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벨맨 앤드 블랙
다이앤 세터필드 지음, 이진 옮김 / 비채 / 2018년 10월
평점 :
절판
'마음을 홀린 이야기꾼'이라는 명성을 얻은 다이앤 세터필드의 데뷔작 [열세번째 이야기]는 베스트셀러에 오르고 드라마로 방송이 되는 등 많은 사람들의 인기를 받았다. 그런만큼 당연히 이번 작품도 기대를 안고 시작된다.
이야기는 끊임없이 흐르는 시냇물처럼 졸졸졸 소리를 내며 잘도 흘러간다. 바람이 불어도, 추위가 몰아닥쳐서 주위 환경이 변할지라도 상관없이 작은 소리를 내면서 흘러간다. 이야기의 힘을 제대로 보여준다. 또한 중간중간 '떼까마귀'라는 요소를 삽입하고 '블랙'이라는 미스터리한 인물을 추가함으로서 사람들의 이목을 끌어낸다. 집중도를 높인다. 어디 다른 곳으로 한 눈 팔 새가 없이 만들어 버린다. 작가의 힘이다.
수세기에 걸쳐 축적된 경험 때문에 떼까마귀는 거칠다. 그는 억수 같은 비와 폭풍을 가르며 날아 다닌다. 번개와 춤추고 천둥이 치면 가장 먼저 설치고 돌아다닌다. 산소가 희박한 산꼭대기 하늘로 기쁘게 날아 오르고 세상의 시름 없이 사막을 가른다. (94p)
벨맨 & 톰소여
오두막 옆 참나무 숲에 한때 떼가마귀들 있었다고, 잠에 빠져들며 그는 생각했다. 어린 시절 내내 떼까마귀 울음소리가 그를 깨웠다. 오늘 아침 물레바퀴 근처에서 보았던 오래된 둥지들을 겨우내 볼 수 있엇다. 그러나 지금은 보이지 않았다. 완전히 사라져버렸다.(111p)
벨맨은 어린 시절 친구들과 어울려 놀았다. 톰소여처럼 장난도 치고 다녔다. 그가 어린 시절 새총으로 맞추었던 까마귀. 너무나도 멀리 있는 것처럼 보였가에 친구들도 다들 허세라고 생각하며 맞출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도 하지 않았지만 그는 그 새를 맞춰버렸다. 새총으로 맞고 떨어진 까마귀. 그는 그 새가 평생을 자신을 좇아다닐 줄 상상도 못했으리라.
벨맨& 록펠러
울이 베틀의 북에 끌려 들어가듯이 윌리엄도 일에 끌려갔다.
기계의 부품처럼, 강물의 힘으로 돌아가는 바퀴처럼, 그는 필요한 일을 했다. (89p)
사람이 돈을 좇는게 아니라 돈이 사람을 좇도록 해야 한다고 했던가. 그는 승승장구하는 삶을 살았다. 자신의 길을 정하고 그 밑에서 일을 배우고 추진하고 모두 성공만 하고 살았다. 그의 인생에서 일을 뺀다면 아마 남는 것은 아무것도 없었을 것이다. 그만큼 하루 이십사 시간을 모두 일만 하며 살았다고 해도 무방할 것이다. 그에게 가족이라는 존재가 있지 않았다면 말이다.
벨맨이 투자하면 그 투자의 안정성이 확실해졌고, 그의 돈이 가는 곳에는 벨맨의 사업감각과 감시의 눈도 따라갔다. 그가 투자하는 곳은 은행도 자본을 움직였으며, 그와 나란히 투자했고, 그 수입으로 이득을 보았다. (342 p)
벨맨 & 욥
하나님은 한사람에게 모든 것을 다 주시지 않는다고 했던가. 영원히 행복한 일만 가득할 것 같은 그의 인생에 그림자를 드리운 것은 바로 열병이라는 존재였다. 자신의 가족이 풍지박산 나는데는 그렇게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자신이 그토록 사랑하던 아이들이 하나둘 병으로 세상을 등졌다.
성경의 욥도 마찬가지였다. 그렇게 많던 아이들이, 자식들이 하나둘씩 죽을 때 그는 무엇이라 외쳤던가. 무엇이라 하나님께 말을 했던가. 벨맨은 죽을 힘을 다해서 자신의 가정을 지키려고, 아이들과 아내를 지키려고 노력했지만 운명은 자신의 원대로 되지는 않는 법이다. 안타깝게도 말이다.
벨맨이라는 사람의 어린 시절부터 청년기를 지나서 장년기 그리고 죽음에 이르기까지를 그린 장편. 그의 인생을 따라가며 소소한 이야기들을 그리고 있다. 어찌보면 살짝 지루할 것도 같은 이야기지만 쉴새없이 몰아치는 주인공의 추진력으로 인해서 쉴 틈을 주지 않고 그에 비례해서 필요한 인물들을 추가로 투입함으로써 긴장감을 잃지 않도록 조성하고 있다.
'블랙'이라는 미스터리한 인물을 배경에 깔아두어서 미스터리함을 더한 것은 탁월한 선택이다. 벨맨과 블랙. 아름다운 대서사시. 이쯤되면 작가의 다음 이야기는 어떤 느낌으로 다가올지 예상할 수도 없다. 하지만 분명 그 이야기는 읽을 가치가 충분하리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