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피타프 도쿄 블랙 앤 화이트 시리즈 97
온다 리쿠 지음, 권영주 옮김 / 비채 / 2021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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온다 리쿠의 이야기는 봄날의 아지랑이 같은 느낌을 준다. 사막의 신기루 같은 느낌을 준다. 무언가 명확하게 드러나지 않으면서 아른거리는, 손에 닿을 듯이 잡히지 않는 그런 느낌이다. 그런 몽환적인 매력이 많은 사람들이 작가의 작품을 좋아하게 만드는 이유가 되기도 할 것이다. 그런 특징은 제목에서도 여지 없이 드러난다. [한낮의 달을 쫓다]처럼 문장으로 된 제목들도 제목 만으로는 무엇을 말하고자 하는지 짐작을 할 수가 없으며 [나와 춤]을 이라는 구문도 마찬가지다. 동사 부분이 빠져있으므로 인해서 나와 춤을 추겠다는 건지 추자는 것인지 안 추겠다는 것인지 무엇을 하겠다는 것이 불명확하다. 그런가 하면 [유지니아] 같은 명사 하나 만으로 이루어진 제목도 그 특징에서 벗어나지 않는다.

 

그런 면에서 볼 때 [에피타프 도쿄]라는 이 책의 제목도 상당히 특이하다. 에피타프의 뜻은 책의 뒷표지에 나와 있다. 묘비명이라고 말이다. 그렇다며 이 제목은 도쿄의 묘비명을 뜻하는 것일수도 있겠다. 실제로 이 제목이 의미하는 바는 책을 읽어야만 알 수 있다. 이것은 본문 속의 주인공인 K가 쓰고 있는 희곡의 제목이다. 책 속의 작가인 그는 이 제목을 통해서 무엇을 드러내고자 함인가.

 

동생과 우리는 살면서도 묘표를 만들고 있는 것이다. 힘을 합쳐, 죽어라 일해서. (273p)


본문 속에서는 희곡의 딱 두 장면이 등장한다. 제목에서 알 수 있듯이 이 작품은 죽음과 관련이 되어있다. 얼핏 보면 영화 <킬러들의 수다>를 연상케 된다. 겉으로는 전혀 일반인처럼 보이지만 정작 그들이 하고 있는 일은 우리가 생각하지 못했던 그런 사람들 말이다. 상당히 많은 등장인물들이 이 연극의 수다스러움을 짐작케 한다. 이 희극이 실제로 공연이 된다면 나는 희곡을 보는 대신 연극을 선택할 정도로 관심 있는 연극이 된다. 온다 리쿠는 이 작품을 위한 메모까지 이 이야기에 포함시켜서 이 연극에 대한 기대감을 높였다. 일본에서는 실제로 공연이 되었을까?

 

내가 느꼈던 온다 리쿠만의 특징은 이 작품 속에서도 그대로 살아있다. piece라는 제목을 붙여서 작품 속의 주인공인 K와 요시야의 일상을 그려내고 있다. 그들은 만나고 걸어 다니고 이야기를 나눈다. 어떻게 보면 이 K라는 인물은 작가인 온다 리쿠를 형상화 시킨 것인지도 모르겠다. 읽으면 읽을수록 이것은 소설인가 아니면 작가의 에세이인가 하는 느낌마저도 든다. 이 책이 소설인 것을 알지 못하고 읽는다면 에세이라고 느낄 수도 있을 것이다. 그렇게 개인적인 이야기와 더불어 소소한 일상들이 펼쳐진다.

 

그런가 하면 다른 색으로 구분 된 drawing에서는 요시야의 이야기가 드러난다. 이 역시 평범하지 않다. 자신이 흡혈귀라고 주장하는 그다. 거울에 자신의 모습이 비치지 않는다고 주장하는 그다. 실제로 그가 흡혈귀인지 자세한 설명은 생략한다. K가 쓴 희곡 에피타프 도쿄의 1막 1장과 2막 1장도 소개한다. 내가 가장 관심있게 읽었던 부분이기도 하다.

 

그렇게 piece를 중심으로 여러가지 이야기가 아코디언처럼 차곡차곡 쌓인 이 이야기는 악기를 잡아 당겼을 때와 밀었을 때의 소리가 사뭇 다르다. 그렇게 색다름을 안겨준다. 그러면서도 조화로움을 잃지 않아서 통일성을 제공한다. 모호하면서도 분명함을 긋고 있는 것이다. 나는 아직도 온다 리쿠의 매력을 다 이해하지 못했다. 여전한 아롱거림으로 남아있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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