형사 해리 홀레 시리즈 12
요 네스뵈 지음, 문희경 옮김 / 비채 / 2022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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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네스뵈는 해리를 가장 극한까지 몰아붙이기로 유명한 작가다. 자신이 만들고 자신이 숨을 불어 넣고 자신이 형상화 시켰지만 자신이 애정하는 만큼 해리를 괴롭힌다. 조금 행복해졌나 싶으면 다시 불행의 나락으로 빠져버린다. 그것이 누군가의 다른 사람으로 인한 것이 아닌 자신으로 인한 것이기에 무어라 말을 할 수도 없다. 이제는 더이상 떨어질 곳도 없다. 더이상은.

해리도 마찬가지로 온화하고 친절해졌다. 거의 사교적인 인간이 되었다. 사랑하는 여인과 원만한 결혼 생활을 이어가며 행복하게 길들여졌다. 완벽하진 않았지만. 그래도, 젠장, 누구든 감당할 수 있는 수준에서 완벽했다.

445p

시리즈의 특성은 두가지로 나뉜다. 한 명의 주인공이 이끌어 가는 건 같지만 전혀 별개의 이야기가 나와서 전작을 읽지 않아도 되는 경우. 한켠의 [탐정도 보험이 되나요]가 그랬다. 전일도는 계속 나오지만 딱히 전작과 연결점이 없어서 그냥 한 권만 읽어도 충분하다. 물론 주인공의 상태를 잘 알려면 첫번째 이야기를 읽는 것이 중요하지만 말이다. 전작과 연결점이 생기는 경우는 조금 다르다. 새로운 이야기가 시작된다 하더라도 전작에서 나왔던 등장인물이 연속해서 나오고 사건이 마무리가 되지 않았을 경우 다른 사건이라 하더라도 접점이 생기는 것이다. 그러니 필히 전작을 읽는 것이 필요하다. 바로 이번이 그러한 경우다. 칼을 읽으려면 전작인 [목마름]을 읽는 것이 필요하다. 그 이야기 속의 범인은 여기에서도 연결되니 말이다. 그리고 해리의 상태가 이렇게 되기까지의 이유륻 앞에서부터 읽어와야만 조금은 더 이해하기 쉽다.

당신은 PTSD에 걸린 8퍼센트예요. 자기 행동에 정당성을 부여할 조건이 충분한데도 스스로 정당성을 부여하지 못하는 사람들이요. 무의식중에. 그러면서 적극적으로 자신에게 책을 지울 방법을 찾는 사람들.

205p

해리의 행복은 끝났다. 라켈과 올레그와 함게 행복하게 영원히 살았습니다 하면 해리 시리즈가 여기서 끝나기라도 하는 걸까. 작가는 해리를 다시 한번 힘들게 만든다. 해리는 삶에 의존하기보다 술의 힘을 빌렸다. 그렇게 술에 취한 인생이 되었다. 해리는 전작에서 발렌틴을 죽였다. 노르웨이 최악의 성범죄자들 중 한 명이었던 그는 경찰과 대치 상황에서 해리가 쏜 총에 맞아서 죽었다. 그의 무덤 앞에는 아버지인 스베인 핀네가 있다. 아버지라고 해서 무언가 끈끈한 관계가 있는 것은 아니지만 핀네는 자신의 아들을 죽인 해리가 못마땅하다. 그 또한 성범죄자이고 발렌틴을 조사하는 중에 해리는 그를 찾아갔었다. 이제 그는 자유의 몸이 되었다. 그는 여전히 자신의 범죄를 자랑스럽게 생각하며 발렌틴을 대신할 씨를 뿌리러 다닌다.

라켈의 R을 눌렀다. 나머지 연락처는 올레그의 O, 외위스테인의 ⵁ, 카트리네의 K,비에른의 B, 쇠스의 S,스톨레 에우네의 A였다. 이게 다였다.

319p

해리의 폰에는 사람이 이름이나 닉네임으로 저장되어 있지 않다. 단 하나의 알파벳뿐이다. 하지만 그것으로 모든 것이 된다. 겹치는 알파벳이 없기 때문이다. 한 손가락으로 꼽을만한 인맥. 보통의 사람으로는 생각할 수 없을만큼 좁은 인맥이지만 그 세상이 해리의 전부다. 그것이 전부. 그에게는 누구도 더 들어올 수 있는 사람도 나갈 사람도 없다. 그의 세계다.

힘들고 어려움 속에서도 해리는 음악을 잊지 않는다. 인맥은 다섯 손가락 안에 꼽을 정도지만 그가 가지고 있는 음반은 천오백 장이 넘는다. 그에게는 더 넓은 세상이다. 요네스뵈는 음악에 일가견이 있는 작가다. 자신이 직접 밴드에 참여를 할만큼 말이다. 그런 만큼 더욱 여기에 실린 노래 하나하나가 다 소중하고 귀하다. 때로는 해리의 상태를 대변해주는 것이 노래이기도 하고 아주 극적인 순간에 해리의 인생을 바꿔 놓은 것도 노래다. 그렇게 본다면 노래는 해리의 인생인지도 모르겠다.

칼. 누구나 한번쯤은 베여보지 않았을가. 때로는 종이가 칼처럼 그 역할을 대신하기도 하지만 칼은 본질적으로 무언가를 베어내는 도구가 된다. 일반적인 칼의 용도는 주로 요리에서 사용된다. 요리할 때도 우리는 칼로 무언가를 썰거나 자르거나 베어낸다. 그렇게 쓰이는 칼은 누군가를 죽이는 수단이기도 하지만 자신을 방어하는 도구이기도 하다. 칼은 또한 훌륭한 수집품이기도 하다. 세상에는 얼마나 다양하고 아름다운 칼이 많은지. 날카롭게 벼려진 칼은 누군가에겐 보는 것만으로 옴싹해지는 느낌을 줄 수도 있지만 누군가에게는 흐뭇하게 바라보는 대상이 되기도 할 것이다. 칼. 누가 소유하느냐에 따라 달라지는 그 칼. 지금 이 칼은 누구를 향해 겨눠지고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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