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벌이란
내리는 이의 의지가 미치는 것이 아니라 받는 이의 마음가짐이 만들어내는 겁니다.(355p)
인터넷이 발달한 요즘에는 괴담들이 정말
순식간에 1초만에도 전 세계로 퍼져 버린다. 그로 인해서 멀쩡하던 사람이 죽는 결과를 만들어 내기도 하고 뜬금멊는 열애설이 퍼지기도 한다.
정치쪽에서 무슨 촉각이 곤두서는 내용이 퍼지면 연예게 쪽에서 큰 사건을 터뜨려서 실검에서 내려가게 한다는 말도 있다.
이런 모든 것이 없던 시절, 그 시절에도
분명 이야기들이 존재했을 것이고 그 이야기들은 어떻게 전달되었을까. 왜 옛날 이야기는 들어도 들어도 끝없이 생산될까. 기본 줄거리는 비슷하나
변종된 이야기들이 줄지어 드러나기도 한다. 바로 이 [항설백물어]가 그와 같은 이야기일 것이다.
[항설백물어] 자체가 여러가지 기담
이야기들인데 [속 항설백물어]가 나오더니 이제는 [후 항설백물어]가 등장을 했다. 이마저도 상권이므로 다음에 나올 후편을 기다려야만 할 것이다.
질보다 양으로 승부하는 것으로 보이는가. 각 이야기마다 촘촘한 구성으로 인해서 기담이라고는 하나 뜬금없이 귀신이 나오는 이야기가 드물고 예전의
이야기가 지금의 사건과 맞물려서 오히려 사건해결에 도움을 주는 이야기들이다. 더욱 관심도가 증가할 수밖에 없는 이야기다.
전편을 좋아했던 사람이라면 그 무렵 각
지방에 떠도는 기담과 이야기를 모으고 다니는 것이 유일한 낙이었지만 이제는 늙어버린 모모스케의 모습이 반가우면서도 조금은 안타까울수도 있겠고
노인이 되어버린 모습이 한숨이 나올 수도 있겠지만 그러할지라도 뒷방 늙은이가 아닌 젊은이들에게 도움이 되는 존재로써 굳건히 한 자리를 차지하고
있으니 그렇게 아쉬운 느낌을 갖지 않아도 좋겠다.
이야기를 들려주는 존재의 모모스케 뿐 아니라
이야기 속의 직접 실행자인 마타이치 모습도 보이고 있어서 전작의 주인공들을 그대로 다 만나는 즐거움이 존재하며 과거의 이들과 현재의 젊은이
4인방을 연결시켜 보는 재미도 쏠쏠하다. 한창 서양문물이 들어오는 시기에 서양에 다녀오기도 하고 양복을 즐겨입는 쇼마, 경찰들에게 검술을
가르치며 도장을 하는 소베, 무역회사에서 일을 하는 괴짜 요지로 그리고 마지막으로 경찰업무를 보고 있는 겐노신이 그들이다.
저마다 특색있는 젊은이들 4명이 모여서
한담을 나누는 장면은 흡사 [성균관 유생들의 나날]에서 나왔던 윤희를 포함한 흔히 말했던 잘금 4인방과도 비교를 할 수 있을 것이다. 그들이
공부를 하면서 자신들의 주위에 벌어지던 일들을 해결했다고 하면 일본에서는 겐노신이 주로 사건을 물어오고 그것을 자신들이 보았던 들었던 이야기들을
이야기하며 진상을 밝혀내는 내용으로 구성되어 있다.
어디서 들었던 이상한 이야기들은 자세히
설명이 되지 않는 겨우가 많다. 돌연 폭풍이 불어오더니 무슨무슨 분묘가
큰소리를 내며 움직이고 천공에 용이 나타나...... 이 모든 것은 어디어디 산에 있는 아무개 신이 노한 까닭이라. (315p) 이런식으로 일어나는 일들이 전해져서 후대 사람들이 알게
되는 것 자체가 신기한 일이다. 정확하게 어디 사는 누구라고 이름이 주어지지 않는 경우도 많고 어떤 일이 있었다는 것도 명확히 밝혀지지 않는다.
그렇다 하더라도 이야기들이 전해져 내려온다라는 사실이 신기할 뿐이다.
뱀은
상자 속에서 몇 십 년 씩 살거나 하지 않는다.
즉 상자
속에는 없었다.
하지만
살인은 아니다.
(359p)
이야기들은 사뭇 논리적이기까지 하다. 뱀에
물려 죽은 한명의 젊은이. 대낮이었고 누군가 뱀을 숨겼다가 그를 죽인것도 아니고 분명 목을 물려서 죽었고 그것을 목격한 사람들도 여럿 있다.
그렇다면 당연히 뱀에 물려 죽었다고 해야겠지만 한 사람만 들어갈 수 있을 정도로 좁은 사당, 그 한복판에 둟린 돌로 된 상자안에는 오래전 전설예
따라 뱀이 들어있다고 하는데 뱀이 아무리 오래 살아도 70년 이상은 살지 못할터이니 그때의 뱀은 들어있지 않을 것이 뻔하다.
그러함에도 죽은 시체가 나왔다는 것은 그곳에
뱀이 있다는 것인데 이 사건을 어떻게 이해해야 하는 것인가. 그저 단순히 뱀에 물려서 죽은 시체가 한구 나왔다 하고 넘겨버리기에는 너무나
꺼림직하다. 4인방은 다시금 모모스케를 찾아와서 옛날 이야기를 들으면서 지혜를 구하게 된다. 죽은 젊은이의 아버지 그리고 할아버지 대에는 무슨
일이 일어났었으며 그 모든 사건들이 오늘날의 이 일과 어떤 연관성이 있는 것인가.
기담은 그저 만들어 낸 이야기가 아니라
사건을 바탕으로 하고 있다. 현실적이라는 소리다. 또한 하늘의 벌 또는 땅의 벌이라 여기는 지벌 또한 그저 단순히 어떤 신이 노해서 내리는 것이
아니라 결국은 인간에 의해서 만들어지는 것이라는 것을 적나라하게 드러내주고 있다. 전국 방방곡곡의 기묘한 이야기들은 어떻게 보면 지금의 사건들과
맞물려 있다. 어느쪽이 원인이 되든 연결되어 있는 셈이다.
<붉은 가오리>를
비롯해서 <하늘불>과 <상처 입은 뱀>까지 세 편의 이야기가 실린 상권. 출판사 카페에는 이 책의 출판을 기다리는
사람들의 문의글이 항상 존재했다. 그때는 몰랐다. 왜 그토록 이 책의 출간을 기다렸는지. [속 항설백물어]를 읽었어도 그 다음이야기가
존재할까라는 생각이 들었지만 이제는, 아니 이제야말로 그들의 심정을 아주 잘 이해하고도 남음이 있다. 나 또한 물어보고 싶어졌으니 말이다. 이
책, [후 항설백물어]의 다음이야기는 언제 나오냐고 말이다. 옛날 이야기에는 사람을 끌어당기는 마력이 존재하는
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