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반적으로 문학에서 고전이란 오랫동안 인기를 얻으면서도 통찰력이 있는 내용이 나오고 조금은 딱딱한 면이 많지만 장르 문학에서 고전은 클래식한 면을 돋보이게 만들면서도 기본 원리에 충실해서 읽는 재미를 더해주는 경우가 많다. 간혹 지금 현재 나오고 있는 장르 소설보다는 조금 수위가 낮은 사건들에 실망을 하는 사람들도 있겠으나 그 또한 고전만의 매력이라 할 수 있겠다. 리슐리외 호텔 살인이라는 간단한 제목의 이 책이 그런 고전스러움을 유감없이 드러내고 있다. 재미를 잃지 않아 더욱 반갑다.
호텔이라고는 하지만 여행객이나 잠깐 머물렀다 가는 손님보다는 장기적으로 투숙하는 사람들이 많은 그런 곳이 바로 리슐리외다. 미스 애덤스도 그러하다. 그녀는 호텔에서 오랫동안 머무르면서 자신들과 같은 장기 투숙자들을 이미 다 파악하고 있었다. 나이가 들었어도 아니 나이가 든 것으로 인해 더욱 신중한 모습을 보여주지만 간혹 가다 귀여운 모습을 보여주기도 해서 그녀의 매력에 빠지지 않을 수가 없다. 그저 평범하게 여기에 머무르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하던 이야기는 급작스럽게 하나의 사건을 던져준다. 그것은 바로 미스 애덤스가 영화를 보기로 한 날 그녀의 방에서 한 남자가 죽은 채로 발견된 것이다. 그것도 아주 잔인한 방법으로 대롱대롱 달린 그. 그는 이 곳의 투숙객이었고 얼마 전부터 보이던 사람이었다. 여기에 그의 정체가 드러나면서 사람들은 더 혼란에 빠지게 된다.
범행 시간에 호텔에 있었던 여러분 중 누구도 그 의문의 시간에 대한 알리바이가 없습니다. 105p
기본적으로 경찰은 아무런 일도 하지 않는다. 단지 사람들을 모아놓고 알리바이를 물어보면서 은근히 협박하고 위압을 줄 뿐이다. 그렇게 하면 무슨 범인이 그래요 내가 범인이에요 내가 사건을 저질렀어요 하면서 손 들고 나올 것이라고 생각하듯이 말이다. 줄지어 이어지는 사건들로 인해서 호텔의 투숙객들은 더욱 공포에 휩싸이는데 사실 호텔은 닫힌 공간이 아니다. 누구라도 드나들 수 있고 가장 많은 사람들이 오가는 곳이라 할 수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장기 투숙객이라는 특정 조건을 달아주고 사건 현장에서 있었던 또는 그들과 관계가 있었던 사람들을 모두 한 방에 가두어 둠으로 인해서 마치 닫힌 공간의 미스터리같은 느낌을 꾀하고 있다. 사건에 연관되어 있는 인물들이 줄줄이 죽어 나가는 것은 마치 크리스티 여사의 [그리고 아무도 없었다]를 연상시키기도 한다. 거기서도 사건이 계속적으로 발생을 했을 때 사람들은 모여들기 보다는 각자 도생을 꾀하는 사람들도 있었다. 이 곳도 역시 마찬가지다. 또한 미스 애덤스는 크리스티 여사의 미스 마플을 연상시킨다. 그런 생각을 분명 다른 사람들도 했을 것이다. 미스 마플과 미스 애덤스의 차이라면 무얼까 미스 애덤스는 조금은 더 러블리한 아니아니 큐트한 면이 강조된 그런 여사가 아닐까.
원초적인 인간들의 세계에서는 자기 보존이 제1 법칙인 것이다. 168p
이런 작품이 이때까지 알려지지 않았다는 자체가 신기했다. 많은 작품을 썼지만 작가가 투병 끝에 사망을 하고 작품은 그저 묻혀버리고 말았다. 이제 이 작가의 다른 작품들을 보고 싶다. 천 여 편의 단편소설도 흥미로울 것 같다. 단편을 별로 좋아하지 않는 편이지만 이런 작가의 작품이라면 그 자체로도 충분히 읽을 가치가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