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즈 가든 블랙 앤 화이트 시리즈 36
기리노 나쓰오 지음, 최고은 옮김 / 비채 / 2011년 10월
평점 :
절판


첫인상이 별로였던 사람이 나중에 괜찮은 사람으로 변하는 경험을 가져본 적이 있는가. 첫인상이 별로였던 작품이 있다. 두번 다시 이 작가의 작품은 보지 말아야지 하고 생각했었는데 작가의 다른 시리즈를 보게 되고는 작품을 다시 읽게 되었다. 그것이 바로 이 기리노 나쓰오라는 작가다. 적어도 내게는 그러하다.


미로야. 남의 원한은 깊이 파헤치지 마라. 남이 보기엔 사소한 일이라도 당사에게는 큰 문제인 법이다. 나중에 무슨 일을 당할지 모를 일이야.(98p)


미로시리즈의 네번째 작품인 로즈가든은 다른 작품과는 달리 단편들로 구성되어 있다. 총 네편으로 이루어진 이 단편들은 저마다 별개의 이야기를 다루고 있어서 연결되지 않는다. 모두 미로가 직접 사건을 수사하면서 발생한 이야기들이고 단 한편 첫번째 이야기만이 미로의 전남편인 히로오의 이야기를 그려내고 있다. 


이 책은 시간 순서상 첫번째 작품인 [얼굴에 흩날리는 비]와 두번째 작품인 [천사에게 버림받은 밤] 사이에 온다고 볼 수 있으며 미로라는 여자 탐정을 주인공으로 내세운 이 시리즈는 작가의 다른 작품과 마찬가지로 굉장히 묵직하고 어둡고 때로는 비참함까지도 들게 만든다. 아마도 주인공의 캐릭터가 그러하기 때문에 독자도 비슷하게 느끼게 되는 것일수도 있다. 


아버지의 직업을 물려받은 그녀는 적진에 아무 생각없이 뛰어든다. 직접 몸소 느끼고 체험해봐야 하는 캐릭터랄까. 그로 인해서 전율이 느껴지고 소스라치게 놀라버리는 것은 온전히 독자들의 몫으로 남겨두었다. '어쩔려고 그래'라는 말도 부지불식간에 튀어나온다. 그런 일련의 다른 책들에 비해서 이 작품의 이야기들은 한숨 돌리는 구간일 것 같다. 마치 롤러코스트가 떨어지기 직전에 템포를 늦추고 쉬어가듯이 말이다. 


우리는 미로라는 별을 나누는 밤과 낮이었다. (64p)


책의 제목과 같은 <로즈가든>은 미로의 전남편인 히로오가 출장을 나가는 장면이 그려지고 있다. 인도네시아의 특성상 섬이 많은 동네이고 비행기를 타고도 차를 타고도 배를 타고도 수십시간을 가야만 도착할수 있는 동네에 수리를 하러 나선 길이다. 동료 한명과 떠나는 여행 아닌 여행에서 그는 미로와 처음 만났던 고등학생 시절을 회상한다. 지금의 모습이 아닌 고등학생이었던 미로는 어떠했을까. 지금과 조금도 다르지 않은 그녀의 모습이 느겨지지만 그래도 십대스러움이 묻어나는 이야기라서 새롭다.


<표류하는 영혼>에서는 한때 누구라도 들어봄직한 엘리베이터 귀신이 대한 이야기를 수사한다. 자신이 사는 곳에서 자살사건이 일어났고 그 이후로 그녀의 귀신이 돌아다닌다는 것이다. 정말 귀신은 없겠지만 사건의 진모는 무엇이었을까.


<혼자두지 말아요>에서 미로는 두개의 별도의 사건과 엮인다. 하나는 자신이 맡은 의뢰다. 부인이 바람을 피우는 것 같다며 남자가 있는지를 알아봐달라는 의뢰다. 다른 하나는 자신이 거절한 의뢰다. 자신이 사랑하는 여자의 마음을 알아봐 달라는 것. 자신이 선물했던 강아지가 다시 팔려서 돌아온 것 같다는 것이 그 이유다. 미로는 그 의뢰는 거절해 버리고 말았지만 본디 사람의 마음을 바탕으로 한 의뢰는 비슷한 결론을 가져오는 것일지도 모른다. 


마지막 <사랑의 터널>에서는 아주 간단한 의뢰를 맡는다. 사고로 죽은 한 여대생. 알고보니 그녀는 클럽의 사장이었는데 그런 사실을 모르고 있던 아버지는 미로를 찾아와서 그녀의 집에 가서 그런 것을 알려주는 모든 증거를 없앨 것을 부탁한다. 죽은 그녀가 숨기고 있던 사실은 무엇이었을가. 그로 인해서 미로는 무엇을 알게 될까. 


사건들이 무겁지 않고 가볍고 가끔은 이런 일도 의뢰를 할까 싶은 것들도 많지만 그로 인해서 더욱 마음을 내려놓고 읽게 된다. 미로시리즈를 좋아하지만 가끔은 이렇게 쉬어가는 코너도 있어야 하지 않겠는가. 무겁지 않을 거라는 선입견이 들어서 외면하고 있었던 미로의 이야기였다. 외면하지 않고 선택하길 잘했다는 결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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