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 없는 세계
미우라 시온 지음, 서혜영 옮김 / 은행나무 / 2020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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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고도 감정도 없을 터인 식물이, 인간보다도 타자를 더 잘 수용하고 더 초연하게 사는 것처럼 보이는 건 참으로 얄궂다. (146p)

 

미우라 시온의 책은 전문적이다. [배를 엮다]라는 작품을 보았을 때도 그러했다. 내가 몰랐던 사전출판에 관한 이야기가 어찌나 세세하도록 나오던지 읽는 내내 내가 마치 그 출판사의 사전부에 있는 냥 느껴지게 되었었다. 그래서 작가의 작품을 좋아했다. 반면 [고구레 빌라 연애소동]은 그래서 더욱 특별하게 느껴지는 작품이었다. 작가 이름을 모르고 읽었기에 더욱 그러했다. 내가 알고 있는 작가의 작품이 아닌 전혀 다른 작가의 작품을 보는 느낌이랄까. 그래서 다양한 변주를 일으키는 작가의 작품을 더욱 좋아하게 되었는지도 모르겠다.

 

이번에는 식물학이다. 분명 작가는 식물학을 전공하기 않았을 것이고 설사 전공했다 하더라도 박사과정까지 수행하지는 않았을 것이다. 약력상 그런 내용은 없었으므로 말이다. 그럼에도 식물학 박사과정에 있는 주인공을 통해서 그 과정을 세부적으로 묘사하고 있다. 그렇다고 아카데믹하게 흘러버리면 과학수업 시간 같거나 일반인들이 이해하지 못할 부분이 나오므로 그 적절수위를 조절하는 것이 중요했을 것이다.

 

주인공의 연구과정을 설명하면서도 결코 한쪽으로 치우치지 않을 적정선을 지켜야 했을 것이다. 작가는 그 균형을 기가 막히게 맞춰놓았다. 마치 남사당패의 놀이꾼이 줄을 타듯이 음식점에서 일하는 후지마루의 요리분야와 식물학 공부를 하는 모토무라의 식물분야를 이쪽저쪽 넘실넘실거리고 있다.

 

결국 요리란 건 생과 사를 잇는 멋진 행위라고 생각한다. (18p)

 

제목의 '사랑 없는세계'란 사람이 살고 있는 이 세계가 아닌 식물들이 살고 있는 세계를 의미한다. 뇌가 존재하는 않는 식물들. 따라서 마음이라는 것도 존재하지 않고 생각이라는 것도 없을 것이고 고로 사랑이라는 감정도 느끼지 못할 것이다. 그러나 그런 세계에 사랑을 가지고 미쳐있는 모토무라. 그녀는 그 사랑없는 세계를 너무나도 사랑한다. 사랑한 나머지 자신의 일생을 다 바쳐서라도 그들의 세계를 연구하려고 매진중이다. 절대 다른 곳에 눈을 돌릴 여유가 없다.

 

자신이 연구하는 애기장대를 키우고 그들을 수분시키고 유전자를 확인하고 세포의 수를 세고 하는 일련의 과정들이 남들이 보기에는 따분해보이고 무엇을 하는지도 모르고 지루한 일처럼 보이지만 그녀에게는 시간이 가는 줄도 모를만큼 흥미로운 일이며 관심이 있는 분야가 되는 것이다. 그러니 동년배의 다른 사람들처럼 누군가 이성에게 관심을 가지고 데이트를 하는 일도 하다못해 자기 자신을 위해서 꾸미는 일도 관심외 분야가 되어 버리는 것이다. 매일같이 연구실에 들러서 자신이 연구하는 애기장대를 보는 것, 그것이 그녀에게는 최고의 낙이자 살아있는 목표일수도 있겠다.

 

그래서 저는 식물을 선택했어요. 사랑 없는 세계를 사는 식물 연구에 모든 것을 바치겠다고 마음을 먹었어요.누구하고든 만나서 사귀는 일은 할 수 없고, 안 할 거예요. (96p)

 

그런 그녀에게 대뜸 고백을 해버린 사람이 있었으니 그것이 바로 후지무라다. 그녀를 보고 그녀에게 빠져버리는데는 긴 시간이 필요하지 않았다. 남들이 보아서는 전혀 이해할 수 없는 그녀의 세계, 그것이 좋았던 것일까. 그는. 멈추지 않고 그대로 돌격했지만 돌아오는 것은 당연히 거절. 자신만의 세계 아니 사랑이 존재하지 않는 식물의 세계에 빠진 그녀로서는 다른 사람의 존재를 거부할수 밖에 없었을 것이다. 자신이 필요로 하는 것만 해도 모자라는 시간이었기에 말이다. 그녀가 박사과정을 위한 연구만을 목표로 했더라면 또 결론은 달라질 수도 있었을지도 모른다. 박사과정이 끝난 후 그들의 관계가 달라질 것을 기대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녀에게 있어서 그것이 전부가 아니었다. 박사과정은 자신이 공부를 하는 가운데 있는 그야말로 하나의 과정일뿐 그녀는 진정으로 식물들을 사랑하고 그들의 세계가 궁금했던 것이다. 연구를 해 본 사람이라면 알수도 있겠다. 그것이 끝이 없다는 것을 말이다. 누가 돈을 주는 것도 아닌데 어디서 돈이 생기는 것도 아닌데 그렇다고 큰 영광을 꿈꾸는 것도 아닌데 그 세계에 빠져서 헤어 나올수가 없는 것 말이다. 무엇이 그녀로 하여금 그렇게 식물에 빠지게 만들었을까.

 

본의 아니게 다른 사람도 아닌 식물과 경쟁관계에 놓인 후지무라. 그의 도전은 끝나지 않았다. 그는 사랑없는 세계에서 그녀는 빼내어 자신의 소유로 삼기보다는 오히려 자신이 그 세계 속으로 동화되어 가려고 노력중이다. 언젠가 그 사랑없는 세계에 그가 들어갈 수 있다면, 완벽하게 그 속에서 자유롭게 돌아다닐 수 있다면 그곳에서 자신이 좋아하던 그녀를 만날 수 있지 않을까. 그때쯤이라면 그녀도 그의 사랑을 이해하고 받아주지 않을까. 그때까지 부디 그가 지치지 않기를 식물관의 싸움에서 지지 않기를 응원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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