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양연화 : 삶이 꽃이 되는 순간 대본집 1 - 전희영 대본집
전희영 지음 / 이은북 / 2020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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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필 눈이 와서, 그것도 아주 많이 와서 그랬나봐... 맨날 그랬어. 그놈의 계절이 아주 사람을 잡아. (119p)

- 지수가 아빠한테 하는 말. 내가 형을 정리한 그 날도 미친듯이 눈이 오던 그런 날이었다. 내가 누군가와 헤어졌던 날도 3월에 미친듯이 눈이 오던 그런 날이었다. 그놈의 계절이 아주 사람을 잡는다.

 

꽃처럼 예뻤던 시절로 남기고 싶었는데.. 변해버린 선배가 그 꽃을 다 짓밟는 것 같아서 화도 나고. (250p)

- 그때의 기억은 그때의 기억으로 묻어두는 것이 가장 아름다울까. 적어도 내게는 그럴수도 있을 것 같지만 그래도 나는 내가 좋아했던 선배를 보고 싶기는 하다.

 

어떻게 해도, 결국은 다시 만나게 되는 사람들이 있대요. (319p)

- 진짜 그럴까? 현실에서는 가능하지는 않지만 그래도 믿어보고 싶을때도 있다.

 

이제 그만 하려고. 네 등 뒤에서 앞으로 나란히. (430p)

- 어떻게 보면 영우가 가장 피해자일수도 있다. 그렇게 오랜 시간을 지수만을 봐라봤으니까. 지수는 그걸 진짜 몰랐을까? 영우의 마음을. 언제나 자신만을 바라보는 그 마음을 말이다. 나는 언젠가 짝사랑은 앞으로 나란히라고 표현한 적이 있었다. 작가가 나와 같은 마음을 가지고 있는 것 같아서 동감했다.

 

등장인물 소개를 보면서 마음이 울컥하기는 또 처음이다. 과거의 지수와 과거의 재현. 그들은 한 학교의 91학번과 93학번이다. 딱 두 학번 차이. 내 윗학번과 내 밑학번. 그들과 같이 학교를 다닌 나는 그들의 학창시절에 공감을 할 수밖에 없고 그들이 보았던 아비정전을 보면서 미친듯이 장국영이 그리울수밖에 없고 그들의 과방, 동방, 농활 그리고 일방적인 사랑을 보면서 내가 학교 다녔던 그 시절 참으로 아름답고도 환했던 그 시절을 생각하지 않을수가 없는 까닭이다. 그들의 현실의 모습은 지금 나와는 전혀 다를지라도 그들의 과거는 곧 나였기에.

 

물론 드라마라서 비현실적인 부분은 존재할 수 밖에 없다. 아무리 같은 학교를 나왔다고는 하나, 아무리 첫사랑이라고는 하나 그들이 각기 학부모가 되어 같은 학교에서 만나게 될 것이라고는 누가 생각할 수 있겠는가. 아무리 세상이 좁다고 한들 그런 일은 살면서 마주하기 힘든 그런 일이다. 각자의 결혼 생활이 흔들렸다고는 하나 만나자마자 그렇게 옛사랑이 불타오르는 것도 비현실적이기는 하다. 그들의 사랑에 미완성이었고 남들의 강요에 의해서 갈라진 것이었고 어쩔 수 없는 현실적인 방해들이 존재하긴 했다고 해도 말이다. 지금 이제 와서 내가 그 시절에 그렇게 그리워하고 좋아했고 사랑했던 그 선배를 만난다면 나도 저들처럼 그렇게 활활 타오를 수 있을까. 모를 일이기는 하다.

 

또 하나 더 비현실적인 부분도 존재한다. 아무리 아이가 기숙학교에 다니고 있고 돈 들어갈 일이 없다고는 하지만 아버지가 요양원에 계시고 간병인까지 두고 있는데 들어가는 비용문제다. 지수는 일을 한다. 하지만 정직원으로 회사에 다니거나 하지는 않는다. 아르바이트를 하고 레슨을 하고 호텔에서 피아노를 친다. 그 돈들이 다 얼마가 되는지는 모르겠으나 병원비와 생활비로 충당할 수 있을 정도일까. 이 역시도 약간은 비현실적이지 않나 하는 생각이 들기는 한다. 뭐 드라마지 않는가.이해할 수 있는 부분이다. 드라마가 완전히 현실적이라면 누가 드라마를 보겠는가. 그냥 내 삶을 살아가겠지.

 

나와 같은 시대를 살아왔던 사람이라면, 그리고 지금 살아가는 사람이라면 충분히 동감하며 공감하며 지수와 재현과 함께 웃고 눈물짓고 아파하며 감동하며 읽어갈 이야기. 드라마를 보지 못해서 더욱 내 맘대로 그려보는 드라마 대본집이다. 드라마를 미리 보았다면 아마도 이런 즐거움은 없었으리라. 대신 드라마 장면을 생각하는 즐거움이 있었을 것이다. 누구나 양손에 떡을 들고 먹을수는 없고 기회비용은 존재하는 법이다. 이제 대본집을 읽고 나서 드라마를 본다면 또 다른 즐거움이 생길수도 있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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