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가 사라졌다.
그것도 엄마가 그날 딱 몇시간 놀러나간 사이에 없어졌다. 엄마는 아이를 혼자 두지 않았다. 베이비시터를 두었지만 그녀는 마침 딱 그 시간에 잠을
잤다고 했고 아이는 없어졌다. 이런 경우 아이가 없어진 것에 대한 책임은 엄마에게 있는 것일까 베이비 시터에게 있는 것일까.
누가 죽는것도 아니고 (후반부 들어서 한 사람의 죽음이 나타나기는 하지만) 아직 말도 못하는 한
아기의 실종사건이 주로 이루어지다 보니 자칫 느슨해지는 감은 없잖아 존재한다. 올긴이의 말에도 이 이야기를 스릴러소설이라고 봐야 할까 라는
생각이 들었다고 하니 정통스릴러라고 보기에는 조금 어렵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사람의 심리를 조절하는 심리스릴러정도라고 생각하면
맞을듯 하다.
그날 아기를 맡겨두고 놀러간 날 엄마와함께 있었던 다른 엄마들은 자신들이 죄책감을 느끼고 저마다
아이의 행방을 찾기에 바쁘다. 이런 저런 것을 찾아내며 증거라고 들이대니 오히려 경찰이 일을 하기 힘들 지경이다. 그런 와중에 그 엄마들이
숨기고 있었던 과거들이 드러나기 시작하는데 과연 이 아이는 어디서 어떻게 돌아오게 될까.
작가는 끊임없이 단 하룻밤 외출한 것뿐이라고 엄마들의 입을 빌어 말하고 있다. 정당화 하는 것이다.
아이가 사라진 것에 대한 변명일수도 있고 자신을 변호하기 위함이기도 하다. 엄마도 쉴 수 있는 시간이 있어야 한다. 그런 와중에 생긴 일이다.
태어나서 어느 정도 인식이 되기 전까지의 아기들은 끊임없이 울고 보채고 잠투정을 한다. 물론 순한
아이들도 있겠지만 말이다. 부모들은 녹초가 되기 쉽다. 더군다나 이른바 독박육아, 엄마가 전담해서 아이를 케어해야 하는 경우는
더욱 지치게 된다. 산후우울증이 이어질수도 있고 그것이 모두 아이에게 영향을 줄 수도 있게된다.
사회생활을 하기 힘들어지는 것은 일반적인 상황이고 끊임없이 아이에게만 모든 관심이 쏠리게 된다. 몸의
변화는 물론 그 상항을 더욱 악화시킨다. 모두 아이 때문이다. 그렇다 하더라도, 모든 것이 이해된다 하더라도 엄마가 아이를 두고 나간다는 것을
이해해야 하는 것일까 아니면 손가락질 해야 하는 것일가.
비슷한 시기에 아이를 낳아서 비슷한 시기에 산후조리원에 있었던 엄마들끼리는 조리원 동기라는 것이
만들어진다고 한다. 그 조리원 동기들은 남자들로 치면 군대동기같은 막강한 유대감을 공유한다고 한다. 아마 이야기속에서 만들어진 5월맘을 그런
식으로 생각하면 될 것 같다. 그들끼리의 유대감은 남들이 생각한 것 이상으로 끈끈하다고 볼 수 있는 것이다.
아이는 엄마가 낳지만 이 아이를 기르는데는 온 동네가 다 필요하다는 옛속담도 있지 않던가. 아이는
혼자 키우기란 상당히 어려운 법이다. 물론 퍼펙트한 엄마가 되는 것도 불가능한 일이다. 절대적으로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