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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사에게 버림받은 밤 ㅣ 블랙 앤 화이트 시리즈 29
기리노 나쓰오 지음, 최고은 옮김 / 비채 / 2011년 5월
평점 :
절판
의뢰인을 죽게 해선 안된다. 그건 탐정에게 치욕이야. (286p)
이 감성 넘치는 제목은 죽음을 맞이한 한물 간 가수의 노래 제목이었다. 그냥 인간에게 버림 받는 것도 서러운데 천사에게서 버림을 받다니 그것도 '밤'이라는 시간적 공간은 더욱 처량하게 만들어 버린다. 누가 천사이며 그 천사는 누구를 버렸는가.
기리노 나쓰오를 다시 보게 만든 작품, 미로 시리즈. 그녀의 아버지 이야기를 그린 [물의 잠 재의 꿈]을 먼저 읽었다. 그로 인해서 미로시리즈를 알았고 어두움의 극치라는 가장 마지막 이야기 [다크]를 읽었다. 이 새로운 주인공에 관심이 생겼다. 첫번째 작품 [얼굴에 흩날리는 비]에 이은 두번째 이야기인 이 작품은 마지막 작품과 비교해서 의외로 밝은 느낌을 준다. 주인공의 미로의 특성상 절대 밝지마는 않은 이야기임에도 불구하고 아직은 미로의 캐릭터 자체가 미친듯이 극으로 치달리지는 않는다는 소리다. 시리즈는 연결되면서 주인공의 변화를 읽는 재미 또한 준다. 시리즈를 차례대로 읽어야하는 이유다.
Av 여배우 리나. 그녀를 찾아야 하는 것이 미로의 일이다. 어떻게 보면 굉장히 간단한 일일 것 같다. 살인사건이 일어나거나 누구를 죽여야 한다거나 하는 의뢰가 아닌 이상은 조금은 안심이 되지 않는가. 그녀가 찍은 작품은 단 한 작품이다. 울트라 레이프. 그 영상 속에서 그녀는 의도 치 않게 강간을 당하는 장면을 찍힌듯이 보인다는 것이 주요 요지이고 '생각하는 모임'의 대표인 의뢰자 와타나베는 그녀를 찾아서 직접 신고를 함으로써 여자들의 인권을 보호하겠다는 것이다. 강간죄가 친고죄인만큼 직접 피해자가 신고를 해야 하는 것이고 그것을 위해서 그녀를 찾아야 하는 것이다. 그녀는 대체 어디로 숨어버린 것인가.
본문에서도 언급되듯이 자신이 원하는 일을 한 것뿐이다라고 말해버린다면 더이상 진전은 없다. 자신의 직업으로 인해서 그러한 일을 해야 하는 것은 당연한 일이지만 사전에 계약된 것보다 더 나아간다면 그것은 문제가 되는 일 아닌가. 어디까지라고 합의한 사항에서 만족해야 하는 것인데 때로는 감독의 의도대로 또는 상업적으로더 팔릴 것을 예상하고 더 자극적인 것을 좇는다면 그것은 피해자가 발생하는 문제가 되는 것이다. 이 모든 사항을 진행시키기 위해서는 그녀, 리나가 절대적으로 필요하다. 미로는 의뢰를 승낙하고 그녀를 찾아 나서게 되는데 어디서부터 어떻게 시작해야 할까.
전작에서 옆집에 살던 필리핀 친구들은 사라졌다. 마지막 이야기에서 도움을 주던 도모씨와의 관계는 여기서부터 시작이다. 다른 작품에서 나왔던 캐릭터를 찾아보는 것도 역시 시리즈를 읽는 재미다. 주인공은 같으나 사건은 달라지고 시간적 배경이 달라짐에 따라서 주위의 사람들도 바뀌고 장소도 바뀐다. 비교하는 재미를 찾아볼 수 있는 것이 시리즈다.
단독으로 일을 처리하는 것은 아버지의 영향이다. 늘 혼자서 일을 하면서 적절하게 도움을 구하던 프로인 아버지에 비해서 아직 미로의 탐정으로써의 역할은 조금 부족한 면이 보인다. 아쉬운 점도 있다. 그런 면을 보충이라도 하듯이 중간쯤에 아버지가 투입된다. 적절한 상황에서 미로에게 손을 빌려주고 흔적없이 사라진다. 이 아버지의 캐릭터가 멋졌기에 그를 주인공으로 한 작품이 탄생하게 되지 않았을까. 작가는 이미 무라노 젠조를 주인공으로 한 작품을 계획하고 있었는지도 모른다.
한국의 에로배우 시장은 어떤지 모르겠다. 한때는 빨간딱지를 붙여서 미성년자들은 보지 못하게 했던 비디오를 빌려주는 곳도 많았었는데 인터넷의 발달로 쉽게 그러한 문화를 접하게 된 이후로 이 시장도 많이 사라졌다. 하지만 인터넷에 올리는 것도 누군가는 찍어야만 올릴 수 있지 않은가. 즉 아직도 이 시장은 활성화되어 있다는 소리다.
한국에서는 조금 음성적으로 활동하는 이들은 일본에서는 조금은 더 드러내고 활동을 한다. 성에 대해서 한국보다는 더 개방적인 일본이다. 그런만큼 그런 시장을 소재로 한 이야기들도 더 많은 편이다. 영화시장이 가장 활성화되어있는 미국에서는 노출신이 있을 경우 어느부분까지 얼마나 노출을 할 것인지에 대한 것을 미리 합의하고 합의서를 꼼꼼히 작성해서 딱 그만큼만 찍는다고 한다. 일본에서는 어떨까. 그들도 물론 합의사항이 존재하겠지만 이 책에서 나오는 것 같은 일이 벌어지지 않능으라고 장담을 할 수는 없는 일 아니던가.
늘 현실은 허구보다 훨씬 잔혹하고, 믿을 수 없는 일이 벌어지잖아. (161p)
본문에서도 나오 는바 현실은 허구보다도 훨씬 더 잔혹할 뿐 아니라 잔인하기까지 하다. 허구는 그저 만들어 낸 것으로 치부하고 넘어가버릴 수 있지만 현실은 우리가 직면해야만 하고 우리가 살아가야만 하는 사회이기 때문이다. 끝까지 어둡기만 했던 미로의 새로운 모습을 발견할 수 있어서 더욱 흥미로운 이야기이다. 미로 이야기가 다크로 끝이 아니길 바라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