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젠가 기억에서 사라진다 해도
에쿠니 가오리 지음, 김난주 옮김 / (주)태일소담출판사 / 2021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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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가락>이라는 제목으로 시작하고 있는 이야기는 학교 이야기를 다루고 있음을 보여준다. 수업 시간에 쪽지를 돌리는 아이들. 매점에서 무엇을 살 지를 결정하는 사소한 문제인데도 그때 당시에는 그런게 뭐 그리 재미나고 좋았을까. 분명히 수업 끝나고 해도 되는 이야기인데도 불구하고 수업 시간에 쪽지를 돌리고 서로간에 눈짓을 주고 받고. 그때 당시의 분위기가 스믈스믈 감지된다. 


기쿠코 하얀 거라고 쓴 아이. 기쿠코는 아빠가 따로 산다. 부부간에 사이가 좋지 않아서 그런 것이 아니라 아빠가 일을 하느라 전근을 간 것이다. 평범한 일상생활과 학교 생활, 그 중에 그녀를 만난다. 전철 안에서 만난 여자. 자신을 만졌던 그녀. 같은 시간에 같은 전철 안에서 만난 여자. 기쿠코는 그녀를 따라간다. 그 둘은 어떤 사이가 될까.


<초록 고양이>는 모에코의 이야기다. 아니 모에코가 본 에미의 이야기다. 다른 친구들과 같이 어울려도 가장 친한 사람은 있기 마련이다. 그렇게 에미와 가장 친한 그녀가 보는 에미. 늘 평소처럼 다닌다고 생각했었다. 하지만 에미는 순식간에 점점 이상해져갔다. 처음에는 그저 예민한 줄로만 알았지만 조울증을 보이는 등 정상적인 생활을 할 수 없게 된 에미. 왜 그렇게 된 것일까.


비엔나 커피를 좋아하는 유즈의 이야기는 <천국의 맛>으로 표현된다. 다케이의 남자친구와 같이 만난 이후로 그의 친구가 자신한테 관심을 보인다는 것. 말로는 그냥 만나볼게 하지만 그렇게 남자친구가 생긴다. 친구들에게는 아직 비밀. 그때는 다 그런 법이다. 여자 친구들에게는 아직 말할 수 없는 비밀 같은 거. 조금 더 확실해지면 말해야지 하는 거. 하기야 그때는 다 그렇지 않은가. 오늘은 쟤가 좋다고 했다가고 내일은 또 싫어질수도 있는 건데 말이다. 연애라고 해도 풋풋함이 느껴져서 좋다.


<사탕일기>라는 달달한 제목의 카나의 이야기. 찻집에서 일을 하고 목욕을 하고 일기를 쓰고 반복되는 생활을 하는 아이. 제목은 달달하지만 그 사탕은 보통의 사탕이 아니다. 카나가 사람을 평가할 때 쓰는 그런 사탕이다. 은색 사탕과 검정 사탕. 그녀가 사람을 평가하는 기준이다. <비, 오이, 녹차>는 유코 이야기라고 하지만 결국은 시토 이모 이야기라고 볼 수 있다. 시토가 보는 자신의이 언니와 조카 이야기라고 보면 될까. 딱 열 페이지의 이야기는 금방 끝나버린다. 


마지막 이야기인 <머리빗과 사인펜>은 무슨 에세이 제목 같다는 생각이 든다. 미요와 아저씨. 다카노 씨라는 이름에서 앞에서 언급되었던 사람이라는 걸 알 수 있다. 학창시절의 이야기는 제목 그대로 언젠가 기억에서 사라질 수 있다. 아니 사라질 것이다. 하지만 그렇다 하더라도 그 느낌은, 그때의 분위기는, 그때의 친구들은 아슴프레하니 어렴풋이 남아있지 않은가. 언젠가 또 다시 기억해 내길 기다리며 말이다. 우리는 그것을 추억이라고 부른다. 남겨진 기억은 추억으로 바뀌고 그 추억은 인생을 또 부드럽게 만들고 언젠가 쓰디쓴 날을 위로해주고 달래주는 당의정이 되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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