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용한 아내
A.S.A. 해리슨 지음, 박현주 옮김 / 엘릭시르 / 2020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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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용하다. 그 남자 그리고 그 여자로 양분된 이야기. 한 집에 같이 살고 그 기간이 오래 되었지만 결혼을 하지는 않았다. 아이는 없고 개가 한마리 있다. 서로 각자의 직업을 가지고 있다. 이 가정을 이끌어 가는 것은 전적으로 남자에게 달려 있을지라도 그녀는 자신만의 일을 파트 타임으로 하고 있다. 서로간에 터치를 하지 않는다면 그저 평화로운, 그래서 더 조용한 가정일 것이다.

 

항의하지 않으려는 여자, 고함치지도 악을 쓰지도 않는 여자, 그 안에 힘이, 강인함이 있다. 감정을 무시하고, 비난하거나 싸움을 걸지 않는 그녀의 방식은 그에게 비집고 들어갈 틈을 주지 않고, 다시 감정을 불어넣을 여지도 주지 않는다. (144p)

 

그녀는 수다스럽지 않다. 직업 자체도 들어주는 것이 먼저인 상담을 하고 있다. 믿음을 주는 상담가는 자신의 말을 많이 하기 보다는 일단 들어주는 것이 우선된다. 그래서일까 아니면 그녀의 성정이 원래 그래서일까 결코 말이 많지 않고 어떤 상황에서도 큰 소리를 내는 법이 없다. 그녀의 그런 면을 그는 사랑했던 것일까.

 

같은 사건이라 하더라도 사람은 자신의 성향에 따라서 대처하는 방법이 다르다. 마구 화를 내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차분하게 지금 상황을 냉철하게 판단하고 처리하는 사람이 있다. 어느 방법이 옳다고 말할수는 없다. 저마다 자신만의 대응책이 다르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지극히 누가 봐도 객관적으로 화가 나는 상황에서 마구 화를 내는 사람과 차분하게 화를 누르는 사람 중에서 누가 더 무서운 사람일까.

 

하지만 그의 두 세계, 완전히 별개의 궤도를 도는 두 세계가 충돌할지도 모른다는 전망은 상상할 수 없고 참을 수도 없으며, 지금과 같은 삶이 끝장나는 미래다. (101p)

 

그와 그녀 그들의 조용한 삶에 태풍이 밀어닥친다. 그는 이런 일이 생길 것이라고는 전혀 예상하지 못했을까. 그들 사이에 제3자가 끼어들었을 때 그는 이런 사태가 일어날 것이라고 미리 생각했어야만 했다. 비밀은 오래 가지 못하는 법, 언제 어디서라도 사건이 일어날 줄을 짐작했어야 한다는 소리다.

 

같은 동네에 두여자. 전혀 접점이 없는 것도 아닌 그 두 여자. 이것이 진정 평행선을 달릴 수 있다고 생각했을까. 지구와 화성처럼 저마다 자기의 축을 기점으로 해서 자신들만의 궤도에서 벗어나지 않으리라고 안심한 그가 틀렸다. 자신의 예상이 틀렸다는 것을 알았을 때 그의 반응은 어떠할지.

 

절대 시끄럽지 않은 책이다. 클라이막스에 들어서도 그것은 유지된다. 그 어느 때에라도 펑하고 터지지 않는다. 기쁜 순간이나 슬프거나 화가 나는 순간에도 말이다. 처음 시작부터의 느슨함은 어느 정도 유지가 되어진다. 그가 자초한 사건이 벌어지기 전까지는 말이다.

 

양털로 된 스웨터를 물에 빨아본 적 있는가. 그야말로 순식간에 미니미니한 사이즈가 되면서 탄력성은 사라지고 절대 끊을 수 없는 것처럼 느껴지는 딴딴함이 생겨버린다. 그 사건 이후로 이 느슨했던 분위기는 순식간에 쪼그라들면서 경직된다. 당신은 어떤 분위기를 원했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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