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할머니에게
윤성희 외 지음 / 다산책방 / 2020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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할머니는 언제나 그 주문같은 말을 외우고 계셨다. 어린 나는 그것이 무슨 뜻인지도 모르고 그저 묵주 비슷한, 염주 비슷한 그 긴 목걸이를 돌리면서 할머니가 하는 그 주문을 들었었다. 할머니의 내 기억 중 한 자락이다. 겨울이면 뜨끈한 아랫목에 앉아서 아궁이에 고구마를 구워먹었고 아침이면 뜨끈한 김이 올라오는 구수한 쇠죽 냄새를 맡으며 일어났다. 여름이면 모기장이 쳐진 방안에 누워서 벽장 같이 생긴 먼지 냄새 나는 다락에서 놓인 과자를 꺼내다 먹었고 메뚜기를 잡아서 구워 먹었다.

 

시골에 있었던 할머니네 집에 가는 것은 쉬운 일은 아니었다. 명절 때마다 몇번 가지만 서울에서 차로 가도 기본 5시간 이상 걸리고 고속도로에서 차가 밀리면 10시간 이상 걸리는 것은 일상다반사였다. 아빠 차 뒷자리에 자리잡은 삼남매였던 우리는 먼길을 가야하니 그 누구도 가운뎃 자리는 앉지 않으려 서로 싸우곤 했었다. 결국 항상 결정권 없는 막내가 앉아서 가긴 했었지만. 이렇게 빨리 떠날 줄 알았다면 그때 자리를 양보해 줄 것을 그랬다. 지금은 나혼자서 차를 타고 다니는데 말이다.

 

할머니네집 하면 가장 먼저 생각나는 것은 바로 화장실이다. 화장실이라 이름 붙일수도 없을만큼 지독한 그 공간. 끼익 소리 나는 그 문을 열고 들어서기도 전에 미리 쳐들어오는 강한 냄새. 그리고 벌레들. 단지 땅을 파고 그 위에 판자 두개만 올려놓은 것이라서 흔들거리는 그 판자가 떨어지지나 않을까 노심초사해야 했으며 혹시라도 그 구덩이에 빠지는 것은 아닌지 걱정해야 했다.

 

들어서기전 크게 숨을 쉬고 꾹 참은 다음 가능하면 빨리, 그러면서도 조심스럽게 일을 보고 나와야하는 미션이 바로 행해지는 곳이 바로 그 화장실이었다. 그때는 몰랐다. 그렇게 모여진 똥덩어리들이 밭에 뿌려지는 거름이 되는 줄은 말이다. 단지 더럽고 냄새나고 싫었다. 어렸을 때야 시골집 아무데나 싸면 된다지만 나이가 들면서 더 싫었었다. 어느 순간 할머니네 가는 일은 하지 않았다. 온가족이 떠날 때도 꿋꿋이 혼자 집을 지켰다.

 

마지막으로 기억하고 있는 할머니의 모습은 바로 우리집이다. 병에 걸려서 큰 병원에 다녀야했고 할아버지가 있다고 해도 돌봐줄 사람이 없으니 결국 서울로 와서 우리집 한켠을 차지했던 할머니. 아이가 셋이나 되었고 아파트도 아닌 빌라에서 할머니가 있을 곳은 없었다. 거실 한편에 자리잡고 누워 있던 할머니의 모습을 기억하는 것은 아마도 그 바로 옆에 책장이 있었고 그곳에 엄마가 좋아해서 샀었던 한국 소설들이 전집으로 자리하고 있어서 내가 그것을 꺼내려 자주 왔다갔다 했기 때문일 것이다.

 

그때 읽었던 책들이 염상섭과 현진건 그리고 김동리 등 지금은 교과서에서 더 자주 볼 수 있는 그런 이야기들이다. 나는 그때의 이야기들이 좋다. 한글이 살아있는 그 글들. 그 글들은 정말 한국어의 맛을 제대로 느끼게 해준다. 지금의 나를 책을 좋아하는 나를 만든 것은 아마도 그 이전의 계몽사 전집 시절부터였겠지만 내 자의식이 강해지는 때 성숙하게 한 것은 아마도 그 작품들이리라. 책 옆에서 있었던 작고 쪼그라든 할머니의 모습. 더이상의 할머니의 모습은 기억나지 않는다.

 

한권의 책을 읽으면서 첫 이야기를 읽고 나서 나는 내할머니의 모습을 떠올렸다. 내 아빠의 엄마. 나의 가족. 너무나 오래전에 돌아가셔서 일상에서 잊고 있었던 할머니의 모습. 할아버지는 첫째인 내가 아들이 아니라고 잘해주지도 않고 예뻐라 하지도 않고 자신이 지은 이름마저도 맨날 틀라게 불렀지만 할머니는 아니었다. 아니었다고 생각하고 있다. 한권의 책이 내가 잊고 있었던 기억 한자락을 불러왔다. 콧날이 시큰거리고 눈이 맵다. 눈물이 고인다. 별다른 추억이 없다고 느꼈는데 할머니와의 추억도 생각하니 많더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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