셰어하우스 플라주 블랙 앤 화이트 시리즈 90
혼다 데쓰야 지음, 권남희 옮김 / 비채 / 2020년 6월
평점 :
절판


작가 이름을 확인한다. 분명 이 책을 처음 열기 전 작가 이름을 봤었다. 그리고는 생각했다. 무진장 강한 이야기가 강렬하게 치닫겠구나. 그런 즐거움을 주겠구나 하고 말이다. 이야기를 읽는다.

 

집에 불이 난다. 한 남자는 그야말로 아무것도 없이 쫓겨난다. 그나마 산 것만 해도 다행이라고 여겨야 할까. 그 남자는 당분간 있을 곳을 찾는다. 월 5만엔에 밥까지 주는 곳이 있단다. 지금 뭘 가릴 처지가 아닌 그는 일단 그곳으로 간다. 청소는 교대로 한다. 상관없지 않은가.

 

화장실과 욕실이 따로 있지 않아 공용으로 써야 한다는 사실이 조금 번거롭기는 하지만 그쯤이야 다 감내하고도 남음이 있다. 단 이 곳의 방들은 문이 없다. 사생활이 보장이 되지 않는달까. 각자 커튼으로 입구만 가려놓고 산다. 이 곳에 모인 사람들은 대체 무얼 하고 살아가는 사람들일까. 이곳의 이름은 '플라주'이다.

 

'플라주'는 프랑스어로 '해변'. 바다와 육지의 경계선. 모호하게 계속 흔들리는 사람과 사람의 접점. 남과 여, 선과 악, 진실과 거짓, 사랑과 미움. 그리고 죄와 용서. (278p)

 

다시 한번 작가를 확인한다. 혼다 데쓰야. 누구나 아는 그 [스트로베리나이트]의 그 작가 맞다. 하지만 극으로 끝까지 치솟던 그 광기는 이 이야기 속에서는 전혀 보이지 않는다. 오히려 잔잔함과 감동과 이해가 전면에 넘쳐난다. 플라주가 바다와 해변의 경계선이라고 했었나. 이 이야기가 그 경계선상에 서 있다. 감동과 범죄의 그 경계선에 말이다. 셰어하우스 플라주에는 아무나 입주할 수가 없다. 일단 심사를 거쳐야 한다. 그 심사에는 입주자의 자격이 있다. 반드시 전과자야 한다는 것이다. 그들은 무슨 이유로 범죄를 저질렀던 것일까. 왜 이곳에 와 있는 것일까.

 

전과자라고 해서 모두 나쁜 것만은 아니라고 이야기를 하고 죄는 미워해도 사람은 미워하지 말라는 말도 있다. 하지만 우리 사회는 일단 전과에 대한 낙인을 찍어 놓고 시작한다. 그것은 일본도 예외는 아닌듯 하다. 단지 한번 잘못을 저질렀을 뿐인데 그것으로 인해서 자신이 몸담았던 업계를 떠나야 하고 미래를 발목잡히게 되는 것이다.

 

그렇다고 죄를 옹호하자는 것은 결코 아니다. 단 벌을 받고 자신이 무엇을 잘못했는지 알고 그것을 뉘우치고 회개한다면 다시 한번의 기회는 주어도 좋지 않겠느냐나는 이야기다. 물론 모든 강력범죄자들에 대해서 그렇게 할수는 없겠지만 어느정도 정삼참작의 여지는 보여주자는 것이다. 그런 의도에서 쓰여진 이야기가 아닐까.

 

안드레아스 빙켈만의 [쉐어 하우스]라는 작품이 있다. 그곳에서는 같이 사는 사람들때문에 범죄에 휘말리게 되는 계기를 만들어 낸다. 이 책에서는 그런 범죄자들이 모여 같이산다. 누군가와 함께 사는 것이 마구 편하고 즐겁지는 않겠지만 그래도 그들만의 공감대가 생긴다면 그것으로 또 좋지 아니한가 하는 생각을 하게 된다. [선술집 바가지]에서는 단골손님들이 들러서 밥을 먹는다. 이곳 플라주에서는 입주자들이 모여서 밥을 먹는다. 그 떠들썩함이 기분 좋게 들려온다.

 

작가의 이름을 마지막으로 확인해 본다. 이 작가가 이런 이야기도 쓰는구나. 그렇다면 나는 이 작가에 대해서 다음에는 어떤 종류의 작품을 기대해야 하는가 하는 '플라주', 즉 해변에 서 있게 된다. 무어라도 다 좋지 아니한가. 몰입해서 읽을 수 있는 이야기만 주어진다면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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