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인자에게 - 김선미 장편소설
김선미 지음 / 연담L / 2020년 2월
평점 :
절판


가슴 한구석에는 한 방에 크게 벌어서 아이들에게 도움이 되고 싶은 마음이 있었다. 돈만 있으면 아이들과 잘 지낼 수 있을 것 같고, 돈만 있으면 나를 무시하는 인간들을 내 발밑에 둘 수 있을 것 같다. 돈만 있으면 말이다. (210p)

 

며칠전에도 일가족 동반자살 뉴스가 있었다. 한의사였던 부부는 마지막으로 선택했던 것이 결국 자살이었다. 나중에 대충 기사로 훑기에는 한달에 나가는 월세만 2500만원 정도 된다고 하더라. 한숨이 푹 내쉬어졌다. 연봉은 없지만 한달에 백만원 정도씩 벌면 일년에 겨우 2천4백만원을 번다. 그 돈보다 더 많은 돈을 한달에 내는 것이다. 아무것도 안해도 말이다. 대체 얼마를 벌면 그렇게 낼 수가 있을까. 그들이 바라는 것은 무엇이었을까. 한달에 1억씩 벌어서 그 모든 것을 다 내고  떵떵거리면서 사는 것이었을까.

 

남들이 보았을 때 남편이 혼자서 한의원을 하는 것도 아니고 아내까지 같이 한의사라면 잘 사는 것처럼 보였을 수도 있겠다. 그냥 내가 간단히 생각하기에도 부부가 한의사라고 하면서 잘 살겠네 하는 생각이 먼저 떠오르지 않던가. 그들이 욕심 부리지 않고 그저 작은 한의원을 하면서 사람들을 돌봐주고 간간히 봉사활동도 하면서 아이들을 키우면서 살았으면 어떠했을까. 아무도 만약이라는 것을 가정했을 때의 결론은 모르는 것이고 이미 벌어진 사건을 되돌릴 수는 없지만 그랬다면 그들은 여전히 한 가족으로 오손도손 오늘도 정답게 살고 있지 않았을까.

 

내가 만약 자식들까지 죽였다면 아이들은 오늘의 사람이 될 수 없었겠지. 그제야 내가 무엇을 잘못했는지 뼈져리게 깨달았다. 아이들에게는 스스로 미래를 살아낼 수 있는 능력이 있는데, 나는 내가 없으면 안 된다는 논리로 그 사실을 외면했다. (158p)

 

동반자살이라는 단어가 마음에 들지 않는다. 자살은 자신이 자기를 죽이겠다는 마음을 먹는 것이다. 동반이란 같이 하는 것이다. 성인이 자신의 의지대로 죽겠다는 마음을 가지고 행하는 것이야 어쩔 수 없다는 생각이 든다. 물론 눈에 보이는 것이야 당연히 막아야 하겠지만 어디에 숨어서 저질러 버린다면 막을 길이 없지 않은가. 하지만 아이들의 경우에는 어떠한가. 더군다나 십대도 아닌 어린 아이들의 경우에는 아직 완전한 자아도 성립되지 않았다. 죽음이 무엇인지도 인지하지도 못하는 그런 나이대의 아이들 일수도 있다.

 

그런 아이들을 자신이 부모라는 입장으로 죽이는 것이다. 그것은 동반자살이 아닌 엄연한 살인이다. 동반자살이라는 용어로 미화되어서는 아니 된다고 생각한다. 정히 죽겠다면 저신만 죽어라. 남은 아이들은 걱정하지 말고 말이다. 그 아이들의 나름대로의 인생이 아직 남았다. 자신이 낳았다고 해서 자신이 죽여야 할 권리까지는 없는 것이다.

 

형은 아버지가 왜 우리랑 같이 죽으려고 했다고 생각해? (140p)

 

여기 한 아버지가 있다. 수면제를 타서 재우고 아내와 아이들을 죽이고 자신도 죽으려고 결심을 한 아버지다. 죽으려는 계획이 어디 마음먹는다고 잘 시행되던가. 그의 계획은 실패했다. 자신이 죽음에 이르지도 못했다. 결국 그는 아이들에게는 자신들을 죽이려는 살인자로 남아버렸다.

 

10년. 한 사람을 죽인 댓가가 겨우 그거라니. 아무리 생각해봐도 형량에는 문제가 있다는 생각이 든다. 대한민국의 판사들은 소설 속에서나 실제에서나 너무나도 약한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 말이다. 얼마전 자신의 전남편과 의붓아들을 죽인 그 용의자도 무기징역을 받았다. 사형이 아니라 말이다. 의붓아들에 대한 것은 무죄였다던가. 한줌도 찾을 수 없을 만큼 시체를 조각조각 내어 놓고 그것도 모자라서 계획적으로 완벽범죄를 노력한 그런 범죄자에게 고작 그런 정도의 형량이라니.

 

십년이 지나서 아버지는 아이들 곁으로 돌아온다. 자신을 죽이려 한 사람이 한 집에 살고 있다고 생각을 해보라. 잠이 오겠는가. 문을 잠궈놓은들 제정신으로 살 수 있겠는가 말이다. 단지 가족이라는 이유로 아버지라는 이유로 그 사람이 아이들과 한 집에 산다는 것은 아이의 정신상태를 무시한 가혹한 처사라는 생각이 든다. 아버지가 정신이 나가서 그랬던 것이라고 모든 것을 묻을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하지 말라. 이것은 분명 아동권리를 무시한 것이나 다름없다. 결국 그 아이들의 선택은 무엇이 되겠는가 말이다.

 

살인자에게. 무언가 뒷말이 생략이 된 것도 같고 누군가를 부르는 호칭같기도 하고 편지글의 첫머리 같기도 한 그런 뉘앙스를 풍기는 책의 제목이다. 살인자에게. 나는 무엇이라 말할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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