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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동안 머물다 밖으로 나가고 싶다
에쿠니 가오리 지음, 김난주 옮김 / (주)태일소담출판사 / 2020년 6월
평점 :
절판
쓴다는 것은, 혼자서 하는 모험이라고 생각한다. (54p)
읽는다는 것은 어디에 가든 여기에 계속해 있는 것이라고 생각해요. 눅눅한 흙 위에, 개구리가 있는 장소에, 어두컴컴해진 방안에, 내리기 시작한 빗속에. (99p)
참 곱다. 아주 얇은 바늘을 가지고 윤기가 반드르르 도는 비단 실을 꿰어 공단 위에 한땀 한땀 수를 놓듯이 그렇게 글자들이 수 놓아져 있다. 처음에는 단지 하나의 바늘 땀에 불과하던 것이 점점 면을 채우고 테두리를 따서 한 폭의 멋진 그림으로 완성되는 것과 같이 단지 단어임에 불과하던 글자들이 문맥을 맞추어서 자리를 찾아가고 문장이 되고 연결이 되여서 글로 탄생한다. 그런 과정이 그대로 녹아 들었다.
그녀의 적품의 표지에서 보여지는 단 한장의 사진으로만 알 수 있는 그녀는 참 곱다. 여리여리한 모습을 보여준다. 선이 참 얇다라는 인상을 가지게 되는 사진이다. 실제의 그녀의 모습이 어떠한지 알지 못한다. 단지 한 장의 사진과 그녀의 글로서 판가름할 뿐이다. 그것이 설령 편견이라 할지라도 좋다. 나는 그녀가 만들어 놓은 글로써 그녀를 보는 것이므로 말이다.
규칙적으로 목욕을 하고 과일을 먹고 산책을 하고 쓴다. 그녀의 쓰기는 그렇게 채워져 있다. 누구나 다 공감했으리라. 글자를 쓰면 구멍이 뚫리고 그 구멍을 통해서 이 공간이 연결이 된다는 그녀의 글을 본 순간 우와 하는 감탄사와 함께 내가 글을 쓴다면 이 부분은 꼭 짚고 넘어가리라는 생각을 말이다.
어떻게 글자가 구멍이 되어서 연결을 해준다는 생각을 했을까. 상상력을 맥시멈으로 끌어올린다 하더라도 그런 생각이 났다 하더라도 그것을 글자로 옮기기에는 딱 적합한 단어가 필요했을 것이다. 그런 부분을 바로 그녀는 캐치해 내었다. 원서도 이와 같은 표현일 것이다. 어떤 표현을 썼을까. 어떤 한자어를 썼을까 너무너무 궁금해진다.
글을 썼다면 읽을 차례다. 작가라는 직업은 아무래도 다른 사람들보다는 많은 책을 읽을 것이다. 그녀 또한 그러하다. 꽤 많은 책을 소개하고 있는데 그것이 또 책을 부르게 되는 마법과도 같은 주문이 된다. 특히 <독서노트>와 <자신의 인생을 바꾼 소설> 두 편의 이야기에서 모두 등장하고 있는 이야기인 [플라테로와 나]라는 작품은 궁금증을 저 밑 바닥에서부터 끌어올린다.
작가는 '농축'과 '희석'이라는 표현을 썼다. 단어의 선택이 이다지도 멋질 수 있을까. 밑줄을 좍좍 긋고 돼지 꼬리도 붙여서 길이길이 기억하고 싶어진다. 어던 글을 표현할 때 이런 단어를 사용할 수 있을까. 언젠가 서평을 쓰게 된다면 꼭 한번 써먹어 보고 싶은 그런 단어다.
<마가릿 와이즈 브라운> 작가의 이름을 글의 제목으로 삼아 놓은 이 이야기는 반가움을 불러 일으킨다. 아동문학을 공부하면서 많이 보아왔던 이름이기 때문이다. 아마도 그 공부를 하지 않았다면 전혀 알지 못했을 그 작가였기에, 워낙 유명하고 또 아름다운 동화를 많이 쓴 작가였기에 브라운 작가의 작품은 작가와도 아주 잘 어울려 보인다.
영어 강사로도 일했던 경력이 있는만큼 작가는 영어에도 능통함을 보일 것 같다. 그렇게 번역작업도 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그녀가 번역한 작품은 또 자신이 직접 쓴 글과는 또 어떤 다름이 있을지 역시나 원서를 읽을 줄 알아야만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책을 읽는다는 것은 그곳으로 떠나는 일이고, 떠나고 나면 현실은 비어 버립니다. 누군가가 현실을 비우면서까지 찾아와 한동안 머물면서. 바깥으로 나가고 싶지 않게 되는 책을. 나도 쓰고 싶다고 생각합니다. (129p)
그녀는 수시로 자신만의 여행지에 빠져든다. 그녀가 손에 잡는 책을 통해서다. 얼마전 [경성 탐정 이상]을 읽었다. 그 책을 손에 드는 순간 나는 이상과 구보가 살았던 그 시대를 그들와 같이 여행하면서 다녔다. 미미여사의 에도 시리즈를 볼때면 나는 그 많은 주인공들과 함께 그 시대를 누비고 다녔다. 그랬기에 그녀의 '읽는다'라는 표현을 너무나도 잘 이해하고 남음이 있다.
그녀는 한동안 머물면서 나가고 싶지 않은 그런 이야기를 쓰고 싶다고 했다. 이미 그녀는 그런 글들을 썼다. [도쿄 타워]를 읽을때면 그들과 함께 그곳에 머물면서 조금은 더 뒷이야기를 알고 싶었고 [냉정과 열정 사이]를 읽으면서는 각각 남녀의 심정이 되어서 그곳에 머물렀기 때문이다. 이탈리아를 여행하면서 가장 가보고 싶은 곳이 바로 밀라노였다. 그들이 다시 만나기로 했던 곳. 바로 그 곳 말이다. 피렌체도 그런 장소였다. 그래서 나는 그들과 함게 그곳에 있었다. 그리고 나중에 이탈리아를 가면서 그들을 마음 속으로 품고 갔다.
그렇게 작가의 책은 이미 나로 하여금 한동안 머물고 싶은 곳이 아니라 영원히 머물고 싶은 곳을 만들어 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