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당신의 평온을 깼다면
패티 유미 코트렐 지음, 이원경 옮김 / 비채 / 2020년 1월
평점 :
절판


인간이 스스로 목숨을 끊을 때는 아주 이상하고 심각한 상황이기 마련이므로 어떤 연유였는지 반드시 알아봐야 한다. 엄격하고 적절한 형이상학적 조사가 이뤄져야만 한다. 어쩌면 내 동생의 죽음을 조사함으로써 내 삶에 다시 활기가 생길 수도 있고, 최종적으로 알아낸 사실들을 양부모에게 알리면 그들의 삶도 안정되고 강해질지 모른다. 나는 내 생각이 합리적이고 의미 있다고 느꼈다. (13p)

 

룸메이트의 새 소파가 들어오는 날이었다. 그날 나는 내 동생, 정확하게는 입양동생의 죽음을 전해들었다. 입양이라는 제도가 아니었다면 만나지도 않았을 인연이었다. 원래부터 내 동생도 아닌 아이었다. 우리는 태어난 곳으로부터 몇천 키로나 떨어진 곳에서 아무런 연관성이 없는 양부모에게 입양된 운명공동체였다. 이제 나는 어떻게 해야 하는 걸까.

 

동생의 죽음과 새 소파 - 내것도 아닌 - 소식은 같은 날 한꺼번에 날아들었다. 새로운 가구는 내 것이 아니니 아무런 관계 없는 일이다 싶지만 내동생의 죽음은 그렇지 않다. 오랫동안 못 만났어도 어려서부터 같은 집에서 같은 부모 밑에서 자라온 사이고 그런 그는 내동생인 것이다. 나는 동생의 죽음을 파헤치러 떠난다. 대학졸업자이지만 제대로 된 직장은 커녕  아르바이트로 문제아들을 돌보는 일을 하던 일을 그만둔채 말이다.

 

나는 왜 동생의 죽음이 궁금했던 걸까. 단지 양부모가 직접 그 소식을 알리지 않은 것이 불만이었을까. 아니면 이제서로도 동생의 흔적을 찾아봐야겠다도 느낀 걸까. 동생의 흔적을 찾고 동생이 어떻게 죽었는지를 알게 되면 그 다음에는 어쩔 것인가. 그것을 이해한다해도 동생은 이미 없는 걸. 그때서야 후회를 할 것인가.

 

특별히 자기 자신을 꾸미는데 존을 들이지도 않던 나는 동생의 장례식에 가기 위해서 검은색 스웨터를 주문한다. 그 스웨터가 상징하는 바는 또 무엇이란 말인가. 주운 옷으로 해결하고 사이즈도 맞지 않은 짝짝이 신발을 끌고다니던 내가 큰맘 들여 주문한  -새것도 아니지만 - 검은색 스웨터. 마지막 가는 길이라도 제대로 된 누나의 모습을 보여주겠다는 것일까.

 

집은 오랜만이었다. 어려서부터 자라온 집이었지만 나는 이 집에 정을 붙이지 못했다. 오랫동안 보지 못했던 양부모와의 만남도 역시나 그러하다. 무언가 껄끄럽다. 어색하다. 양부모 또한 내가 집에 돌아온 것이 놀라운 일이고 반가운 일은 아님에 틀림없다. 동생의 죽음을 전한 것은 숙부였지만 어쩌면 양부모가 전해달라고 부탁한 것이 아닐수도 있겠다라는 생각을 배후에 가지게 된다.

 

동생이 자살한 원인을 찾겠다면서 돌아왔지만 정작 동생의 방에는 발을 들이지 않는다. 동생이 어디서 어떠한 방법으로 죽었는지도 모른다. 그저 주변 사람들을 만나고 돌아다니면서 어쩌면 민폐일지도 모를 일들을 만들어 내고 그것은 집에서도 마찬가지다. 나는 여기 왜돌아온 걸까.

 

우리 집이 나를 우울하게 했고, 어린 시절이 나를 우울하게 했고, 학교가 나를 우울하게 했고, 우리 개가 나를 우울하게 했고, 내 신발이 나를 우울하게 했고, 내 책들이 나를 우울하게 했고, 누나가 나를 우울하게 했고, 우리 부모님이 나를 우울하게 했고, 내 침실 창밖 나무가 나를 우울하게 했어. (92p)

 

자살하는 사람들은 충종적으로 저지른다고 알려져 있다. 하지만 죽기전에는 반드시 신호를 보내기 마련이라고 들었다. 동생의 경우도 마찬가지였다. 누나에게 보낸 편지를 보면 즉각 알 수 있지 않은가. 이런 편지를 받고도 아무런 조치를 취하지 않았다거나 연락을 하지 않았다면 그것은 '누나'라는 자격이 없는 것일까 아니면 무딘 것일까 아니면 동생은 너무 믿은 것일까.

 

1) 병리학적 특성 2) 우울증 3) 무분별 4) 비이성적 태도 5)건강문제 6)자제력 상실. 내 동생의 경우에는 병리학적 특성이나 비이성적을 태도를 배제해야 해요. 그리고 내가 아는 한 걔는 자제력을  잃은 적이 없어요. 조직적으로 살아온 것 처럼 조직적으로 자살한 거예요. 늘 계획과 준비에 집착했고 , 뭐든 운에 밑긴 적이 없는 애니까요. (100p)

 

동생을 모르지는 않았다. 어떤 아이인지는 알았다는 소리다. 그러니 자살의 대표적인 여섯가지의 경우를 놓고서도 어떻게 접근해야 하는지 알 수 있었을 것이다. 그렇다면 그렇게 잘 알았다면 왜 막지 못했을까. 늘 사건은 일어난 후에야 후회하기 마련이다.

 

sorry to disrupt the peace. 당신의 평온을 깨뜨려서 미안해. 내가 늘 사과할때 쓰는 말이다. 듣는 사람에 따라서 다르게 이해할수도 있는 문구. 나는 어떤 뜻으로 이런 말을 했을까. 이것은 동생에게 하는 사과이려나.


댓글(0) 먼댓글(0) 좋아요(4)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