씨앗을 뿌리는 사람의 우화 비채 모던 앤 클래식 문학 Modern & Classic
옥타비아 버틀러 지음, 장성주 옮김 / 비채 / 2022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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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로런 올라미나다. 로스엔젤레스에서 30키로미터 떨어진 로블리도라는 마을에서 살고 있다. 아니 살았다. 2024년에는 그랬다. 아버니는 목사이자 교수였고 새엄마는 선생이었다. 동생들도 있었고 부유하지는 않지만 그래도 배고프지는 않게 살았다. 우리 마을은 들어오는 입구에는 자물쇠가 달렸고 장벽이 둘러져 있었다. 외부인들이 함부로 올 수 없도록 말이다. 그래도 그때가 가장 행복한 시기였다.

2025년 이웃이 실종됐고 내 동생은 집을 나갔다. 엄마 보러 선물도 가지고 온다던 동생은 그렇게 영원히 돌아오지 않았다. 아버지는 시신을 확인했고 나는 생존가방을 만들었다. 나는 이것이 끝이 아님을 예언이라도 했던 것일까. 2026년 친구네 집은 새로운 곳으로 이주를 했고 아버지가 실종되었다. 동네 사람들 모두 모여 아버지를 찾으러 나섰지만 그 어디에서도 찾지 못했다. 이웃집에는 불이 났고 사람들이 그쪽으로 몰린 틈을 타서 우리집에는 도둑이 들었다. 그래도 숨겨 둔 돈을 다 가져가지는 못했다.

하느님이 있기는 있을까? 만약 있다면, 그(그녀? 아니면 그것?)는 우리를 소중히 여기기는 할까?

29p

2027년 온 동네가 다 불탔다. 마약메 미친 침략자들은 불을 지르고 강간을 하고 폭력을 휘둘렀다. 모두가 다 도망을 쳤다. 마을을 떠나 피난민이 되었다. 우리 가족도 마찬가지였다. 새엄마를 중심으로 남은 동생들과 함께 나도 떠났다. 하지만 나는 초공감신드롬을 가지고 있지 않던가. 다친 사람을 보고서는 그 사람에 공감된 나머지 꼼짝도 할 수가 없었다. 다른 가족들은 내가 이렇다는 사실을 모르고 계속 가버렸다. 그렇게 가족들과 생이별을 했다. 나는 혼자 남았다. 아니 나에게는 생존가방이 있었고 묻어두었던 비상금이 있었다. 그리고 새로운 이웃들을 만나서 하나의 그룹을 만들었다.

내게는 진리처럼 보이는 '변화가 곧 하느님'이라는 특이한 신앙 체계는 지구의 씨앗이라는 뜻에서 '지구종'으로 이름 지을 것이다.

136p

지금 나는 처음의 사람들과 여전히 함께 있다. 아니 그들보다 더 많은 사람들과 함께다. 우리는 이동을 하면서 누군가를 구해주었고 그들은 우리 그룹의 일원이 되었다. 나는 시를 쓴다. 지구종에 관한 시다. 내가 무언가를 쓰는 것을 궁금해 하던 친구 해리에게 시를 보여 주었고 읽고 쓰는 것을 자라에게 알려주었다. 그 누구도 믿을 수는 없다. 방심하는 사이 누군가는 내 배낭의 끈을 자르고 가져가 버릴수도 있고 목숨과도 같은 물을 가지고 도망갈 수도 있다. 그렇다고 완전히 배척할 수도 없다. 우리는 같은 인간이기에 말이다. 그렇게 우리는 조금씩 새식구들을 받아들이면서 지금은 처음보다는 훨씬 많은 인원이 되었다. 그중에는 물론 아이들도 있다.

결백이 입증될 때까지는 모두가 유죄라고?

318p

처음에는 무작정 북쪽으로 향했다. 삶을 살아갈 수 있는 곳, 정당하게 일을 하고 돈을 받을 수 있는 곳, 안전하게 살 수 있는 곳을 찾아서 떠났다. 계획은 계획일 뿐 그것이 언제나 온전하게 이루어지라는 법은 없다. 나 아니 우리도 마찬가지였다. 고속도로를 따라 가는 길에는 별별 일들이 다 생겼다. 가려던 길이 엉망이 되어버리고 안전하지 못하게 되자 방향을 틀어야 했다. 그런 모든 것에는 새로 만난 사람들의 도움도 컸다.

지구종이 다루는 건 계속 진행되는 현실이지, 초자연적 권위의 표상이 아니에요. 숭배는 행동을 동반하지 않으면 쓸모가 없어요. 행동을 동반하는 숭배는 오로지 그것이 당신을 진정시키고, 당신의 노력을 집중시키고, 당신의 마음을 편하게 해줄 때만 쓸모가 있고요.

387p

아버지가 목사였고 목사의 딸이었던 나였지만 나는 하느님을 믿지 않는다. 아니 나만의 하느님을 만들었다. 변화가 곧 하느님이다. 변화해야지만 살아남을 수 있는 세상이기에 나는 그렇게 생각했다. 나는 나만 알고 있던 내용을 사람들과 나누었다. 그들은 내 의견에 동조를 하기도 했지만 반박을 하기도 했다. 내 생각이 무조건 맞다고 그들이 여기지는 않을 것이라고 알고는 있었다. 하지만 나는 나만의 하느님을 만들고 지킬 것이다.이제 우리는 한 곳에 정착을 하려 한다. 이 곳에 언제까지 있을 수 있을까. 우리가 생각한 대로 이루어진다면 참 좋을테지만 일단은 이제부터 시작이다. 내 이름은 로런 올라미나이고 나는 열여덟살이다.

변화가 곧 하느님이고, 마지막에는 하느님이 진실로 승리한다. 하지만 그 마지막이 언제이고 어째서 찾아오는지에 대해서는 할 말이 있다.

523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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