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자
울리히 알렉산더 보슈비츠 지음, 전은경 옮김 / 비채 / 2021년 3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어제부터 유대인이 완전히 이방인이 되어버린 현실을 확연히 드러내고 싶기도 하군. 나를 과거와 똑같이 대하는 인간들에게. (19p)


도망자


그저 평범한 한 사람이었다. 그는. 사업을 하면서 살던 사람이었다. 남들처럼 그렇게 살던 사람이었다. 그 나라에 살던 다른 사람들과 겉모습의 차이는 있을지언정 흑인과 백인처럼 확역한 차이를 드러내는 사람도 아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루아침에 그는 도망자 신세가 되어 버렸다. 어제까지 자신을 친구로 대하던 사람들이 그에게 등을 돌렸다. 친구 뿐인가 가족도 자신을 외면하는 신세가 되었다.

그 모든 것은 단지 그가 유대인의 피를 가지고 있다는 그 이유뿐이었다. 그것이 그렇게 잘못된 것일까. 자신이 어찌해 볼 도리가 없는 것이 아닌가. 아무리 자신이 성형수술을 한다고 해도 자신의 피까지 모조리 바꿀 수는 없지 않은 일인가 말이다. [주홍글씨]라는 작품이 생각난다. 사람들이 단지 그 여자의 표시만 보고 그녀를 외면했다. 무슨 일이 있었는지도 모른 채 다른 사람들이 하던대로 그들은 단지 맹목적으로 표시를 붙였고 외면했고 손가락질 했다. 그 작품에 나온 것과 하등 다를 바가 무엇이 있는가. 질버만은 빨간 알파벳이 찍힌 여권을 가지고 어디를 갈 수 있단 말인가. 하물며 자신의 나라에서조차도 갈 곳이 없는데 말이다.

내 여권에 빨간색 'J'가 크게 쓰여 있으니까요. (271p)


 

 

 

 

 

 

난민


[아메리칸 더트]를 생각한다. 가족을 모두 잃고 카르텔에게 쫓기던 그녀는 아들과 함께 자신이 살던 나라를 떠나기로 결심한다. 단지 걱정이 되는 것은 자신이 어디를 가도 카르텔의 손길이 뻗어올 것이기 때문에 어디도 마음대로 갈 수가 없다는 현실이다. 비행기를 타려 해도 기록이 남는다. 그들이 자신들을 쫓아올 것은 자명한 일이다. 숨어야 한다. 하지만 숨을 곳이 없다. 결국 그녀의 선택은 난민이었다. 불법으로 남의 나라에 들어가는 것이었다.

여기 질버만도 그녀와 동일한 생각을 했다. 일단 가진 돈은 있다. 이 돈을 가지고 국경을 넘으려 했다. 자신에게 조여오는 올가미를 피해서 말이다. 아메리칸 더트의 그녀는 성공을 했지만 질버만에게 그런 좋은 운이 계속 따라줄까. 만약 그가 국경을 넘는다면 그 다음에는 어떤 인생이 그에게 펼쳐질까. 프랑스에 있는 아들에게서 허가서를 받았다면 또 그의 인생은 어떻게 달라졌을까.


우리나라에도 난민 문제가 중요한 이슈이다. 누군가는 그들을 받아 들여서 인도주의적 관점에서 해결해야 한다고 하고 누군가는 우리도 먹고 살기 힘든데 그들까지 다 받아들일 여력은 없다고 이야기 한다. 어느 누가 맞다고 손을 들어주기 어려운 상황이다. 어떻게 보면 나조차도 그런 분야에 회색을 띠고 있다는 것이 더욱 안타까운 사실이다. 당신의 선택은 어떠한가.


유대인 피가 독일 민족에 들러붙은 꼴 아닙니까. (29p)


여행자


여행이란 얼마나 즐거운것이던가. 갈 곳을 정하고 교통편을 예약하고 계획을 짜고 짐을 싸는 것조차도 다 즐거운 준비작업에 속하는 것이 아니던가. 그런 즐거움을 우리는 빼앗겼다. 자신이 거주하고 있는 공간에서 이동이 자유롭지 못하게 된 것이다. 같은 나라 안에서도 이동을 자제하는 판에 타국으로 나가는 것은 꿈도 꾸기 어려운 시대가 되어 버렸다. 만약 간다 하더라도 그곳에 들어가기 위해서는 긴 시간의 격리시간이 필요하다. 예전처럼 짧게 갔다 왔다 하는 것이 불가능해졌다는 소리다. 만약 여행이라는 것이 타의에 의해서 행해지는 것이라면 그것은 과연 진정한 즐거움을 줄 수 있을까?


여기 질버만은  뜻하지 않은 여행자가 되어 버렸다. 자신이 살고 있던 곳에서 내쫓김을 당했다. 자신의 생존에 위협을 당했기 때문이었다. 일단 그곳을 벗어나야 했고 이동을 해야만 했다. 자신의 종착지는 정하지 못했다. 그저 생각나는대로 즉흥적으로 갈뿐이다. 자신이 알고 있는 누군가 그곳에 살고 있다는 이유로 그곳에 간다. 하지만 사정이 여의치 못하다. 그래서 또다시 이동을 한다. 기차는 일등칸부터 삼등칸까지 다양함을 보여준다. 흡사 질버만의 사회적 위치를 드러내는 것처럼 보인다. 어느정도 돈이 있고 집이 있고 멀리서 공부하는 아들이 있고 아내가 있던 그였다. 그는 왜 이런 여행자 신세가 되어야 했나.

나와 당신들이 다른게 뭔가. 우리는 정말 무서울만큼 닮지 않았나.(302p)

'하일 히틀러'라는 인삿말로 작가는 시대상을 드러내고 있다. 어떤 시대인지 우리 모두가 아는 그 때 말이다. 이 시대를 다른 작품처럼 직접적으로 독일군의 박해라던가 유대인의 죽음을 다루고 있지는 않는다. 오히려 그보다는 가볍게 그려지고 있다는 느낌도 받는다. 심각함 없이 그저 단순히 질버만이라는 사람의 뒤를 쫓아가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해서 절박함이 둔화되지는 않는다. 질버만의 입장에서 보라. 그는 지금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상황에 놓인 것이 아니던가. 단지 생김새로 또는 자신의 조상으로 인해서 사람들을 차별한다는 것이 말이 되는가. 하지만 그때로부터 수십 년이 지난 지금에도 여전히 사람들은 자신들과 다르다는 이유로 누군가를 차별하고 있다. 우리는 지금 평범한 일상을 누리는 사람이던가 아니면 도망자인가, 난민인가, 그도 아니면 여행자인가.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