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의 봄 - 상 블랙 앤 화이트 시리즈 87
미야베 미유키 지음, 권영주 옮김 / 비채 / 2020년 3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미타마쿠리 (103p)

 

쿠리는 실을 잣는 이토마쿠리의 쿠리와 같은 뜻이지. 자유자재로 다루고, 불러내고, 또 들여보내.

 

미타마는 말 그대로 인간의 영혼. 많은 경우 사령이다만 드물게 생령인 경우도 있다고 한다. 다시 말해 미타마쿠리는 인간의 영혼을 조종해 그것과 의사소통하는 기술이야.

 

상권과 하권, 두권으로 이루어진 미야베 미유키 데뷔 30주년 기념 소설이다. 한 사람이 한 분야에서 30년동안 꾸준히 독보적인 인기를 누려오면서 존재하기란 얼마나 어려운 일이던가. 굳이 셈해보지 않아도 30년은 충분히 긴 세월이고 그 많은 시간동안 누가 보아도 홀딱 빠질만한 멋진 책들을 남겨준 작가에게 경의를 표하고 싶다.

 

작가는 [세상의 봄]이라는 두 권의 소설로 자신의 30주년을 자축하는 듯이 보인다. 축하하는 데에 있어 꽃을 빼놓을 수 없으니 꽃의 색감을 따른듯 화사한 표지를 가지고 있다. 거기다 꽃이 가장 아름다운 계절인 봄을 표제어로 삼았다. 작가의 모든 책 중에서도 한 획을 충분히 짙게 그리고 굵게 그어줄 이 소설은 어떤 내용일까.

 

하권의 가장 뒤에는 인물관계도가 나와있다. 그 표를 보는 순간 메모지와 펜을 준비했다. 결코 만만해보이는 이야기가 아니라는 것을 직감한 탓이다. 등장인물들을 이야기에 나오는 순서대로, 가문대로 그리고 직책대로 나누면서 쓰기 시작한다. 그것도 잠시 뿐 어느정도 이해하고 틀이 잡히고 이름을 알고나자 그런 표가 꼭 있어야 하는 것이 아님을 깨닫는다. 이야기 속으로 빠져들면 충분히 이해가 되는 정도의 인물들이라는 것이다. 이런 면에서도 베테랑의 면모가 돋보인다.

 

한 지역을 다스리는 번주가 있다. 병을 이유로 다음 번주에게 자리를 넘겼다. 그 후 그는 요양을 이유로 자기 자신을 유폐시켰다. 그 곳에 다키가 오게 된다. 이혼을 하고 아버지와 함께 살았던 그녀. 갑작스런 아버지의 죽음으로 혼자가 되었다. 그런 그녀를 사촌동생이 데리러 온다. 그녀는 어디로 가게 되는걸까.

 

하지만 알기 쉽고 이해하기 쉽고 납득하기 쉽다는 이유만으로 결론을 서둘러서는 안 됩니다. 사람의 마음은 그런 식으로 깔끔하게 정리할 수 있을 만큼 간단한 게 아닙니다. (257p)

 

어찌 보면 다중인격이라 할 수도 있고 어찌 보면 빙의라고도 할 수 있는 소재를 선택해서 작가는 주인공에게 굴레를 씌워 놓았다. 자신이 인식하지 못하는 시간에 벌어지는 일들 그리고 말들. 그는 충분히 두려움을 느끼고 있었을 것이다. 한 사람의 몸 안에 여러 인격이 존재한다는 것은 어디까지 인정해야 하는 것인가. 그 사람의 겉모습으로 본인격을 파악해야 하는 것인가 그렇지 않다면 더 자주 드러나는 인격을 인정해야 하는 것인가. 그 속에 들어 있는 인격들은 자신의 것인가 아니면 외부에서 들어온 것인가. 한 남자를 둘러싼 이야기의 비밀이 차분히 그리고 담담하게 결코 시끄럽지 않게 드러나고 있다. 그에게 세상의 봄은 올까.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