판결의 재구성 - 유전무죄만 아니면 괜찮은 걸까
도진기 지음 / 비채 / 2019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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많은 부분이 판사 개인의 결단에 맡겨진 현재는 사법부와 대중의 괴리가 좀처럼 좁혀지지 않을 것 같다. (43p)



<말하자면 너를 사랑하고 있다는 말이야~ 하지만 말할수 없단 얘기야~ 하루가 또 지나도 난 항상 제자리에에에에에에에~~~!!!!!!>


첫방송을 보았었다. 음악프로그램을 보지 않던 내가 그날 바로 그 방송을 보고 와우~하고 소리를 질렀다. 멋졌다. 노래도 멋졌고 춤도 멋졌고 사람도 멋졌다. 듀스는 알아도 노래에 빠진 적은 없는데 '김성재'라는 한 가수의 딱 한곡에 매료되었었다. 그리고 바로 이어 그의 죽음이 들려왔다. 바로 첫방송을 한 그날 말이다. 


수사는 전문적이지 않았다. 그때 당시 경찰에서는 어던 조사를 했는지 어떤 증거를 찾았는지 어떤 증인을 불렀는지 자세히 알지 못한다. 하지만 그와 같이 있었던 여자친구가 용의자로 잡혔다는 소식을 보았고 억울하지만, 아쉽지만 그래도 정의는 살아있다고 생각했는데 웬걸 시간이 지난 후 그녀는 무죄로 풀려났다. 


김성재의 팔에는 주사 자국이 28군데나 있었다. 졸레틸은 명백하게 그날 밤 김성재의 팔에 투여된 약물이다. 김성재는 졸레틸 주사로 죽은 것이다. 범행에 준비된 용량이 그보다 적었다고 하여 '사인'이 뒤바뀌지는 않는다. (86-87p)


수사라고는 모른다. 그래도 죽은 이의 팔에 28개나 되는 주사바늘이 생겼다는데, 몸속에 듣도 보도 못한 약물이 검출되었다는데 그게 죽일만큼 치사량이 아니어서 무죄라니 이건 정말 말도 안 된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 생각은 그때나 지금이나 마찬가지다. 아무런 연관성이 없는 내가 이토록 답답하고 원통함을 느끼는데 가족들은 어떠할까. 


바로 그 사건을 작가는 콕 집어 놓았다. 내가 하고픈 말이 다 들어 있다. 속이 다 시원할 지경이다. 나와는 달리 작가는 전문가다. 전직 판사이며 변호사다. 그런 그가 보는 사건은 조금은 더 자세하고 일반적이기보다는 전문적으로 보지 않겠는가. 판사는 어느 한쪽으로 치우쳐서는 아니된다. 양쪽의 의견을 들어보고 확실하다고 생각하는 판결을 내려야 한다. 김성재 사건의 판사는 무슨 생각으로 이런 결론을 내렸던 것일까. 다시 한번 궁금해진다.


영화보다도 소설보다도 현실은 더 흥미롭다. 우리 주위에서 흔하게 볼 수 있는 내용은 아니라하더라도 우리가 살고 있는 바로 이 땅에서 벌어지는 사건들이어서 더 궁금해진다. 인터넷을 통해서 사건소식을 빨리 알 수 있다. 반면 정확하지 않은 정보들이 빠르게 마구잡이로 퍼지는 경향도 있다. 그래서 이 책속의 사건에 더 집중해서 보게 된다. 김성재 사건이나 태완이법처럼 익히 아는 사건들도 있고 몰랐던 사건들을 알게 되기도 한다. 


수사기관, 소추기관은 최종심판자가 아니다. 법원에서 기각될 위험이 있다고 해도 시민의 법감정이 요구한다면 해 볼 가치는 있는게 아닐가. 그저 과거의 일로 치부하기엔 피해자의 죽음이 너무 애석해 보인다. (138p)


이미 판결이 내려진 사건들이고 그 판결들이 옳았다 그르다 하는 것은 현직 판사에 있었을 때는 할 수 없었겠지만 지금은 아니 속시원하게 드러내놓고 말하고 있다. 사실 어떤 사건들은 정말 의외의 판결이 나와서 나를 비롯한 일반 사람들을 깜짝 놀라게 하기도 한다. 보통의 사람들이라면 당연히 이것은 유죄로 나와야 할 것인데도 불구하고 판사는 무죄라는 결론을 내어 놓을 때 그 놀라움은 더해진다. 왜? 무슨 이유로? 하면서 개인적으로 묻고 싶어지는 경우도 생긴다. 


판사는 물론 증거를 보고 양쪽의 주장을 들은후 한 사람이라도 무고한 사람이 없도록 하겠다는 원칙하에 그렇게 판결을 내린 것이지만 작가도 비유하듯이 솔직히 자신이 예수를 죽인 빌라도가 되기 싫어서 그 자리를 피하고자 무죄를 선언한 경우도 있지 않은가 하는 생각도 하게 된다.

 

일말의 의심이라도 없어야 한다. 그것이 유죄를 선고할수 있는 이유이다. 한치라도 무죄라는 생각이 든다면 그것은 무죄여야만 한다는 것이 먼저 우선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그럴지라도 사건은 종종 엉뚱한 쪽으로 흘러서 약자를 범인으로 몰아가기 일쑤다. 그런 법들이 있는데도 불구하고 말이다. 좋지 않은 시간이 좋지 않은 장소에 있었던 좋지 않은 사람일 뿐안데도 어쩌다보니 범인으로 몰려서 원치 않는 옥살이를 해야만 했던 사람들이 이 책에 나온 그들 외에도 또 있지 않을까. 그런 사람들을 없게 하려고 법도 재정비하며 노력을 하는데도 왜 그런 일은 발생을 하는 것인가. 


판사가 실제적으로 사건현장에 나가지는 않는다고 알고 있다. 유럽 소설에서는 현장판사라는 직책도 있어서 실제적으로 형사처럼 몸소 사건을 지휘하는 경우도 있는 듯 하지만 한국에서는 아닌 듯 하다. 그러므로 판사는 경찰이 모아온 증거들과 증인들로 사건을 접하게 되고 그렇게 해서 불려온 용의자와 변호사가 하는 말로 그들을 판단하게 되는 것이다. 


어떻게 보면 가장 객관적이라 할수도 있다. 어느쪽도 정확하게 자신이 개입을 하지는 않으니 말이다. 그러나 그렇게 함으로 인해서 정확하지 않음을 배제할수는 없을 것 같다. 사건 현장에서부터 잘못된 정보와 잘못된 증거들이 모이고 쌓이게 되면 판결도 달리 날 수밖에 없는 것이다. 그럴 경우 피해자는 누구에게 책임을 물어야 하는가. 


개인의 정의관도 변하며, 지배세력은 바뀐다. 누가 옳은지 누가 판단할 것인가. 판사도 모른다. (270p)


한권의 책으로 모든 판사가 잘못되었다라고 언급할수는 없다. 작가도 언급하고 있듯이 우리나라의 판사의 수는 다른 어떤 나라보다도 적으며 그로 인해서 한 사람이 담당해야만 하는 사건의 수는 그 어느 나라보다도 많다. 거기다가 승진을 하기 위해서 가급적 많은 사건을 까야만 한다. 빨리 처리하는 것을 최우선으로 하고 있는 것이다. 그러다보니 이런 실수들도 생겨나는 것이 아닐까. 


인공지능 시대가 되고 있다. 이렇게 된다면 차라리 인공지능 판사가 나오는 것이 가장 공정한 것은 아닌가 하는 생각도 잠시 해보게 된다. 지금도 현직에서 범인들의 유무죄에 골치를 겪고 있을 판사들에게 더욱 공정하고 바람직한 판결을 바라며 조금이나마 격려를 해드리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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