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편 모중석 스릴러 클럽 6
딘 쿤츠 지음, 최필원 옮김 / 비채 / 2006년 12월
평점 :
절판


우린 바이올린 활로 폭탄에 달린 전선을 연주하고 있어. (160p)

 

남편.

 

결혼을 해서 생기는 관계. 우스개소리로 남편은 '남의 편'이라는 말도 있지만 대부분은 결혼식에서 죽을 때까지 무슨 일이 있어도 서로를 사랑하며 아껴주어야 한다고 서약을 한다. 그렇게 함으로써 남편과 부인이라는 관계가 성립되는 것이다. 하지만 우리네 인생에서 그것이 유효하기란 참 어려운 일 아니던가. 사람이라는 것이 일단 자기중심적으로 먼저 생각하기 때문에 아무리 사랑이라는 것이 전제된다 하더라도 오랜 기간을 혼자 살아온 두 명의 성인이 마음을 합해서 살아가기가 참 쉽지 않다.

 

여기 한명의 남편이 있다. 평범하다. 정원사로 흙을 만지고 살아가는 사람이다. 여기 한 명의 부인이 있다. 평범하다. 공인중개사로 남에게 집을 보여주고 파는 일을 하는 사람이다. 그런 평범한 사람들이었던 그들이 어느날 그야말로 갑자기 부인이 납치되면서 평범하지마는 않은 사람들이 된다. 일을 하던 남편은 전화 한 통을 받는다. 어떤 남자다. 자신의 부인을 납치했단다. 그리고서는 연락을 다시 하겠단다. 이 남편의 마음은 어떠할까. 그들이 원하는 것은 분명 돈일 것이다. 그들이 감당하기 힘들만큼의 돈. 남편은 어디에서 돈을 구해서 자신의 부인을 구하러 가게 될까.

 

기존의 스릴러들과는 다르게 이 책에서는 특별한 히어로가 등장을 하지 않는다. 경찰이나 형사들도 이 사건을 해결하지 않는다. 이 모든 사건을 해결하는 것은 바로 제목의 그 남편이다. 평범하기 그지 않는 그 남자가 말이다.

 

어떻게 이런 일이 가능한가 라고 묻지 말라. 소설이니까 그렇지 라는 생각도 잠시 내려 두어도 좋겠다. 가끔 뉴스에서 보듯이 사람은 심리적인 압박을 받거나 피치못할 사정이 생기면 초인간적인 힘을 발휘한다지 않던가. 그것이 아기를 구하려는 엄마의 모성일수도 있고  부인을 구하려는 남편의 사랑일수도 있는 것이다.

 

남편의 직업을 정원사로 설정해둔 덕분에 이야기속에서는 꽃 나무와 관련된 표현들이 비유적으로 등장을 하고 있다. 가령 희망의 마른 씨앗은 놀랍고 엄청난 소식에 물기를 머금고 부풀어 올랐다. (150p)거나 한밤의 도로변에 늘어선 퀸 야자수들은 미친 여자들이 발작하며 머리를 흔들어대듯 요동치고 있었고, (246p)는 표현들이 그러하다. 야자수들이 흔들리는 것을 미친 여자에 비유하다니 그야말로 찰떡 같지 않은가.

 

그냥 단순히 나뭇잎들이 미친듯이 흔들리고 있다보다는 더 생동감 있고 그의 심정이 어떠한지를 비유적으로 알려주고 있어서 더욱 그 맛이 감칠나다. 거기가 마른 씨앗이 물을 품는 것을 희망에 비유를 하다니 그냥 '그는 희망을 가졌다.' 라고 하는 것보다는 연상을 하게 되지 않는가. 씨앗이 물을 품고 서서히 싹을 틔우고 자라나는 그런 연상 말이다. 탁월한 표현의 선택이지 않을수가 없다.

 

스릴러 장르란 단순하게 무언가 사건이 벌어지고 폭탄이 터지고 총탄이 날아다니고 사람이 죽고 그것이 전부는 아니다. 그 사이사이에 얼마나 많은 장면의 설명들이 있는가. 그것이 장황해져 버리면 지루하게 되고 단순히 설명적이면 재미가 없게 되지만 이런 식의 비유들은 독자들로 하여금 조금은 더 이 소설에 이 이야기에 몰입할 수 있게 만드는 요소가 된다. 물론 그것도 한 문장마다 온갖 미사여구와 비유적인 표현을 쓴다면 여러가지 꽃들이 아무런 소속없이 중구난방 뒤섞인 꽃다발처럼 멋은 고사하고 혼란스러움의 극치겠지만 적절한 맺음으로 인해서 더욱 돋보이게 만들어주고 있다.

 

자, 당신은 사랑을 해 본적이 있는가? 만약 그렇다면 당신은 당신이 사랑하는 사람을 위해서 무엇까지 해 줄수가 있는가. 그저 단순히 생각해서 목숨이라도 바칠 수 있다라고 장담을 하지 말고 곰곰히 생각을 해보기를 바란다. 지금 당신이 사랑하는 사람을 향해서 폭탄이 날아오고 있다. 당신은 자신의 몸을 던져 그것을 막을 것인가 아니면 당신이라도 살기 위해서 안전한 곳을 찾을 것인가.

 

당신이 안전한 곳을 찾는다고 해서 당신을 비난할 수 있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그것이 인간의 본성이기 때문이다. 연인관계와 부부라는 관계는 또 어떻게 다를 것인가. 내가 남자친구나 여자친구를 위해서 해 줄수는 없지만 부인이나 남편을 위해서 해 줄수 있는 일은 있는가? 그 관계의 변화는 결혼을 기점으로 정말 이루어지는 것인가. 사랑을 전제로 한 남녀 사이의 관계에서 우리는 자신의 사랑하는 사람을 위해서 무엇까지 해 줄수 있는지를 다시금 생각해 보게 될 것이다.

우린 바이올린 활로 폭탄에 달린 전선을 연주하고 있어. (160p)

 

남편.

 

결혼을 해서 생기는 관계. 우스개소리로 남편은 '남의 편'이라는 말도 있지만 대부분은 결혼식에서 죽을 때까지 무슨 일이 있어도 서로를 사랑하며 아껴주어야 한다고 서약을 한다. 그렇게 함으로써 남편과 부인이라는 관계가 성립되는 것이다. 하지만 우리네 인생에서 그것이 유효하기란 참 어려운 일 아니던가. 사람이라는 것이 일단 자기중심적으로 먼저 생각하기 때문에 아무리 사랑이라는 것이 전제된다 하더라도 오랜 기간을 혼자 살아온 두 명의 성인이 마음을 합해서 살아가기가 참 쉽지 않다.

 

여기 한명의 남편이 있다. 평범하다. 정원사로 흙을 만지고 살아가는 사람이다. 여기 한 명의 부인이 있다. 평범하다. 공인중개사로 남에게 집을 보여주고 파는 일을 하는 사람이다. 그런 평범한 사람들이었던 그들이 어느날 그야말로 갑자기 부인이 납치되면서 평범하지마는 않은 사람들이 된다. 일을 하던 남편은 전화 한 통을 받는다. 어떤 남자다. 자신의 부인을 납치했단다. 그리고서는 연락을 다시 하겠단다. 이 남편의 마음은 어떠할까. 그들이 원하는 것은 분명 돈일 것이다. 그들이 감당하기 힘들만큼의 돈. 남편은 어디에서 돈을 구해서 자신의 부인을 구하러 가게 될까.

 

기존의 스릴러들과는 다르게 이 책에서는 특별한 히어로가 등장을 하지 않는다. 경찰이나 형사들도 이 사건을 해결하지 않는다. 이 모든 사건을 해결하는 것은 바로 제목의 그 남편이다. 평범하기 그지 않는 그 남자가 말이다.

 

어떻게 이런 일이 가능한가 라고 묻지 말라. 소설이니까 그렇지 라는 생각도 잠시 내려 두어도 좋겠다. 가끔 뉴스에서 보듯이 사람은 심리적인 압박을 받거나 피치못할 사정이 생기면 초인간적인 힘을 발휘한다지 않던가. 그것이 아기를 구하려는 엄마의 모성일수도 있고  부인을 구하려는 남편의 사랑일수도 있는 것이다.

 

남편의 직업을 정원사로 설정해둔 덕분에 이야기속에서는 꽃 나무와 관련된 표현들이 비유적으로 등장을 하고 있다. 가령 희망의 마른 씨앗은 놀랍고 엄청난 소식에 물기를 머금고 부풀어 올랐다. (150p)거나 한밤의 도로변에 늘어선 퀸 야자수들은 미친 여자들이 발작하며 머리를 흔들어대듯 요동치고 있었고, (246p)는 표현들이 그러하다. 야자수들이 흔들리는 것을 미친 여자에 비유하다니 그야말로 찰떡 같지 않은가.

 

그냥 단순히 나뭇잎들이 미친듯이 흔들리고 있다보다는 더 생동감 있고 그의 심정이 어떠한지를 비유적으로 알려주고 있어서 더욱 그 맛이 감칠나다. 거기가 마른 씨앗이 물을 품는 것을 희망에 비유를 하다니 그냥 '그는 희망을 가졌다.' 라고 하는 것보다는 연상을 하게 되지 않는가. 씨앗이 물을 품고 서서히 싹을 틔우고 자라나는 그런 연상 말이다. 탁월한 표현의 선택이지 않을수가 없다.

 

스릴러 장르란 단순하게 무언가 사건이 벌어지고 폭탄이 터지고 총탄이 날아다니고 사람이 죽고 그것이 전부는 아니다. 그 사이사이에 얼마나 많은 장면의 설명들이 있는가. 그것이 장황해져 버리면 지루하게 되고 단순히 설명적이면 재미가 없게 되지만 이런 식의 비유들은 독자들로 하여금 조금은 더 이 소설에 이 이야기에 몰입할 수 있게 만드는 요소가 된다. 물론 그것도 한 문장마다 온갖 미사여구와 비유적인 표현을 쓴다면 여러가지 꽃들이 아무런 소속없이 중구난방 뒤섞인 꽃다발처럼 멋은 고사하고 혼란스러움의 극치겠지만 적절한 맺음으로 인해서 더욱 돋보이게 만들어주고 있다.

 

자, 당신은 사랑을 해 본적이 있는가? 만약 그렇다면 당신은 당신이 사랑하는 사람을 위해서 무엇까지 해 줄수가 있는가. 그저 단순히 생각해서 목숨이라도 바칠 수 있다라고 장담을 하지 말고 곰곰히 생각을 해보기를 바란다. 지금 당신이 사랑하는 사람을 향해서 폭탄이 날아오고 있다. 당신은 자신의 몸을 던져 그것을 막을 것인가 아니면 당신이라도 살기 위해서 안전한 곳을 찾을 것인가.

 

당신이 안전한 곳을 찾는다고 해서 당신을 비난할 수 있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그것이 인간의 본성이기 때문이다. 연인관계와 부부라는 관계는 또 어떻게 다를 것인가. 내가 남자친구나 여자친구를 위해서 해 줄수는 없지만 부인이나 남편을 위해서 해 줄수 있는 일은 있는가? 그 관계의 변화는 결혼을 기점으로 정말 이루어지는 것인가. 사랑을 전제로 한 남녀 사이의 관계에서 우리는 자신의 사랑하는 사람을 위해서 무엇까지 해 줄수 있는지를 다시금 생각해 보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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