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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억, 잊어야 하는 밤
진현석 지음 / 반석출판사 / 2021년 7월
평점 :
그렇다. 내가 기억을 잃기 전에는 아주 평범한 하루였다. (106p)
그런 책이 있다. 초반에 읽기 시작해서 얼마 지나지 않아 작가가 숨겨 놓은 트릭을 다 알아버리는 그런 책 말이다. 한국 작가의 데뷔작인 경우가 그럴 때가 많다. 개인적으로 나는 그렇다. 요즘은 너무 뛰어난 데뷔작들이 많아서 이게 실제로 데뷔작인가 작가 소개를 다시 볼 대도 많았다. 영미권 작가들이 대부분 그런 경우에 속했다. 그래서인지 요즘은 데뷔작이라 하더라도 꼼꼼하게 읽어야 할 필요성을 느끼게 되곤 했었다.
더 중요한 것은 내가 기억을 잃었다고 하는 그 시간에 나는 항상 그놈과 함께 있었다. 아니 같이 있었다고 사람들이 말한다. 보통 깨어나면 일주일 간은 그놈이 나타난다. (107p)
다른 사람들은 어떤지 모르겠지만 나는 작가가 써 놓은 이 구절을 보는 순간 이 책의 결말을 거의 알아버린 느낌이 들었다. 이 트릭은 [크로우걸]이나 다른 작품에서도 자주 쓰이는데 크로우걸에서는 너무 많은 등장인물이 나와서 상당히 헷갈려하면서 결국은 적어가면서 읽었는데 나중에 이 트릭을 알고나니 조금 놀란 경우였고 나이 작품같은 경우에는 작가가 애써 숨기려고 했는데 조금 삐죽 튀어나온 그 끝을 내가 당겨 버려서 풀려버린 느낌도 있다. 장르소설을 많이 읽어본 사람이라면 나처럼 깨닫지 않았을까?
이야기는 take라는 단어를 사용해서 총 3개의 시점에서 전개되고 있다. 하나는 택시기사의 이야기다. 여수에서 한 손님이 서울까지 가기를 원한다. 장거리다. 출발한다. 하지만 이 손님 어딘가 이상하다. 결국 사건이 터진다. 하나는 대학생의 이야기다. 자신이 공부하는 과가 마음에 들지 않아 바꾸려고 생각중이고 친구들과 같이 어울려 다니면서 술을 마신다. 고깃집을 하는 친구의 누나를 좋아한다. 친구들을 만나러 가는 길에 교통사고를 보게 되고 집에 가는 길에는 이상한 택시를 보게 된다. 마지막으로 하나는 형사의 이야기다. 그는 신고 전화를 받고 출동을 하지만 그곳에는 아무것도 없다. 대체 누가 무슨 이유로 출동을 명령한 것일까. 아니 그보다 이전에 어떻게 그의 번호를 알게 된 것일까.
서로 별개의 사건이라고 생각했던 것이 하나를 기점으로 착착 맞아 떨어질 때의 느낌은 짜릿하다. 그 맛에 이런 장르소설을 읽는 것이 아닐까 할 정도로 말이다. 한글로 쓰여진, 번역본이 아닌 이야기를 읽는 느낌은 더욱 찌릿하다. 익숙한 이름 그리고 알고 있는 배경 같은 것들이 더욱 가속도를 붙여주어서 재미를 돋군다. 나는 일찌감치 트릭을 파악했다고 적었다. 하지만 그것을 알았다 하더라도 재미가 반감되지는 않는다. 오히려 다음 이야기가 어찌 전개될지 아는 편안한 마음으로 지켜보게 된다.
그것이 내가 생각한 것과 딱 맞을때면 그렇지 하면서 내 스스로를 칭찬하게 되고 생각지 못한 전개로 빠질 때면 어라 이게 아닌데 하면서 더 집중해서 보게 된다. 안다고 하더라도 내가 이야기를 다 읽은 것이 아닌 이상은 어떤 결말이 나올지는 모를 일이다. 이 역시도 그러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