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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라진 소녀들
팜 제노프 지음, 정윤희 옮김 / 잔(도서출판) / 2021년 7월
평점 :
민폐 캐릭터가 있다. 자신이 하는 행동으로 하여금 다른 모든 사람들에게 해를 끼치는 그런 주인공을 뜻하는 말이다. 아마도 마리라는 이 주인공에게 어울리는 말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든다. 통신원으로서 발탁이 되어 일을 하지만 특수작전국 소속인만큼 스파이의 역할도 해야 하는 것이고 그것을 위해 훈련도 받았고 여차하면 쓰라고 청산가리도 주었다. 그랬다면 자신이 맡은 일이 얼마나 중요한지 그 중요성을 깨달아야 하는 것 아니었을까? 얼마를 같이 있었다고 그새 사랑에 빠진 그를 위해서 적진에 남는 것이 아니라 모든 것을 다 챙겨서 즉각 그 장소를 떠나야 했는데 아니냐고 물어보고 싶다. 물론 그랬더라면 그녀의 운명은 또 달라졌겠지만 기본만 이야기하자면 그렇다는 소리다.
이 책을 읽기 바로 전 [하란사]를 읽었다. 나라는 다르지만 시대도 다르지만 공통점이 있었다. 하란사와 마리는. 그녀들은 나라를 위해서 자신의 몸을 던진 그런 당찬 여성들이었다. 하란사는 비교적 부유하게 돈 걱정을 하지 않고 공부를 하면서 나라의 독립을 꿈꾸었고 마리는 하나뿐인 딸을 남편 없이 키우기 위해서 돈이 필요했고 자신이 벌고 있는 것보다 훨씬 더 많은 돈을 준다기에 그 일을 선택한 그 차이가 있을 뿐이다. 하란사는 직접 전장에 뛰어들지는 않았고 마리에 자신이 직접 통신원이 되어서 적진에서 활동을 했다는 그 차이만 있을뿐이었다. 하란사도 왕에게 대한 감정이 있기는 했을 것이다. 그녀가 남편이 있는 여자였기에 사모하는 감정은 더이상 진전이 되지 않았던 것일까. 마리는 남편이 없었기에 자신의 보스인 그에게 사랑의 감정을 느꼈던 것일가. 잘못된 일정을 더 엉망으로 만들어 버릴만큼?
애초에 주급을 많이 준다고 해서 온 거였다. 하지만 임무 수행 중에 목숨을 잃는다면 그 돈이 무슨 소용이겠는가? (93p)
1946년 그레이스는 출근길에 역에서 가방 하나를 발견한다. 그냥 지나쳐 갈 수도 있었고 분실물 센타에 가져다 줄 수도 있엇다. 그녀는 어느 쪽도 선택하지 않았다. 그 가방을 열었고 안에서 사진을 발견했다. 레이스로 곱게 쌓인 사진들. 그 사진은 어려보이는 여자들의 모습이 담겨 있었다. 저마다 다른 복장으로 사진을 찍은 그녀들은 누구일까. 그레이스는 무엇에 홀린듯 사진만 자신이 가지고 온다. 그렇게 이 모든 여정은 시작되었다. 퇴근길에 다시 역에 들른 그레이스는 자신이 사진을 꺼냈던 그 가방이 사라졌다는 것을 발견한다. 그녀가 기억하고 있는 것은 단지 그 가방의 주인이라 여겨지는 이름 뿐이다. 사진과 이름 이 두가지 만으로 이 모든 이야기는 시작되었다.
우리가 하려는 일은 독일군이 계획하는 모든 일을 최대한 방해하고, 군수품 공급을 늦추고, 철로를 폭파해 버리는 거야. (126p)
1944년. 마리는 단지 프랑스어를 잘 한다는 이유로 자신이 전혀 생각하지 못했던 삶을 살게 된다. 특수작전국 소속이 된 것이었다. 그녀는 전문적인 군인이 아니었다. 훈련을 받기는 했다. 물론. 하지만 짧은 시간 안에 얼마나 준비가 될 수 있었을까. 훈련을 받는 중에 임무에 투입되는 경우도 많았다. 그렇게 자신과 함께 하던 그녀들이 떠나갔다. 전쟁중인 시절이었다. 독일군의 보급을 끊을 수 있다면 무엇이든 하던 시대였다. 영국에서는 그렇게 그녀들을 투입했다. 엘레노어의 생각이었다. 남자들보다 여자들이 더 의심을 덜 받는다고 생각했고 그렇게 자연스럽게 적집에 투입시켜 무사히 임무를 완성할 수 있을 것이라 생각했다. 하지만 자신들이 알지 못하는 것은 있었다. 비밀은 안에서 새고 있다는 것이다. 그렇게 적진에 보내진 그녀들은 어디로 사라졌을까.
다들 과거를 잊고 싶어 하잖아요. (중략) 영국 정부에서도 모든 일이 이대로 묻히길 바랐을 거예요. (522p)
사실을 바탕으로 한 이야기는 언제나 기대했던 것보다 더 큰 감동을 남기게 된다. 국방부에서 일한 경험과 외교관으로 일한 경험을 바탕으로 작가는 이야기들을 쓰고 있다. 실제로 이렇게 투입된 소녀들이 있었는지는 우리는 알 수 없다. 그때 당시에는 무엇이든 전쟁을 막기 위해서 해내야 되는 시절이었으니 말이다. 대한민국의 하란사는 자신의 이름인 김란사로 현충원에 안장되었다. 만약 이 이야기들이 사실이라면 사라진 소녀들이 이야기에서처럼 작전 중 사망으로 인정받고 대우받는 위치에 놓였으면 하는 바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