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창 전쟁 중의 수용소 이야기가 1권의
중심이었다면 우여곡절 끝에 전쟁이 끝나고 이제는 자신의 집으로 돌아간 이야기가 2권에서 그려지고 있다. 수용소의 실상을 알리고자 노력했던 카샤는
언니와 함께 수용소 탈출에 성공하고 종전으로 인해서 자신이 가고 싶은 곳을 선택할 수 있게 되었지만 그리운 집으로 돌아가기로 결정하고 온다.
셋이서 떠난 여행 아닌 여행은 둘이 되어
버렸다. 엄마없이 자매만 돌아온 집. 반갑게 맞아주던 아빠지만 엄마의 의자에는 다른 여자가 앉아버렸다. 이럴려고 돌아온 것은 아닌데 엄마의
부재가 한없이 크게만 느껴지게 된다. 어쩌겠는가. 산 사람은 살아야 하는 것을.
전세계에서 모인 포로들을 대상으로 온갖
실험을 자행하던 헤르타는 결국 재판을 받게되는 신세가 되었다. 남에게 그렇게 해꼬지를 할 때만 해도 그녀는 꿈에도 생각지 못했을 것이다. 독일이
전쟁에서 패전해서 자신들이 그렇게 재판정에 서게 될 줄은 말이다.
줄줄이 사형판결을 받고 집행당하는 것을
보면서 그녀는 두려워진다. 자신 또한 죽음을 당하게 될까봐 말이다. 실제로 자신의 손으로 누군가에게 죽음을 맞이하게 했던 것은 결코 생각지도
못했던 것일까. 누구에게나 생명은 하나뿐이고 그에 따라 죽음이 끝이라는 것을 몰랐던 것도 아닐텐데 말이다.
그녀가 재판 받는 것을 보면서 생각이 났다.
이와 비슷한 유례가 일본에도 있었음을 말이다. 일본은 731부대를 운영하면서 포로들을 잡아다 실험을 행했다. 독이 든 만두를 먹이고 얼마나
오래 사는지, 인종별로는 얼마나 다른지를 측정하는 실험을 하는가 하면 몇도에서 동상이 걸리고 나을 수 있는가를 실험하기도 하는 등 말로 할수
없는 악랄함을 보여주지 않았던가.
이 책에서 병동에 있는 사람들을
'래빗'이라고 부르는 것과 마찬가지로 사람들을
인간취급 하지 않고 '마루타'라고 부르면서 생체실험을 했었다.그런 그들은 이런 재판과정을 거쳤는가 궁금해졌다. 그 부대에 근무했었던 장교들은
전쟁이 끝난 후 어떻게 되었을까가 알고 싶어졌던 것이다. 분명 그들도 전쟁에서 파생된 권력자들이었고 악랄한 짓을 서슴없이 행했을진대 설마 모든
것을 없었던 것으로 넘기고 멀쩡하게 잘 살고 있었던 것은 아닌지 확인하고 싶어졌던 것이다.
그들
또한 헤르타처럼 재판을 받고 법에 의해서 합당한 댓가를 치뤘다면 옳은 결정이었다고 했겠지만 그냥 유아무야되었다면 그렇게 실험의 대상으로 쓰이고
죽임을 당한 사람들은 자신의 권리를 찾지 못해서 답답했을 것만 같다는 생각이 든다.
가끔
욱일승천기 때문에 기사가 뜨는 것을 본다. 일본은 전쟁을 일으켰던 나라고 모든 나라들을 서로 총겨누고 싸우게 만들었던 주범이었다. 안 죽어도
되는 인생들까지 죽음으로 몰아넣은 것이다. 그런 그들이 사용했던 그 기를 꼭 모티프로 삼아서 여러 아이템에 써야만 하는지를 묻고 싶어진다. 꼭
그것이 필요한지 말이다.물론 독일의 잘못이 더 크다 하겠지만 그 범주에서 벗어날수는 없다.
같은 시기를 다르게 보낸 세명의 여자들의 이야기. 곱디 고운 보랏빛의 표지속에는 험난하고 거친 인생이
담겨져있다. 누군들 꿈에도 생각지 못했던 이야기들이 흘러간다. 작가는 이 모든 이야기들을 사실에 입각해서 실존 인물의 이야기를 그려냈다고 했다.
물론 캐롤라인이 사랑했던 폴처럼 가공의 인물도 등장을 하지만 헤르타나 캐롤라인은 실제로 존재했던 인눌이었고 여성들만 수용했다는 그 수용소 또한
실제로 존재했던 곳이다.
작가가 현실적으로 그려낸 데는 그만큼의 자료조사와 노력이 뒷받침 되었던 이유이고 그럼으로 인해서 더욱
사실적으로 읽히고 가속도를 붙여가면서 읽을 수 있게 된다. 역사는 변하지 않는다. 그 역사를 바탕으로 우리는 살아간다. 우리는 지금 또 어떤
역사를 만들어 가고 있는가. 힘든 시간을 겪어야만 꽃을 피운다는 라일락처럼 만약 어려운 시간을 보내고 있는 사람이 있다면 언젠간 아름다운 꽃이
필거라는 위로를 건네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