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가의 실제상황을 배경으로 한 자전적인
이야기는 시작부터 조금씩 마음속 한 가운데 발열점을 가지게 만들더니 이 아이가 학교에 들어가면서 약간씩 뽀글거리던 기운이 본격적으로 부글거리며
분과 열기를 뿜어내게 된다. 그 열기는 더욱 거세져서 주인공이 중학교에 들어갈 무렵이 되면 제 정신으로 이 글을 보아줄 수가 없을 지경이다.
이것이 비단 상상이 아니라 현실이라는 사실이
더욱 화가 난다. 아니 그것은 너무 고운 말로 포장되었다. 단순히 화가 난다는 것으로는 표현할 수가 없다. 만화로 그렸을때 머리를
100톤 정도의 망치로 '띵'하고 얻어맞은 그런 멍함과 더불어 폭탄이 폭발할 정도의 위력을 가진
분이 표현되어야만 할 것 같다. 그만큼 화가 나는 상황들이 존재한다.
작가가 성장을 하면서 만나게 된 네 명의
선생. 초등학교에서 처음으로 만났던 여자선생은 모든 아이가 다 비슷할 것이라고 생각했지 니트로와 같은 아이가 존재할 것이라고는 생각도 하지
못했음에 틀림없다. 그래서 아이가 자신이 가르치는대로 따라주지 않자 화를 내고 이해를 하지 못했다. 결국 나중에 전근을 가고 새로 남자선생이
오게된다.
이 선생은 여선생보다 더욱 심했다. 주의를
주면 숙제를 할 것이라고 생각했지만 니트로가 그렇게 하지 않았을때 폭력으로 대했다. 그래봐야 아직 열살 정도의 아이일 뿐인데 그 아이를 때린다고
그 아이가 알아들을 것이라고 생각했을까. 아이가 다른 아이들과 다르다면 이 아이가 왜 그런지를 부모에게 물어볼 생각은 하지 않았을까.
아니 부모도 그 아이가 어떻다는 것을
몰랐다니 물어봐야 소용은 없었겠지만 선생이 먼저 나서서 다른 아이들과 다른 점을 부모와 같이 의논할 수는 없었으려나. 만약 그랬다면 니트로의
중학 생활은 조금더 나았을 수도 있을텐데 그 점이 답답하다. 단지 때리는 것이 모든 것을 다스리는 방법은 아닌데 말이다.
하나 더, 다른 사람들의 눈치를 보면서
자신보다 약자라고 생각하는 니트로에게만 그랬다는 것이 더욱 화가 난다. 선생은 그저 단순한 인간이 아니라 한 아이의 인격을 결정하는 사람인데도
불구하고 이런 선생이 존재한다는 것 자체가 어불성설이다. 하지만 그것이 다가 아니었으니 본격적인 사건은 중학생이 되면서부터다.
엄마도 니트로를 숙제를 하게 시켜도 보았고
공부를 가르쳐 주기도 했지만 이 아이가 무엇을 알겠는가. 그저 자기가 만들어 놓은 규칙대로 생활하고 일어나 서 밥을 먹고 학교를 갔을 뿐이다.
자신이 이해되는 것만 알아듣고 그 외에는 자신의 뜻대로만 하고 집중력도 높지 않아서 수업에 방해도 된다. 그런 것들을 부모는 알면서도 모르는 척
했던 것일까 아니면 이것이 '장애'라는 것을 몰랐던 것일까.
별달리 아무런 교정 없이 중학교에 가게 된
니트로. 겉으로는 모습이 변했을지라도 속으로는 초등학생 때나 별 다른 차이가 없다. 다른 학생들은 자신들끼리 어울려 다니는 친구도 있고 공부도
하곤 했지만 니트로에게는 하루하루가 그저 지날 뿐이다.
이 학교에서도 역시나 아이를 이해하지 못하는
선생이 등장을 한다. 초등학교때 선생의 폭행으로 인해서 고막까지 터졌던 니트로. 너무나도 죽고 싶어서 별별 방법을 다 찾아봤지만 막판에 다른
것에 정신이 팔려서 결국은 죽지도 못했던 니트로. 이 아이에게 폭력을 행하는 것은 물론이거니와 이번에는 성추행까지도 추가되었다.
이런 개만도 못한 인간을 선생이라고 불러줘야
한다는 것조차 역겹다. 물론 모든 선생이 다 그렇다고 할 수는 없지만 사회면에서도 심심치 않게 등장을 하는 기사들이 선생이 저지르는 일인 것을
보면 비단 일본 뿐 아니라 한국도 선생의 비인격적인 부분에서 예외가 될 수 없겠다라는 생각이다.
만화속에서는 남자선생이지만 실상은 남녀를
가리지 않는다. 책 속에서는 성추행에서 그치지만 현실은 성관계 또한 이어지는데 이런 상황에서 선생들의 대답이 더 가당치도 않다. 사랑해서
그랬다나. 이런 xxx같은 인간들 같으니라고. 자신의 아이들이라고 생각해서도 그런 대답이 나왔을까.
그래도 니트로에게는 한 명의 좋은 선생이
있었다. 신은 가장 좋은 것을 가장 나중에 주신다고 했던가. 학년이 바뀌고 죽이고 싶기까지 한, 진정한 살의를
느겼던 선생이 바뀌었다. 다시 남자선생. 니트로는 공포감을 느꼈음에 틀림없다. 남자와 한 공간에 있는 것만으로도 부들부들 떨면서 식은땀을 흘렸던
아이다. 그러나 새로운 선생은 니트로를 이해해주고 아이만의 특기를 찾아주었고 그 점을
살려서 학교생활을 할 수 있도록 격려를 해주고 용기를 붇돋아주었다.
등장하는 네명의 선생들 모두 니트로의 병명은 몰랐을 것이다. 단순히 그 아이만의 행동과 말하는 것을
보고 자신의 기준대로 판단을 했을 것이다. 그럴지라도 저마다 다른 결과를 낳은 것을 본다면 과연 선생이라면 어떻게 행동해야 할지 정답은 정해져
있는 것이 아닌가.
교권이 땅에 떨어졌다는 소리가 나온지도 오래 전이다. 선생의 그림자도 밟지 않던 그런 시대는
지났음에 틀림없지만 자업자득이라는 말도 있듯이 모든 것이 다 그들이 그렇게 행동을 한 결과가 나타난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도 든다. 물론
미꾸라지 한마리가 흙탕물을 만들듯이 극히 몇명의 일부 교사들의 그런 행동으로 인해서 물의를 빚고 단체로 욕을 먹는다는 소리를 할 수도 있다. 그
말이 맞다 하더라도 조금은 더 선생이라면, 교사라면 학생들을 세심하게 보아줄 수는 없는 것인가 하고 생각하게 된다. 적어도 공교육 교사는
그래야만 한다고 생각하게 된다. 성적이나 점수에만 신경을 쓰는 사교육 강사들과는 달라야 하는 것이 아닌가.
선생으로 인해서 죽고 싶다는 생각을 하게 되고 선생을 죽이고 싶다는 생각을 하게 된 아이가 어디
니트로 뿐일까. 이 아이가 마지막에 좋은 선생을 만나서 정말 다행이다. 또한 장애를 가지고 있다고 해서 차별받지 않고 다른 사람과 동일하게 한
인격체로써 대접받고 있기를 바라고 또 바라게 된다. 작가로써 그녀만의 커리어가 더욱 단단히 다져질 수 있기를.
당신, 안 죽어서 다행이고, 안 죽여서 다행이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