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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자들의 등산일기 ㅣ 블랙 앤 화이트 시리즈 81
미나토 가나에 지음, 심정명 옮김 / 비채 / 2019년 4월
평점 :
눈의 흰색, 하늘의 푸른색, 산의 초록색. 원색 물감을 물로 희석하지 않고 캔버스에 바른 것 같은 여름의 색 대비가 아름답다. (221p)
본문에 나온 표현은 아마도 이 사진의 산을 설명한 것이 아닐까. 파랗고 하얗고 초록색의 색감이 어울려서 조화롭게 드러나는 이미지. 보기만 해도 행복해지는 색들이 가득해서 이 산에 올라 동서남북 어디로 눈을 돌려도 좋을 듯 하다. 한국에서도 이곳으로 가는 투어가 있다는 것을 새롭게 알게 된다.
산은 생각을 하기에 딱 좋다. 동행이 있어도 말없이 한 줄로 걷고 있으면 자기 세계 속으로 들어가게 된다. 그때 마음속 대부분을 차지하고 있는 문제가 자연스럽게 머릿속에 떠오른다. 자기 발로 한 걸음 한 걸음 나아가고 있으면 인생도 자기 발로 나아가야만 한다고, 일상생활에서는 외면하던 문제와 똑바로 마주 봐야 할 듯한 느낌이 든다. 이 발로 정상에 도착하면 가슴속에도 빛이 비쳐드는 것 아닐까 하는 기대가 가는 길을 격려해준다. 그렇게 해서 자기 자신과 마주 보면서 걷는 것이 등산이라 생각했다. (361p)
[고백]이나 [속죄] 등과 같이 추리적인 면이 강한 미나토 가나에의 책들만 읽어본 사람이라면 이번의 책을 보면서 작가답지 않음이 보인다고 느꼈을 수도 있겠다. [왕복서간]이나 [꽃사슬]을 읽어본 사람이라면 작가의 또 다른 면이 발휘된 것이 이 작품이라고 같은 선 상에서 느낄수도 있겠다. 범죄가 일어나지 않으나 체계적이고 조직적인 그러면서도 흥미로움을 잃지 않는 이야기. 작가의 책들은 블랙 아니면 화이트. 극과 극을 넘나듦이 보인다.
등산이라는 것을 별로 좋아하지 않았다. 아니 지금도 별로라 생각한다라는 표현이 맞겠다. 어쩌다보니 대학을 다니면서 설악산만 세번을 다녀왔다. 내가 등산동아리도 아닌데 가다보니 그곳이고 잡다보니 그곳이었다. 그 이후로도 또 간 적이 있으니 그 산은 나와는 참 인연이 많은 산이라 하겠지만 그때마다 제대로 정상에 올라본 적은 없고 어느 정도에서 맛만 보고 내려온 셈이다. 태백산은 정상까지 올라간 적 있다. 그외에 내가 스스로 산에 오르겠다 하고 생각한 것은 한국에서는 동네에 있는 산뿐이다.
산에 관한 단상들을 소회하게 된다. 작가의 이 번작품이 등산, 그것도 여자들의 등산이야기이기 때문이다. 여자 혼자 오르는 산. 직장 동료와 오르는 산, 자매가 함께 오르는 산, 조카가 같이 가는 산, 남자친구와 같이 가는 산 등 여러 가지 형태의 등산이 줄줄이 이어진다. 산은 산이로되 그곳을 가는 사람만 다른 유형인 셈이다.
여행은 어디를 가느냐보다 누구와 함께 가느냐가 중요하다고 했던가. 산도 마찬가지다. 누구와 함께 가느냐에 따라서 같은 산이라 할지라도 다른 모습을 보게 되는 것이다. 친한 사람과 가는 것과 조금은 거리감이 있는 사람과 같이 가는 것. 어느 것이 등산에 조금 더 편한 요인이 될 것인지 생각해 본 적 있는가?
아마도 현대를 살아가는 사람들은 너무 바쁜 나머지 운동할 시간도 없는데 언제 등산을 가느냐고 말할수도 있을 것이다. 산에 한번 오르면 초록풀과 파란 하늘 그리고 시원한 바람까지 모든 것을 만족시켜주는 쾌감에 빠지게 되지 않을까. 물론 나부터 컴퓨터 앞에 매여있는 이 엉덩이를 들고 나서야 하겠지만 말이다.
<내가 올라갔던 6월 백두산>
등산을 좋아하지 않는 내가 중국에는 산에 가기 위하여 여행을 갔었다. 태산과 황산, 그리고 백두산까지 중국여행은 산과 관련이 있다. 높은 곳에 올라서 내려다 보는 기분은 마치 이 세상이 아닌 다른 곳에 있는 듯한 느낌이 든달까. 직접 보지 않으면, 직접 느껴보지 않으면 알 수 없는 그런 기분이다.
일본에는 온천을 가기 위해 여행을 가는 편이다. 그래도 기억에 남는 곳이라면 사쿠라지마라고 화산활동이 실제로 일어나는 산이었다. 정상까지는 가지 못하고 주변만 돌아보기는 했어도 색다른 체험이었다. 본문 속에서는 많은 산들 중에는 가장 먼저 나오는 묘코산. 니가타에 여행을 갔었고 계곡이 있는 산을 간 적이 있다. 본문의 산들은 우리가 익히 알고 있는 산들이 아니어서 더욱 호기심이 동한다. 언젠가 한번쯤은 이 책을 들고 이 속에 나온 산들을 하나하나 직접 밟아보고 싶다.
<본문 속 등장하는 산>
묘코산/히우치산/야라가타케/리시리 산/시로우마다케/긴토키산/ 통가리로
일본이 아닌 산으로는 뉴질랜드의 산이 등장한다. 로토루아. 온천으로 유명한 지역이다. 북섬에 살때 엄마와 이모아 함께 여행을 했던 곳이라서 아는 곳이 있을까 하면서 더욱 집중해서 읽게 된다. 하기야 그곳에 살면서 제대로 된 산에 가보질 못했으니 그 간접적인 체험뿐이지만 이로 인해서 다시 한번 핑계거리를 만들어낸다.
뉴질랜드에 가고 싶다는 그런 이유말이다. 로토루아는 들렀지만 통가리로 국립공원은 가보지 못해서 다시 한번 가보고 싶다는 생각이 든다. 북섬은 살았던 곳이고 많이 돌아다녔지만 남섬은 스키를 좋아하지 않았기에 돌아보지 못했었다. 언젠가 남섬을 돌아오는 길에 북섬에 다시 한번 들러서 이 이야기속에 나온 산에 꼭 가보리라는 다짐을 하게 만든다. 그나저나 작가는 이곳을 가본 적이 있을까.
훌륭한 사람이라는 건 자기가 안 될 때는 제대로 머리를 숙이며 부탁할 줄 아는 사람 아니야? 형편없는 인간이라고 생각 될까봐 자기 쪽에서 먼저 밀어내는 건 잘못이야. (232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