애써 나눠준 음식을 끊임없이 바닥에 흘리고, 때와 장소를 가리지 않고 오줌을 지려대고 그 뒤처리를 해야 하는 사람의 비참함을 당신이 아느냐는 말이야.(180p)
- 직업 윤리가 결여된 사회복자사의 푸념이다. 절규로도 들릴 수 있겠지만 그럴 줄 몰랐던가. 요양원 노인들이 그럴 것이라는 생각은 당연한 사실 아니었던가. 노인들을 학대하느니 다른 직업을 찾는게 제대로 된 생각 아닐까. 이런 답답함은 비단 일본 뿐 아니라 우리나라에도 그대로 있다.노인 학대가 새로운 문제거리로 부상 중이다.
1. 구명 조끼가 모자라
작가는 필시 우리나라의 세월호 사건을 들어서 알고 있음이 분명하다. 첫 장을 넘기는 순간, 펼쳐지는 이야기를 본 순간, 한 남자가 구명조끼가 승선한 사람 수보다 모자라는 것을 알아차리고 조끼를 찾아서 여기저기를 헤매는 순간, 이 모든 사태를 처리해야 할 선장 및 승무원이 벌써 배를 달아났다는 것을 알아채는 순간. 이 모든 것을 알아 낸 순간마다 세월호가 생각이 났다. 물론 탄 사람들도 저마다 다르고 이야기의 전개방향은 전혀 다르지만 말이다.
조끼를 찾아서 여기저기 헤매던 남자는 어찌 되었을까. 타이타닉의 잭이 아닌 다음에야 이 위급한 순간에 자신의 구명조끼를 벗어서 주는 사람은 결코 없을 것이다. 사람은 누구보다도 이기적인 동물이 아니었던가. 위급한 순간에서는 더욱 그러할 것이다.
이 남자. 조끼를 찾지 못하자 이제 직접 공격에 나선다. 자신보다 약해보이는 사람, 한 여자가 눈에 띈다. 그 여자에게로 가서 조끼를 잡는다. 여자도 자신의 목숨과 직결되어 있는 터라 순순히 뺏기지는 않는다. 결국 폭력사태가 일어난다. 아무리 해도 여자가 남자를 이기기는 힘든 법. 결국 남자는 조끼를 빼앗았고 여자는 빼앗겼다.
이 경우 이 남자에게 폭행죄를 물을 수 있을까? 아니 여자가 이로 인해 죽었다면 이 남자에게 살인죄를 물을 수 있을까? 법의 기준은 어디까지일까.
2. 은혜와 원수
미코시바 레이지 변호사 시리즈 세번째인 이 책은 [은수의 레퀴엠]이라는 제목으로 돌아왔다. 레퀴엠. 진혼곡. 죽은 이의 영을 달래기 위한 노래이다. 모차르트의 레퀴엠은 이 글의 전면에서 흐른다. 레퀴엠이 들려지는 곳, 두 곳을 찾아서 하나의 선으로 연결한다면 당신은 작가가 꼭꼭 숨겨두었던 인물들간의 관계를 좀더 일찍 눈치챌 지도 모른다.
얼핏 한국 사람의 이름처럼 들리는 제목의 '은수'라는 단어는 은혜 은, 원수 수, 즉 은혜로운 인물과 원수의 진혼곡인 셈이다. 서로 상극인 두 단어. 은혜와 원수. 본문 상에서는 어떤 은혜로운 사람과 원수가 상반되고 있을까.
3. 내가 범인이요
높은 승률을 자랑하는 미코시바 변호사이지만 사람들이 소문은 감당하기 어려웠다. '시체배달부'로 불리는 자신의 별명만 보아도 알수 있지 않은가. 어린 시절 사람을 죽였고 그로 인해 소년원에 있었고 하지만 새로운 인생을 살고 있는 그다. 그러나 사람들의 소문은 때로는 치명타를 주기도 한다. 그는 조금 더 월세가 싼 곳으로 사무실을 옮겨야만 했다.
그런 그를 걱정해 사무원이 건네준 신문 상에서 접하게 되는 하나의 사건. 요양원에서 휠체어 신세를 지는 노인이 사회복지사를 죽였다는 것이다. 거기다가 이미 자백은 다 하고 살인도 인정한 상태라니. 그냥 넘어갈 수도 있었겠지만 알고보니 그는 자신이 소년원에 있었을 때 자신에게 도움을 주었던 교관이 아닌가.
자신에게 넘겨주지 않으려는 사건을 물불 가리지 않고 빼앗아 온 그는 이제 자신을 구해주었던 은사에게 은혜를 갚을 기회를 잡았다. 그는 과연 이 사건을 무죄로 돌릴 수 있을까. 이미 자백으로 기결된 사건을 돌리기란 쉽지 않아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