용서할 수 없는 모중석 스릴러 클럽 30
할런 코벤 지음, 하현길 옮김 / 비채 / 2012년 6월
평점 :
절판


평화로운 한 가정이 있다. 엄마도 아빠도 저마다의 위치를 지키고 아이들을 돌보고 아이들의 저마다의 개성을 가지고 있으면서 잘 자라고 있다. 첫째는 부모가 안 봐줘도 알아서 잘 하는 스타일이었다. 그래서 그렇게 많이 챙기지 않아도 되는 아이였다. 여느 때와 다름없는 아침이었다. 아이가 없는 것을 발견하기 전까지는 말이다.

 

아이는 어느 곳에도 없었다. 아니 자고 일어난 흔적조차 없었다. 아예 들어오지 않았던 것이다. 아이가 처신을 잘하니 신경 쓰지 않아도 된다고 생각했던 것이 잘못이었던 걸까. 귀가시간을 정해주지 않았던 것이 실수였던걸까. 아이가 들어왔는지 체크도 하지 않고 자버린 부모가 잘못된 것일까.

 

아이가 사라진 집은 아이가 죽은 집과는 또 다르다. 둘다 슬프다는 것에는 공통점이 있겠으나 죽은 집은 더이상 아이가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을 알기에 어느 정도의 시간이 지나면 인정을 하게 된다. 산 사람은 살아야 한다고 다시 현실에 복귀해서 살아간다. 비록 아이를 마음에 묻기는 했지만 말이다. 하지만 아이가 사라진 집은 다르다. 어디에서 아이가 있는지를 알지 못하니 더 답답함만 커져 갈 뿐이다.

 

처음에는 아이를 찾기 위해서 온갖 수단을 다 쓴다. 현수막을 걸기도 하고 지나가는 사람들에게 아이의 얼굴이 담긴 종이를 나눠주기도 한다. 그렇게 시간이 지나도 아이가 돌아오지 않으면 체념을 할까. 아니 다른 누군가에게는 그렇게 될지 몰라도 부모는 절대 포기를 하지 않을 것이다. 그로 인해서 집안 분위기는 더욱 엉망이 될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가족의 아이들은 잘 지냈다. 아이는 대체 어디로 사라진 것일까.

 

할런 코벤의 소설은 대량의 학살 사건이 일어나거나 하지는 않는다. 적어도 내가 읽은 책들에서는 그랬다. 가족을 중심으로 한 이야기도 많았다. 한 가정안에서 얼마나 많은 미스터리가 존재하고 스릴이 넘치고 서스펜스가 공존하는지를 책 속에서 읽는다면 우리네 가족의 소중함을 다시 한번 느끼게 될 것이다. 혹시라도 저자는 그러한 것을 염두에 둔 것은 아니었을까.

 

한 가족을 세팅해놓고 작가는 다음 무대를 준비한다. 대학에서 한 기숙사를 썼던 친구들. 그 모두를 둘러싼 일련의 사건들. 이런 구성은 넬레 노이하우스의 책에서도 보아왔던 부분이다. 과거에 어떤 일을 같이 했던 사람들이 시간이 지나서 그 보복을 받는다는 그런 식의 스토리 말이다. 아무래도 스릴러에서는 이런 종류의 콘셉트를 벗어나기는 힘든 것인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한다. 그런 조건들이 같다고 해서 풀어나가는 방식까지 같은 건 아니니 그런 부분을 비교하는 재미도 물론 있다.

 

넓지 않은 한 지역에서 동시에 벌어지는 이야기들은 넓게 확 퍼진 지역에서 읽어나는 것보다도 훨씬 큰 텐션을 준다. 작은 지역에서 더 밀도가 높은 법이고 전염도 잘 일어나지 않던가. 그와 같은 맥락이라고 보면 될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형사와 경찰이 범인의 뒤를 쫓지만 이 이야기의 주인공은 바로 그녀다.

 

방송사에서 일하는 그녀. 그녀로 인해서 일어난 사건으로 시작했으니 점점 퍼져가는 이야기를 자신이 책임이라도 지고 끝내야하는 것처럼 부지런히 움직인다. 사법권한은 없지만 방송매체라는 것이, 미디어라는 것이 얼마나 큰 영향을 주는 것인지를 잘 드러내주는 요소로 적격인 그녀의 설정이 아닐까. 사라졌던 아이와 기숙사 친구들은 또 어떻게 연결이 되는 것일까. 

 

용서할 수 없는. 누군가를 용서할 수 없다면 그 누군가는 어떤 존재가 되려나. 한국 제목과는 다르게 caught라는 원제목은 이미 잡힌 바를 나타내고 있지 않은가. 잡힌 것은 누구인가. 역시 스릴러의 제왕답게 끝내주는 미스터리 한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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