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억이 사라지기 전에 커피가 식기 전에 시리즈
가와구치 도시카즈 지음, 김나랑 옮김 / 비빔북스 / 2020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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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거로 또는 미래로 돌아가기 위한 규칙이다.

 

하나, 카페에 오지 않았던 사람을 만날수는 없다.

둘, 현실은 바뀌지 않는다.

셋, 자리를 비켜야지만 앉을 수 있다.

넷, 커피 한 잔이 식기 전에 다 마셔야 한다.

 

츠지무라 미즈키의 [츠나구]에서는 죽은 사람과 산 사람이 딱 한번 만날 수 있다. 이 설정 자체가 사람을 뭉클하게 만들어 버리는 그런 소설이다. 특히 나처럼 가까운 누군가를 잃어본 적이, 아니 먼저 떠나 보낸 적이 있는 사람이라면 이런 설정만으로도 눈물이 나올지 모를 그런 소설이다. 그래서일까 감동적인 이야기를 자아내는 이야기들 중에는 이런 설정을 가진 책들이 있다. 하지만 이런 설정을 썼다고 해서 무조건 감동 코드가 흐르지는 않는다. 잘못 설정된 인위적인 조건은 감동은 커녕 기분만 나쁘게 만들고 허무한 웃음만 나올 뿐이다. [추억이 사라지기 전에]는 이 조건을 아주 완벽하게 대입시켜 사람들의 마음을 잡을 그런 소설이다.

 

여동생이 살아 있는 것만으로도.......

꿈만 같은, 행복한 시간이었다........ (257p)

 

첫 이야기의 후반부부터 흘러내렸던 눈물은 두번째 이야기에서 잠잠한가 싶었더니 세번째 이야기, 책에서 암흑을 표지하기 위해서 아예 페이지 자체를 검게 편집한 그 부분에서 절정에 달해 꺼이꺼이 울어버렸다. 입을 열어 통곡하는 것을 막으며 하염없이 흐르는 눈물을 어찌하면 좋을까. 분명 나와는 다른 조건의 이야기일지라도 자매가 서로를 생각하는 마음이 꼭 나의 이야기인 것만 같아서 눈물을 멈출 수가 없었다. 벌써 이십년이 넘었다. 먼저 떠나간 동생이 그 속에서 자리를 잡고도 남을 그런 시간이다. 나만이 느끼는 살아남은 자의 슬픔이다.

 

"내가 무서운 건......."

유키카는 그렇게 말하면서 코를 크게 한 번 훌쩍였다.

"내가 죽고서 언니가 웃지 않게 되는 거야......." (275p)

 

마지막은 그나마 덜 슬플 줄 알았다. 희망적인 이야기가 가득했다. 남녀간의 사랑이야기. 그렇다면 해피엔딩이겠거니 하고 기대했는데 작가는 마지막까지 슬픔을 한 뭉치 퍼부었다. 무엇을 기대했던지 간에 그 이상을 안겨줄테다 하면서 말이다. 로맨스에는 절대 약하지 않다. 남의 사랑이야기를 읽으면서 눈물을 흘릴만큼 그렇게 감성적인 인간은 아니다. 그랬는데도 눈물을 질질, 그야말로 말 그대로 질질 흘리고 있는 나를 발견했다.

 

작가의 스타일이 절대 고구마를 던져 주는 스타일은 아니다. 문체 하나하나가 담백하면서도 빠르다. 휙휙 전개되는 이야기는 답답하지 않다. 그래서 이 이야기는 빠르게 읽힌다. 하지만 책장을 덮고 나서도 책을 손에서 내려 놓을 수가 없다. 그 속에 담긴 네편의 이야기가 묵직하게 가라 앉아 있어서다. 먹먹하다. 그 표현이 딱 맞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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