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은 얼굴의 여우 블랙 앤 화이트 시리즈 85
미쓰다 신조 지음, 현정수 옮김 / 비채 / 2019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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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들에게 조선인은 얼마든지 교체할 수 있는 노동력에 지나지 않는다. 한 명 한 명을 인간으로 보지 않고, 어디까지나 마음껏 부려먹을 수 있는 노동자 집단으로 취급한다. (484p)


미스다 신조는 [군함도]라는 한국 작가의 작품을 읽었을까. <군함도>라는 한국 영화를 보았을까? 탄광을 배경으로 한 우리나라 작가와 배우들의 작품을 알고는 있을까가 궁금해진다. 만약 보지 못했다면, 알지 못한다면 이런 작품이 있다고 알려주고 싶다는 생각이 든다. 작가는 그들이 우리에게 행했던 일들을 비겁한 변명으로 덮어씌우지 않고 있는 그대로 드러내기를 원했다.

 

미리 말하지만 이것은 역사책이 아니다. 단지 시대적 배경이 그러할 뿐이며 그런 배경을 가지고 사건이 벌어지는 장르소설일 뿐 이다. 그러할 지라도 역사적인 사건을 배경으로 삼고 있기에 그저 단순하게 넘어가지지는 않는다. 더욱 자세하게 세밀하게 읽게된다. 이것이 역사소설이 아닐지라도 말이다.

 

전쟁 당시 우리나라의 젊은이들은 일본에 의해서 착출되어 갔다. 자신들의 나라에서 감당을 할 수 없으니 자신들이 식민지로 삼고 있는 우리나라에까지 마수를 뻗친 것이다. 명목상으로는 취직을 시켜주고 돈을 벌 수 있게 해준다는 것이었지만 막상 그곳에 가면 지옥보다도 더 못한 현실을 마주하게 된다.

 

패전 이후 모든 조선인들이 자신들의 나라에 돌아가거나 또는 개명을 하고 일본에 남거나 한 상태, 여기 대학을 나온 한 청년이 자신이 무엇을 해야 할까를 생각하며 탄광에 자리잡는다. 어느 정도 공부를 한 사람이 굳이 이 일을 하지 않아도 되련만 그는 국가의 재건에 도움을 주고자 이곳에서 일을 하게 된다. 그가 이곳에서 일을 하게 되면서 알게 되는 사실들은 무엇일까.

 

처음에는 역사적인 배경이 드러난다. 그 이후에는 검은 얼굴의 여우 이야기가 나오면서 호러의 대가다운 접근을 시도한다. 마지막으로 작가는 자신이 준비해둔 사건을 하나둘씩 선보인다. 그것도 아주 빠르게 말이다. 라르고로 시작되던 이야기는 안단테를 거쳐 적당히 빠르기를 조절하면서 모데라토까지 올리더니 마지막으로 치당을수록 알레그로로 마구 달라기 시작한다. 마지막으로는 프레스토로 절정을 찍는다.

 

빠르기가 빨라질수록 그에 따라 세기도 정비례한다. 피아니시모로 잔잔하게 이야기하던 것이 어느새인가 메조포르테를 거쳐서 포르테까지 이르게 되는 것이다. 중간중간 쾅쾅하고 팀파니와 심벌즈를 울리는 일도 빼놓지 않는다. 540여페이지의 이 책은 한편의 완벽한 관현악과도 같은 느낌으로 달려간다.

 

자신을 이끌어준 사람과 함께 탄광에서 일을 하게 된 하야타. 사람이 사는 곳이라면 어디라도 그럴테지만 처음부터 친해지지는 않는다. 일을 하게 되면서 친하게 되는 사람들이 생기고 다른 사람들이 합류하면서 반대되는 무리들도 생긴다. 그래도 나름대로 평화로운 나날이 이어지던 어느날 갱도가 무너지는 사고가 발생하고 모든 인원이 다 빠져나왔지만 단 한명만이 나오지 못하고 묻히게 된다.

 

하야타는 자신을 이곳까지 이끌어주고 같이 살고있는 그를 빨리 구해야 한다고 하지만 가스까지 터진 마당에 한명을 구하자고 무리한 목숨을 걸 수는 없다. 일단은 시간이 지나야 할 것이다.

 

그가 그 속에 묻혀있는 가운데 이 촌락에서는 또다른 일이 벌어졌으니 자살사건이 바로 그것이다. 제사에 사용되는 금줄로 목을 맨 한 남자. 밖으로 향하는 문은 모두 잠겨있거나 열리지 않는 상태. 회사에서도 경찰에서도 모두 자살로 결론을 내고 구출작전에 더 노력하고자 하는데 사건은 여기서 끝이 아니다. 또 다른 사건, 그것도 똑닮은 사건이 발생을 하면서 경찰에서도 더이상은 묻어둘수가 없는 지경이 된 것이다. 과연 이 밀실사건을 깨트릴 단 하나의 열쇠는 무엇인가.

 

추리소설중에서도 밀실사건은 작가로서도 독자로써도 가장 어려운 장르에 속한다. 말이 되는 개연성이 없어도 이것은 밀실로써의 자격을 잃을 것이고 그렇다고 너무 허술해도 시시하게 보일 것이다. 이 밀실을 깨뜨릴 열쇠는 반드시 존재한다. 그것을 알아내는 순간 이 모든 사건을 풀려갈 것이다.

 

호러사건들만을 찾아다니면서 자신이 직접 나서서 해결하던 도조겐야 시리즈를 만든 미쓰다 신조는 이번에는 역사를 배경으로 한 호러미스터리를 창출해냈다. 그러면서 여기 이 하야타가 등장을 하게 되는 것이다. 또 만나뵙고 싶다는 말로 마무리를 하고 있는 그들. 하야타는 이제 시작이다. 앞으로 어디서 어떠한 사건들을 만나게 될까. 새로운 시리즈와 등장인물의 시작은 언제나 기대감을 동반하는 법이다. 이 역시도 그러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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