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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외 서커스
고바야시 야스미 지음, 민경욱 옮김 / 하빌리스 / 2020년 6월
평점 :
바로는 죽이지 않아. 너는 천천히 죽일 거야. 우선은 쫓아 다닐 거야. 이 숲속을 온통 말이야. 네가 계속 도망치다 완전히 움직일 수 없게 되었을 때 팔다리를 잘게 찢을 거야. 다음은 내장이야. 본인 내장을 실컷 보게 해줄게. 그리고 마지막이 머리야. 코와 귀와 눈을 단숨에 꿰어 지혈한 후 꿈틀거리는 육식성 곤충에게 고기와 뇌를 먹게 해야지. (114p)
흡혈귀 군단 대 서커스 단원. 누가 봐도 이 대결의 승자는 흡혈귀다. 더군다나 그들은 절대 죽지 않는다. 재생 능력이 탁월하다. 어디를 베여도, 어디를 찔려도, 어디를 잘려도, 어디를 데여도 단지 몇초에서 몇분 후면 완벽하게 다시 부활한다. 그런 초인간적인 존재와 단지 약하디 약한 인간과의 대결은 너무나도 뻔하지 않은가. 그런 뻔함을 뒤집었다.
시작하자마자 인간 대 흡혈귀의 싸움이 벌어진다. 그저 한 남자와 한 여자의 밀회 현장인줄로만 알았다. 사람들의 눈을 피해서 서커스 천막으로 숨어든 줄로만 알았다. 그것이 이 전쟁의 서막일줄은 꿈에도 생각지 못했었다. 일대일로 싸우던 그들은 능력으로 밀리자 동료를 불렀다. 이른바 컨소시엄이다. 서커스는 그들의 연막작전이었던 셈이다.
분명 대규모 공세로 흡혈귀에 대항하던 그들이었는데 그 다음부터는 조금 이상하게 여겨진다. 그들의 능력은 다들 어디로 갔는지 너무나도 평범한 서커스 단원들이다. 물론 저마다 특기는 있다. 탈출마술을 하는 마술사를 비롯해서 동물묘기를 하는 사람도 있고 아크로바틱이나 공중그네는 당연한 필수요소이다. 하지만 그런 능력들이 흡혈귀와의 대항에서 살아남는데 도움이 될까.
[도로시 죽이기], [클라라 죽이기], [앨리스 죽이기] 시리즈를 비롯해서 [장난감 수리공]까지 작가의 책을 꽤 읽어왔다고 생각했다. 죽이기 시리즈는 원작을 꼬아 놓아서 이해하기 어려웠고 장난감 수리공은 그야말로 어리벙벙한 채로 끝나버렸다. 그런 전작들과는 사뭇 결이 다르다. 어려움이란 전혀 찾아볼수가 없고 그야말로 상상력의 끝판왕을 자처한다.
사람 대 흡혈귀들의 전쟁은 미친듯한 상상력을 발휘해서 장면장면 그려내야만 일종의 쾌감을 느낄 수 있을 것이다. 그만큼 살아있는 생동감을 안겨다 준다는 소리다. 노력할 필요도 없다. 읽으면서 저절로 그런 생각을 하게 된다. 그려내게 된다. 이런 작품은 분명 영화로 만들어져야 한다. 이 판타지들이 영상으로 보여진다면 여름을 강타할 제대로 된 호러작품이 될 것이다. 피가 튀고 살이 찢기고 잘리고 몸통을 꿰뚫는 통괘함. 이 모든 것은 흡혈귀라는 존재감있는 캐릭터가 있으므로 해서 성립되는 것이다. 이정도 판타지라면 인정!
사실 읽으면서 이 흡혈귀라는 존재가 지금 우리 세대를 대변하는 것은 아닌가 하는 생각도 하게 된다. 우리는 코로나라는 흡혈귀와 전쟁을 하고 있지 않은가. 죽여도 죽지 않는 그들. 마치 흡혈귀처럼 계속 되살아나는 그들. 그들을 죽이기 위해서는 단 하나, 급소를 쳐야만 한다. 코로나의 급소는 대체 어디일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