까. 아무리 안 했다고 하더라도 친구들을 만나러 여장을 하고 왔다면 아니 여자의 모습으로 왔다면 화장을 할 수도 있는 것이 아닐까. 덕지덕지 바른 것이 더 이상하지 않은가? 차라리 아무 것도 하지 않고 립스틱만 발랐다고 하는 것이 더 나으려나. 미쓰키는 남자로 살아온 시간보다 여자로 살아온 시간이 더 길고 대학을 나와서 사회생활까지 했던 여자다. 그런 여자가 화장 하는 법을 모를 리는 없고 그래서인지 이 부분이 왠지 모르게 어색하게 느껴졌다. 누군가 나와 같은 생각을 했따면 그 의미를 파악하고 싶을 만큼 궁금했던 부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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