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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끄러움 ㅣ 비채 모던 앤 클래식 문학 Modern & Classic
아니 에르노 지음, 이재룡 옮김 / 비채 / 2019년 4월
평점 :
< 나는, 당신은 무엇에 부끄러움을 느끼는가?>
허구를 배제하고 체험한 것만을 솔직하게 서술하는 작가 아니 에르노. 아버지의 삶을 중심으로, 어머니의 삶을 소재로 삼아서 소설을 썼지만 자신에게 솔직하게 싶었던 것일까. 부모라는 제3의 인물에서 벗어나서 자신의 자전적인 이야기마저도 소설의 소재로 삼았지만 소설이라는 형식 안에서는 자유롭게 쓸 수 없음을 느끼고 보다 사실적으로, 그러면서도 담담하게 자신의 이야기를 털어놓고 싶었던 작가는 1983년 오로지 자신이 체험한 것만 쓰겠다고 선언한다. 대담한 시도이면서도 그만큼 자신감 있고 당당한 모습을 드러내고 있음을 볼 수가 있다.
옮긴이의 해설에서는 정확성울 추구한 그녀의 문체는 우리말로 옮겨놓아도 건조하고 딱딱해야 한다고 말하고 있다. 번역자의 말처럼 이 글에는 화려함을 자랑하는 미사문구는 없다. 꾸밈없이 가감없이 그때 상황을 설명하고 있고 자신의 눈으로 직접 본 것처럼 당시 상황을 설명하고 있다. 그렇다고 문학의 본질적인 요소인 읽기가 방해되지는 않는다.
철학적이고 난해한 단어를 사용하지 않음으로 인해서 오히려 어른이 키를 낮춰 아이에게 다가가듯이 부드럽게 눈에 착착 감겨드는 맛이 있다. 역자는 1952년 프랑스 지방의 작은 소도시를 배경으로 작가가 나열하는 잡지나 영화 또는 언어들 같은 문학적 기호가 지금의 우리와 맞지 않을까 염려를 표했지만 작가가 의도하는 바를 충분히 이해할 수 있었다고 본다.
나는 아무것도 분간할 수 없었다. 마치 그 시절을 살지 않은 것처럼. (42p)
인도차이나 전쟁이나 한국 전쟁 오를레앙스빌의 폭동, 자크 뒤클로의 검거 등 여러 굵직한 사건들이 1952년에 있었다. 대체로 자신도 알만한 사건들이었으나 훗날에 기억한 것들일 뿐 그 당시에는 그런 일이 있었는지도 몰랐다고 서술하는 이야기를 읽으면서 나 또한 그렇다는 것을 깨달았다. 나도 한국 현대사의 격동의 시대를 살아왔으면서도 느끼지 못했고 기억하지 못했다. 마치 그 시절을 살지 않은 것처럼.
내가 중학생때는 그렇게 데모가 자주 일어나던 신촌학원가를 지나다녔고 5.18 민주항쟁운동도 분명 알만한 사건임에도 불구하고 전혀 모르고 살아왔다. 이런 굵직한 사건들을 알게 된 것은 모두 훗날 아주 오랜시간이 지나고 난 후에 기사나 매체, 그리고 소설과 영화를 통해서 느끼고 알게 되었다. 나는 그 시절에 무엇을 했을까. 모두가 다 그런지는 모르겠으나 그러한 부분에서는 너무나도 공감하는 문장이었다.
레퓌블리크 거리와 샹드쿠르스 동네 사이에 있는 클로데파르 구역은 시내 중심지에서 카니 다리까지 길게 자리하고 있다. (54p)
자신이 경험하는 것을 써서일까 지명조차도 사실적으로 드러나있다. 궁금해서 검색을 해보았다. 레퓌블리크 광장이 실제로 있었다. 파리에 있는 광장이름으로 프랑스 혁명의 영향을 받은 곳. 자세히 나오지 않아도 작가가 설명하고 있는 지명들 모두가 실제로 파리에 존재하고 있음이 분명하다.

<지도 - 레퓌블리크 광장 (네이버 검색)>
[부끄러움]이라는 제목을 보고 사람들은 어떤 생각을 했을까. 작가는 어떤 마음으로 이런 제목을 붙이게 된 것일까. 죽일듯이 싸우고 정말 죽일듯이 행동을 취해놓고 아무일 없었다는 듯이 또 하루를 살아가는 가족. 그런 부모를 보는 아이는 어떤 생각이 들까. '우리 집안은 정말로 미쳐 있다.'(120p)라는 한문장으로 정의할수 없는 자신의 가정이 부끄러웠을까 아니면 그런 것을 보면서 살아갈 수 밖에 없는 자신이 부끄러웠을까.

부끄러움을 느끼는 것은 당연한 일이었다. 그것은 내 부모의 직업, 궁핍한 그들의 생활, 노동자였던 그들의 과거 그리고 우리의 존재 양식에서 비롯된 결과물이었다. 또한 6월 일요일의 사건에서, 부끄러움은 내 삶의 방식이 되었다. 아니, 더는 인식하지조차 못했다. 부끄러움이 몸에 배어버렸기 때문이다. (137p)
'부끄러움'이라는 감정은 인식하는 순간 밖으로 드러난다. 자신이 실수를 저질렀을 때도 느낄 수 있고 자신의 존재가 보잘것 없다고 느껴질때도 그런 감정은 존재한다. 역자가 말한 것처럼 작가가 사용하고 있는 '계급'이라는 단어 속에도 부끄러움은 당연히 들어가 있다. 누군가와 비교했을때 나의 계급이 아래라고 생각되면 부끄러움을 가질 수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런 감정들조차도 몸에 배어버린다면 더이상 인식하지 못할 것이다. 내 계급이 다른 사람과 비교해서 아주 밑이라는 것을 알게 된다면, 더이상은 비교할 수 없는 것을 깨달아버린다면 그때는 부끄러움을 느끼지 않게 되어버린다는 뜻이다. 그런 상태의 삶이란 어떤 것일까. 과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