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리의 폰에는 사람이 이름이나 닉네임으로 저장되어 있지 않다. 단 하나의 알파벳뿐이다. 하지만 그것으로 모든 것이 된다. 겹치는 알파벳이 없기 때문이다. 한 손가락으로 꼽을만한 인맥. 보통의 사람으로는 생각할 수 없을만큼 좁은 인맥이지만 그 세상이 해리의 전부다. 그것이 전부. 그에게는 누구도 더 들어올 수 있는 사람도 나갈 사람도 없다. 그의 세계다.
힘들고 어려움 속에서도 해리는 음악을 잊지 않는다. 인맥은 다섯 손가락 안에 꼽을 정도지만 그가 가지고 있는 음반은 천오백 장이 넘는다. 그에게는 더 넓은 세상이다. 요네스뵈는 음악에 일가견이 있는 작가다. 자신이 직접 밴드에 참여를 할만큼 말이다. 그런 만큼 더욱 여기에 실린 노래 하나하나가 다 소중하고 귀하다. 때로는 해리의 상태를 대변해주는 것이 노래이기도 하고 아주 극적인 순간에 해리의 인생을 바꿔 놓은 것도 노래다. 그렇게 본다면 노래는 해리의 인생인지도 모르겠다.
칼. 누구나 한번쯤은 베여보지 않았을가. 때로는 종이가 칼처럼 그 역할을 대신하기도 하지만 칼은 본질적으로 무언가를 베어내는 도구가 된다. 일반적인 칼의 용도는 주로 요리에서 사용된다. 요리할 때도 우리는 칼로 무언가를 썰거나 자르거나 베어낸다. 그렇게 쓰이는 칼은 누군가를 죽이는 수단이기도 하지만 자신을 방어하는 도구이기도 하다. 칼은 또한 훌륭한 수집품이기도 하다. 세상에는 얼마나 다양하고 아름다운 칼이 많은지. 날카롭게 벼려진 칼은 누군가에겐 보는 것만으로 옴싹해지는 느낌을 줄 수도 있지만 누군가에게는 흐뭇하게 바라보는 대상이 되기도 할 것이다. 칼. 누가 소유하느냐에 따라 달라지는 그 칼. 지금 이 칼은 누구를 향해 겨눠지고 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