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들면 더 매워
정승훈 / 베드로서원 / 1997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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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을 지은이로부터 증정을 받을 때 나는 가능한 한 서평를 써서 내가 운영하는 카페나 블로그 아니면 인터넷신문 등에 올리고 있다. 이것이 선물로 받은 책에 대한 최소한의 예의라고 되는 듯. 이럴 땐 서평 그 자체가 목적이 아니라 받은 책을 꼼꼼히 읽었다는 한 증표가 되는 것이다.  

 

벌써 4년이 지났다. 어느 목회자 세미나에서 정승훈 목사로부터 책을 한 권 선물로 받았다. 본인이 직접 쓴 책이라고 했다. 연륜이 그렇게 높지 않은 젊은 축에 속하는 목회자가 저서를 가지고 있는 것도 놀라운 일이지만, 이미 10 여 년 전에 출판되어 서점에서는 절판된 책이라는 것이다.

 

그는 조금은 쑥스러운 듯, 한 권 남은 책을 내게 주고 싶다며 슬며시 내 밀었다. 그는 책을 전하면서도 죄송하다며 한 권 남은 책 속지에 낙서가 되어 있어서 그 부분을 찢어 없앴다고 했다. 아닌 게 아니라 하얀 두 장의 속지 중 안 장이 없어졌다. 찢겨나간 흔적만 남긴 채.

 

정 목사는 지은이로서 나에게 주는 말도 잊지 않았다. 남은 속지엔 이렇게 쓰여 있었다.

 

"이명재 목사님께 기쁜 마음으로 드립니다. 하나님의 은혜로 날마다 평안하시길... . 정승훈"

 

정 목사를 볼 때마다 그가 재주꾼 중의 재주꾼이란 생각을 하게 된다. 그는 손으로 하는 것은 무엇이든 전문가 수준의 기량을 갖고 있다. 그가 손으로 기타를 치면서 찬양을 인도할 때 은혜 받고, 그림으로 생각을 표현할 때도 웬만한 카툰 작가는 저리 가라이다. 또 그가 쓰는 글씨는 독특한 필체여서 주위에서 '승훈체'로 상표 등록을 하라고 채근까지 받는다고 한다.

 

목회자 세미나 훈련 과정의 하나로 미얀마에 단기 선교를 갔을 때엔 이런 일도 있었다. 한 공회당에 아이들을 모아놓고 복음을 전할 기회가 있었다. 어느 나라 아이들이든 마찬가지지만 그곳에서도 아이들이 예배에 임하는 자세는 극히 소극적이었다. 그런데 예배가 끝나고 공회당 입구에서 정 목사가 풍선에 그려주는 자리에서는 판이했다. 그림에 매료되어 줄을 서서 기다리고 있다가 풍선 하나씩을 받아가는 아이들의 모습이 무척 인상적이었다. 정 목사의 손은 무엇이든 만들어낼 수 있는 ‘미다스의 손’이란 생각을 그즈음 했을 정도이다.

 

4 년 전 그로부터 책을 선물로 받고 서재 한 쪽에 꽂아 두었었다. 그 뒤 몇 번이나 이 책에 대한 서평을 쓰기 위해서 찾았지만 찾을 수가 없었다. 꽂아 두었을 법한 곳엔 다 뒤져 보았으나 찾는 데 실패한 것이다. 그러다가 얼마 전 집안 대청소를 하다가 거실 책장 맨 밑에 숨어 있는 이 책을 발견하고 다시 한 번 정독을 했다. 읽을수록 그의 생각에 다가서는 느낌이 들었다.

 

이 책의 제목은 <건들면 더 매워>이다. 부제가 '풋내기 목사의 아름다운 사람 이야기'로 되어 있고, 기독교 전문 출판사인 베드로서원에서 1997년에 초판을, 그리고 그 이듬해 2쇄를 찍었으니 지금으로부터 15년 전의 책이다. 부제로 내용의 일단을 밝히고 있는 것과 같이 이 책은 목사 안수 3년 차의 풋내기 목사가 쓴 사람 이야기이다. 나는 책을 읽으면서 소재는 사람이지만 내용은 사랑이라고 생각했다. 그렇다면 '사람 이야기'인 동시에 '사랑 이야기'가 되는 셈이다.

 

이 책에 올린 글들은 예외 없이 단문(短文)에 속한다. 문학 장르에 꽁트(conte)라는 것이 있는데, 이것은 짧은 글 속에 지혜와 사랑을 주제로 한 위트를 주로 담는다. 우리가 번역하기는 '손바닥 장(掌)'자를 써서 '장편(掌篇)'이라고 하는 글이 여기에 속하는데, 손바닥 만한 분량에 전하고자 하는 바를 담는 일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그러나 정 목사는 처음 글에서 마지막 글에 이르기까지 이 장르의 양적 질적 원칙을 잘 지키고 있다.

 

이 책에 올려진 글들은 대부분 그가 한 교회의 ‘새 가족부’를 담당할 때 쓴 글들이다. 새로 온 가족들에게 하나님을 쉽고도 다정하게 소개하기 위해 Tm여진 글들이다. 하지만 새 가족들보다는 기존 성도들 사이에 더 많이 읽혔다며 미안해하고 있다. 내가 글을 찬찬히 읽어본 느낌은 이 글들을 새 가족들에게만 독자층을 제한하기에는 아까운 글이라는 점이다. 글들이 깊이가 있어 생각할 거리들을 많이 제공해 주었다.

 

200쪽이 채 안 되는 책 속에 8부 총 82편의 글로 엮여진 책이다. 각 부마다 특징을 말한다면 1부 ‘놀이터’는 글쓴이의 유소년기 추억담이다. 서민의 아들로서 건강하게 자라온 과정이 가감 없이 진술되어 있어 친근감이 간다. 초등학교 시절 누구나 겪었을 이야기들을 그냥 지나치지 않고 저자는 따뜻하고 사랑스런 마음을 보태 서술하고 있다. 땅 따먹기, 자치기, 단방구, 말 타기 등은 실로 오랜만에 들어본 아이적 일상어이다.

 

2부 ‘삼송리’는 지은이 가족에 얽힌 애환(哀歡) 이야기이다. 서울의 외곽에 자리잡고 있는 삼송리는 미군부대가 있어서 양색시(?) 등 미군들을 바라보며 사는 사람들이 많은 곳이었다. 또 서울 생활에서 실패해서 떠밀려올 수밖에 없는 사람들이 재기를 노리는 곳이기도 했다. 이런 곳에서 일찍 남편을 잃은 홍 권사님은 자녀들과 살아가기 위해 온갖 고생을 마다하지 않는다. 믿음 위에서의 치열한 삶이 얼마나 아름다울 수 있는지를 권사님은 보여주고 있다. 이 홍 권사님은 지은이의 어머니이다.

 

지은이의 가족사랑은 남다르다. 늘 마음 아파하는 사람이 형이다. 형은 지능지수가 높고 공부밖에 몰랐다고 한다. 그 형이 성인이 될 즈음 정신분열증에 걸려 병원을 드나들었다. 지은이는 이런 정신적 질환을 개인 차원에서 재단하지 않고 목적 없이 치닫는 '현대 사회'의 희생양들로 보고 있다. 하지만 꼭 나아 정상으로 돌아올 것을 확신하고 있다. 이런 이야기는 가정의 애사(哀事)에 속할 것이다. 감추고 싶은 부분을 솔직하게 드러내며 자신의 아픔을 고백하는 것은 아무나 할 수 있는 일이 아니다. 순수하고 진실한 사람만이 밝힐 수 있는 용기가 될 것이다.

 

3부 ‘풋내기 목사’는 목사 초년생으로서의 에피소드이다. 그냥 듣고 지나칠 일과성 에피소드가 아니라 하나님의 사랑을 느낄 수 있고 글쓴이의 진솔함을 읽고 웃음 지을 수 있는 그런 글들의 모음이다. 4부 ‘웃는 얼굴’은 짧은 글 안에서 역설의 미학을 맛볼 수 있는 글들로 채워져 있다. 목회자는 가능한 한 성스러운 말과 거룩한 행동 쪽으로 기우는 삶을 살려고 한다. 또 이런 삶이 목회자의 바른 자세로 인식되기 십상이다. 하지만 정 목사는 그것보다 진실한 마음과 따뜻한 태도에 방점을 두고 글들을 이어가고 있다. 풋내기 목사에게서 우러나는 풋풋함이 독자를 상쾌하게 만든다.

 

5부 ‘혼자 떠들기’와 6부 ‘무릎치기’에서는 글쓴이의 삶의 도량과 목회의 방향을 읽을 수 있어 좋다. 개인의 구원이 소중하되 사회를 외면하지 않으며, 믿음 생활에 있어서의 '축복'의 의미를 간과하지 않되 역사 속의 한 인간으로서 자세의 중요성을 그냥 지나치지 않는 예민함을 보여 주고 있다. 또 큰 것 만능주의가 판을 치는 세상에 작은 것의 고귀함('저들이 굶고 있다', '7천 원')을 강조하고 있다. 사회 불의에 대해 그는 글로 발언하고 있으며('어린이날을 없애라', '뒷돈 공화국' 등) 성경 이외의 현대 교양인으로서의 기본적 소양을 든든하게 확보하고 있다는 것도 반가운 일이다('얼꼴', '새마을 노래' 등).

 

이 책의 부제로 단 것이 '풋내기 목사의 아름다운 사람 이야기'라고 했다. 이 부제를 탄탄하게 뒷받침해주는 글들이 7부 ‘아름다운 사람 이야기’이다. 그가 겪은 일화 중 드러내고 싶은 사람들을 실명으로 칭찬하고 있다. 그렇다고 무조건적이고 직접적인 칭찬의 방법을 피하고 있다. 어려운 가운데서도 믿음을 굳게 지키며 하나님 사랑을 실천하는 사람들의 이야기여서 더 친근감이 간다. 그리고 독자 여러분들도 그런 삶을 살기를 바라고 있다. '예수 믿고 천국 가라'는 직설 화법이 아니라 '나도 저 사람처럼 신앙생활하고 싶다'는 마음을 갖게 만든다. 간접적 문제 제시가 더 큰 설득력을 얻게 만드는 격이다.

 

8부 ‘허름한 밥상’에서는 풋나기 목사로서 소망하는 목회자 상이 무엇인지를 보여주고 있다. 전체 글들을 성경적으로 모아주는 역할을 하고 있다. 성경은 진리의 말씀이다. 아무리 인간이 날고뛴다고 해도 그리스도인이라면 이 말씀을 벗어나서 자신을 주장할 수 없다. 글쓴이 정 목사도 마찬가지이다. 이야기의 결론이 성경으로 돌아가야 한다는 것을 8부는 상징적으로 보여 주고 있다. 8부가 아니었다면 이 책이 감동의 글 모음은 되었을지 모르지만 은혜의 책으로는 좀 부족했을 것이다. 이런 점에서 풋나기 목사의 글 배치 치고는 절묘하다는 생각이 든다.

 

이 책 안에는 젊은 목회자의 그동안의 삶의 궤적이 선명한 발자국으로 남아 있다. 그 궤적은 온상 안의 화초라기보다도 들에 피는 들꽃과 같이 힘이 있다. 그 힘은 어디서 나오는가? 하나님 사랑, 이웃 사랑으로 연결될 수밖에 없다. 이것은 성경을 요약한 어절이기도 하다. 하나도 빠짐없이 짧으면서도 완결된 단문 말미에 관련 성경 구절을 덧붙인 것은 그의 이런 마음을 잘 웅변해 준다. 이 책이 기도로 쓰여졌다는 것을 알 수 있는 대목이기도 하다. 

 

정 목사는 이 책을 내기 위해 원고를 출판사에 보내고 나서 정말 자신이 글이 책으로 출판될 수 있을까 하고 마음 졸였다고 한다. 하지만 제대로 된 출판사라면 이런 글을 활자화하지 않을 이유가 없다. 상업성은 좀 뒤진다고 할지라도 한 사람의 진솔하고 따뜻한 마음을 많은 사람에게 공유시킴으로써 사회를 맑고 밝게 만드는 것이 책 출판의 목적이라고 생각한다면 이것보다 좋은 글을 달리 찾기가 쉽지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그런 점에서 이 책은 출판사의 신앙적이고 사회적인 기능이 어떠해야 함을 잘 설명해 주고 있기도 하다.

 

풋나기 목사의 이 글이 다시 인쇄되어 더 많은 사람들에게 읽혀지기를 바란다. 그렇다면 글 중간 중간 눈에 띄는 표현의 어색함, 맞춤법과 띄어쓰기의 오류 등은 다시 한 번 세세하게 검토해야 할 것이다. 언뜻 생각나는 것은 2부 '호박과 라면'에서 홍 권사님이 호박만 보면 울대뼈가 움직거리신다라고 했는데, '울대뼈'는 남성에게만 있는 것이어서 여성인 어머니에게는 해당되지 않는 단어이다. 6부의 '부러 틀리는 글자'에서 토씨 하나로 내용이 뒤바뀌는 예로 '낫게'와 '낮게'를 들고 있는데, 토씨는 조사(助詞)의 순 우리말이다. 여기서는 '토씨 하나로'가 아니라 '받침 하나로'라고 해야 자연스럽다.

 

자신의 생각을 글로 표현하고 또 그것을 사람들에게 알리기 위해 책으로 출간하는 것은 많은 사람들의 바람이다. 하지만 이렇게 할 수 있는 사람은 생각보다 많지 않다. 정승훈 목사는 그 많지 않은 사람 중에 일찍이 포함되는 복을 누렸다. 그것도 30대 초반에. 그도 이젠 지천명(知天命)의 나이가 되어 간다. 책 출간 당시 초등학교도 들어가지 않았던 아이들이 어엿한 사회인과 대학생으로 변해 있다. 그는 삶도 성실하게 살고 있고 또 목회도 모범적으로 하고 있어 주위의 부러움을 사고 있다. 그가 살아온 삶과 쌓아온 목회의 결과물들이 여러 가지로 열매 맺게 될 것이다. 그 중 적지 않은 부분이 책에 담겨질 수 있을 것이다. 사회에 선한 영향을 끼칠 그의 책이 기대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정 목사의 건승을 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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뿌리깊은 그루터기 조선문학시인선 323
박영재 지음 / 조선문학사 / 2012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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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은 미래 지향적이기보다 과거 지향적 분야에 가깝다. 과거를 천착하며 삶을 살찌우는 것이 역사 외에 또 있다는 얘기가 된다. 문학 중에서 특히 시(詩)도 과거의 경험칙(經驗則)을 주 소재로 삼는다. 인정과 자연 그리고 향수 등은 과거와 쉽게 연결되는  시어(詩語)들이다. 그런 점에서 나는 요즘 세류를 좇아 휘갈겨 쓴 스피디한 시에 마음이 가지 않는다. 거기엔 독자의 마음을 뭉클하게 하는 문학성이 다소 떨어진다고 여기기 때문이다.  

 

문학이 과거 지향적이라고 해서 퇴행을 생각해서는 안 된다. 그렇다고 시간을 거스르는 영역으로 치부해서도 안 된다. 문학이 궁극적으로 과거적이라는 말은 과거나 현재에도 동일한 인간이 고도로 발달된 과학에 종속되어서는 안 된다는 원론에서 출발한다. 어떻게 보면 시대에 뒤떨어진 대상에서 진실을 노래하는 것이 문학이고 시인지 모른다. 힘들었던 과거 삶에서 인정과 사랑과 정의에 민감했던 나를 찾게 된다. 사랑과 인간의 본성이 현재의 생활상에서보다 과거에 보다 더 많이 남아 있기 때문이다.

 

이런 시학(詩學)을 가지고 있는 나에게 최근에 출판된 박영재 시인의 시집 [뿌리깊은 그루터기](조선문학사)는 관심을 불러일으키기에 충분했다. 제목부터가 그랬다. [뿌리깊은 그루터기]라. 나는 이 제목에서 대뜸 두 가지를 연상했다. 하나는 전통이고 또 다른 하나는 성경이다. 여기서의 전통은 우리의 전통을 말하는 것이고 성경은 다 알다시피 기독교 경전을 가리킨다.

 

모르겠다. '뿌리깊은'에서 전통을 연상하게 된 이유가 무엇인지. 식물은 뿌리에서 시작해 줄기가 나오고, 가지가 퍼지며 잎이 달리고 꽃이 피고 열매를 맺는 삶을 살아가고 있다. 그러니까 뿌리는 그 나무의 시작을 상징한다. 이와 마찬가지로 민족도 가문(家門)도 또 이것들을 아우르는 문화도 그 뿌리가 튼튼해야 훌륭하게 발전할 수 있는 것이다. 이것을 '전통'이라고 한다.

 

'뿌리깊은'에서 내가 전통을 쉬 떠올린 것은 무엇보다도 '불휘 깊은 남간 바라매 아니 뮐새'로 시작하는 용비어천가 때문이지 싶다. 용비어천가는 주지하다시피 훈민정음으로 된 최초의 악장 문헌이다. 조선조 세종대왕이 성삼문 신숙주 등 집현전 학사들로 하여금 창제한 글이 훈민정음 즉 한글이다. 이것은 한문화(漢文化)에서 벗어나겠다는 우리 문화의 대 선언이었다. 여기서 우리나라 문화가 시작되었다고 해도 지나친 말이 아니다. 진정한 우리의 전통은 '뿌리깊은 남간'의 훈민정음 실험 작 용비어천가에서 시작되었다.

 

'그루터기'는 또 무엇인가? '나무나 풀 등을 베어내고 남은 밑동'을 그루터기라고 한다. 박 시인이 '책머리'에서 밝히고 있듯이 이 말은 성경 이사야 6장 13절에서 원용해 온 단어이다. 북이TM라엘이 이방인들에게 멸망당한 뒤, 남 유다마저도 패망 당할 위기 속에서도 이사야 선지자는 희망의 끈을 놓지 않고 '그루터기', 즉 하나님의 말씀을 신실히 준행하는 남은 자들(remnants)로 인해 구속사가 이어질 것이라고 확신하고 있다. 

 

그렇다면 '뿌리깊은'이라는 수식어와 '그루터기'라는 명사는 모두 전통과 맞물려 있는 단어들이다. 그런데 무엇보다도 이 시집의 이름을 채워주는 것은 120편에 가까운 박 시인의 시들이다. 어느 것 하나, 우리의 전통과 관련되지 않은 시들이 없다. 어떤 것은 제목으로 또 다른 것은 시어로 아니면 주제로까지 전통과 연결 지을 수 있는 것들이다. 이 시집에 올려 있는 시들을 읽노라면 고도로 발달한 과학문명 속의 내가 아닌 자연 속에 몰입되어 있는 자신, 전통을 붙들고 있는 자신을 발견하게 된다. 

 

이 시집은 모두 3부로 구성되어 있다. 제1부 '사향보(思鄕譜), 제2부 '계절과 함께', 제3부 '사양(斜陽)의 노래'가 그것이다. '사향보'는 그러니까 '고향을 생각하는 노래'라는 뜻이 된다. 고향 마을에서 일어났던 인간미 넘치는 소재들이 시어로 형상화되어 아름답게 표현되고 있다.  '계절과 함께'는 사계의 변화에 화자(話者)의 감정을 이입시켜 삶의 단계 단계를 구분지어 주면서 시절을 아끼고 허송세월하지 말 것을 권면하고 있다. '사양의 노래'는 '해질녘의 노래'라는 뜻으로 황혼에 접어든 시인의 인생을 노래한 것이다. 아니 이것은 시인만의 '사양 노래'가 아닐 것이다. 우리 모두가 겪어야 할 인생의 끝자락을 노래하는 것이라고 봐도 좋다.

 

시인을 참다운 시인으로 만들어주는 조련사 박진환 박사는 평설에서 이 시집의 시들을 세 가지로 구획해 주고 있다. "하나는 思鄕(사향)을 중심으로 설정되고 있는 思鄕(사향)공간이고, 다른 하나는 노경의 시인이 맞고 있는 斜陽(사양)공간, 그리고 이 두 공간을 옆에 끼고 동행하면서 구원의 길을 향해 중단됨이 없이 내딛고 있는 시와 신앙의 공간을 세 번째 詩域(시역)으로 제시할 수 있을 것으로 본다"(p.125). 120편에 달하는 시를 정밀하게 분석하고 품평한 뒤 내 놓은 구분이다.

 

그런데 나는 박 시인의 시를 읽으면서 시 전편을 통해 흐르고 있는 또 다른 정신세계를 발견했다. 절대자 하나님과 관련해서는 박 박사도 평설에서 세 번째 시역으로 제시하고 있으니 접어 두자. 그의 시를 관통하는 또 다른 시역은 ‘부인’과 ‘어머니’이다.  60 성상을 동고동락한 부인에 대한 그리움과 어머니에 대한 고마움은 이 시집뿐만 아니라 앞에 출판된 [반석 위의 백합향], [산수와 동행] 등에도 선연히 드러나고 있다. 박 시인의 어머니와 부인은 지금 이 세상의 사람이 아니다. 그렇기 때문에 그 그리움과 고마움은 더 절실하다. [뿌리깊은 그루터기]에서 부인에 대한 그리움을 시로 조련해 낸 것이 20 여편, 어머니에 대한 고마움을 주제로 한 것이 10 여 편이나 된다. 물론 간접적 소재까지 포함시키면 관계 시들이 훨씬 많아지겠는데 그것은 그들에 대한 시인의 정신적 부채의식이 얼마나 큰 지를 말해 주는 것이다.

 

가령 '비오는 날의 그대 생각'은 아내에 대한 그리움을 시화한 대표적인 것이다.

 

........<전략>

못다한 사랑

우수로는 달래지 못한

옛날의 사랑도 꽃으로

피고

따뜻하게 불러보는

이름 하나도 꽃으로 핀다

('비오는 날의 그대 생각' 부분)

 

여기서 '따뜻하게 불러보는 이름 하나'는 지금은 이 세상 사람이 아닌 '아내'를 가리킨다. 살아생전에 잘해 주지 못하고 짐만 지웠던 과거 삶을 돌이키며 이제 잘 해 줄 수 있는데, 둘러보니 아내가 더 이상 보이지 않는다. 그래서 시인은 비오는 날 유리창에 얼룩진 비 무늬를 꽃으로 만들어 그것을 아내로 이미지 변화를 시켜 '따뜻하게 불러보는' 것이다.

 

부인에 대한 이 시와 비슷한 시상(詩想)은 1부에서만 '그 여인', '저 별은', '그리운 로맨스', ''기다림' 등 여러 개이다. 전해들은 바로는, 박 시인의 부인은 남편을 위해 잘 내조하고 또 시어머니에 대한 정성어린 효성으로 효부 상을 수상할 정도로 선한 삶을 살다가 갔다고 한다. 그에 대한 찬사가 아직까지 마을에서 회자된다고 하니 지극한 효도의 아름다움을 짐작할 수 있을 것이다.

 

시인은 어머니를 들로 표현할 정도('들은 어머니다')로 신뢰한다. 그리고 고마움으로 사무친다. 그도 그럴 것이 32세에 남편을 잃은 어머니는 홀로 4형제를 키워 훌륭한 사회인으로 진출시켰다. 이렇게 하기까지는 연약한 여성의 몸으로 어려움이 이만저만이 아니었을 것이다. 그의 이런 마음은 어머니을 '나의 신앙'(p.34)이라고까지 표현하고 있다. 어머니에 대한 전적인 신뢰와 고마움이 내포되어 있는 표현이다.

 

이 시집을 읽으면서 느낀 몇 가지를 덧붙이고 싶다. 박영재 시인의 시는 대단히 젊다는 점을 지적할 수 있겠다. 그는 80 중반의 연치(年齒)를 가지고 있지만, 시적 테크닉을 젊은 시인 못지않게 구사하고 있다. 대표적으로 언어의 다양한 표현을 장점으로 들 수 있을 것이다. 토속적인 향토 어에서부터 현대어에 이르기까지 자유자재로 사용하고 있다. 표현에 있어서도 비유와 상징에서 공감각적 표현에 이르기까지 능수능란한 실력을 보여주고 있다. 그것뿐만 아니라 단어의 통일성도 돋보인다.

 

다음의 시에서 절묘한 단어 배치를 발견할 수 있다.

 

........<전략>

치마폭 잡고 늘어지다 채인

바람에 바람맞은 봄바람

여인네 가슴에 감기는 연두빛에도

몰래 감춘 바람기로 설레임한다.

('봄바람 여인' 부분)

 

같은 '바람'이라는 단어가 여러 가지 뜻으로 사용된 예가 된다. 처음 나온 '바람'은 '용언의 어미 '-ㄴ(-은), '-는' 아래에서 '바람에'의 꼴로 쓰여 '원인'이나 '근거'를 뜻하는 말로 사용'되고 있고, 두 번째 나온 '바람'은 '속임을 당함'의 뜻으로, 그리고 세 번째 '바람'은 '기압의 변화로 일어나는 대기의 흐름'을 마지막 '바람'은 '(어떤 대상이나 이성에)마음이 끌리는 들뜬 상태를 가리킬 때 쓰는 말이다. 한 단어를 일부러 의도하고서도 이렇게 배치하며 시어로 사용하는 것은 쉽지 않을 일이다. 하지만 박 시인은 절묘한 언어 기술을 보여주고 있다.  

 

박 시인은 나이가 많다고 해서 또 자연과 인생을 노래했다고 해서 시만을 위한 시를 쓴 사람이 아니다. 그는 굴곡의 역사에서 발견하는 슬픔을 표현할 줄 알고(‘청령포에서’), 실향민으로서 남북 분단의 아픔을 누구보다도 절실히 느끼고 있다(‘뜸북새’, ‘하나로 1’). 편리라는 이름으로 과학만능주의가 횡행하는 현실을 시로 항의하고 있기도 하다(‘옹달샘’). 또 인간의 욕심으로 소 돼지를 죽음으로 내 몰았던 구제역을 에둘러 비판하고 있다(‘자연 속에’). 박 시인은 문학하는 사람에게 요구되는 객관적인 시각을 소지하고 있는 시인인 셈이다.

 

박영재 시인은 고희(古稀)가 넘어 시작 활동을 시작해서 나이를 초월해 왕성하게 필봉을 작렬하고 있어 주위에서 많은 관심을 갖게 만든다. 지금 그는 80 중반으로 미수(米壽)를 바라보고 있다. 그럼에도 [山水(산수)와 同行(동행)], [구름타고 땅을 보니] 그리고 시집으로 [반석 위의 백합향]과 본 [뿌기깊은 그루터기] 등 네 권의 시집을 상재했다. 대단한 노익장이 아닐 수 없다. 급박하게 돌아가는 사회에서 은퇴를 하고 무료하게 살아가는 사람들이 적지 않은 현실에서 그의 삶은 좋은 본보기가 되지 않을까 싶다. 그는 이번 시집이 그의 마지막 출간 책자가 될 것 같다고 했지만 그의 왕성한 필력으로 볼 때 미수 기념 나아가 구순(九旬) 기념의 시집을 기대하는 것은 나의 바람만은 아닐 것이다. 박 시인의 건승을 빌며 독자 제현들에게 일독을 권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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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두관의 발견
남재희.박석무.김삼웅 외 지음 / 사회평론 / 2012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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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다. <김두관의 발견>을 발견했다. 김두관에 대해 많은 것을 알고 있다고 자부한 내가 모르는 것 투성이다. 이 책을 읽다 보니까. 그래서 '발견'이다. 이것보다 더 좋은 글 제목이 있을 성 싶지 않다. 김두관은 정치인이다. 정치인에 대한 글은 신중하게 접근해야 한다. 자칫 잘못하다가 오해를 사기 쉽다. 그래서 <김두관의 발견>에 대한 서평을 쓰는 데도 망설임이 없지 않았다.

 

정치인에 대한 책은 대부분 미화되기 쉽다. 그가 걸어온 길이 어떠하든 그의 정치적 지향점이 어디이든 우리의 정치 현실에 꼭 필요한 사람이라는 수식어들이 붙어 독자를 붙잡는다. 서문만 읽어보면 책 내용이 훤히 보인다. 이것이 내가 정치인에 대한 책 읽기를 주저하는 이유이다. 하지만 김두관에 대한 책은 좀 다를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는 자기를 내 세우는 사람이 아니다. 다른 사람으로 그를 말하게 한다. 이것은 대단한 장점 중의 하나에 속할 것이다.

 

몇 년 전 알고 지내는 목사가 김두관에 대한 책을 쓴다기에 원고를 보냈던 적이 있다. 책 제목이 <내가 만난 김두관>이었는데, 나는 서울민통련 때 함께 활동한 경험에 비췬 김두관을 '변함없이 인간적인 사람'이란 타이틀로 정리했었다. 어머니, 부인 등 가족에서부터 수행팀 자원봉사자에 이르기까지 33명의 사람들이 김두관에 대해 쓴 글이다. 김두관 자신의 글도 그 중에 포함되어 있다. 이 책에는 그의 장단점이 고스란히 드러나고 있어서 대권 주자로 운위되고 있는 그를 아는데 도움이 된다.

 

<김두관의 발견>도 김두관을 잘 아는 사람이 그에 대해 쓴 글 모음이다. 그런데 좀 이상한 데가 발견된다. 저자가 일곱 명이나 된다. 그것도 각 분야에서 인정받고 있는 내로라하는 사람들이다. 촌부(村夫)인 내가 알 정도의 사람들이니 그들이 사회에서 차지하는 비중들을 대충 짐작할 수 있으리라. 세상을 올곧게 살려고 애쓴 흔적이 역력한 사람들이라 더 눈이 갔다. 남재희, 박석무, 김삼웅, 정성헌, 정상용, 김 근, 노혜경. 일곱 명의 필자, '일곱'이란 수는 성경에서는 영적 완전수라고 말한다. 완전수의 사람들이 한 인물을 두고 쓴 글이라? 관심을 불러일으키기에 충분하다.

 

필자들의 면면을 보니 내가 좋아하는 사람들이다. 사람 자체를 좋아한다기보다 그들이 살아온 삶을 좋아한다고 표현하는 것이 더 정확할 것 같다. 남재희에서 노혜경에 이르기까지 곡학아세(曲學阿世)하지 않고 자기 영역에 전문성을 쌓아 인정받은 사람들이다. 남재희는 국회의원에 장관까지 지낸 사람이지만 내겐 박학다식(博學多識)한 언론인으로 새겨져 있다. 박석무는 중고등학교 교사와 국회의원을 역임했지만 우리나라에서 손꼽히는 다산 연구가로 알려져 있다. 다산의 대중화 작업에 그가 끼친 열정은 옅지 않다.

 

김삼웅 역시 언론인이다. 아니 언론인으로만 소개하기 아까운 분이다. 대학에서 학생들을 가르치는 사람, 다수의 저서를 출간한 작가이기도 하다. 독립운동가에 대한 평전을 그만큼 많이 쓴 사람도 없을 것이다. 그는 대한매일신문(현 서울신문) 주필을 역임했고 참여정부 땐 독립기념관장으로 민족혼을 한 자리에 모으는데 힘을 쏟았다. 정성헌은 가톨릭농민회의 사무총장을 오래 맡아 농민운동에 헌신한 그야말로 가농의 상징적 인물이다. 그 후 우리밀살리기운동본부, 한국DMZ평화생명동산 이사장을 거쳐 지금은 민주화운동기념사업회 이사장을 맡고 있다.

 

정상용은 광주 5.18 민주화동지회 회장과 국회의원으로 활발하게 움직인 경험을 갖고 있다. 그의 정의감은 알 만한 사람은 다 안다. 정치적 생명에 연연했다면 당선이 보장된 광주의 지역구를 쉽게 내려놓지 않았을 것이다. 하지만 지역주의라는 높은 장벽을 무너뜨리기 위해 서울 강남으로 지역구를 옮겼다가 그 벽이 높다는 것만 실감한 채 낙선하는 안타까움이 있었다. 정상용이 책에서 거론했듯이 노무현, 김두관 그리고 지난 총선 때 대구에서 출마한 김부겸과 함께 우직한 정치인의 반열에 올려도 좋을 사람이다. 김근은 한겨레신문 논설위원으로 칼라가 분명한 글을 써서 지식인들에게 문명을 떨쳤다. 국민의 정부 때 연합통신 사장, 참여 정부 들어 한국방송광고공사 사장과 방송위원회 위원을 지낸 분이다.

 

나는 노혜경이 시인인지 몰랐다. 그를 떠올릴 때마다 노사모가 동시에 연상되는 것은 그 모임에서 노혜경의 역할이 그만큼 컸기 때문이리라. 내가 <김두관의 발견>에 글을 올린 필자들을 이렇게 장황하게 소개하는 것은 이유가 있다. 먼저, 그들은 삶에 생각을 맞추려고 노력한 것이 김두관과 닮았다는 점을 들 수 있다. 언행일치를 늘 염두에 둔 삶을 산 사람들이라는 얘기다. 두 번째는, 그들은 이 책에서 김두관을 마냥 칭찬하지 않았다는 공통점을 가지고 있다. 어떻게 보면 그들의 주장에 김두관을 가져다 붙였다고나 할까. 각 글의 중반부까지는 김두관에 대한 언급이 없어 좀 의아하게 여겨질 정도이다. 셋째, 이들이 기대하는 정치인 상(像)은 서민 지향적인 것인데, 말이 아니라 생활에서 그것을 보여줄 수 있는 사람을 그리고 있다. 거기 맞아 떨어지는 사람이 김두관이라는 식이다. 김두관이 말했듯이 서민을 위한 정치인이 아니라 서민 자체인 정치인…. 

 

이렇게 자기 입장이 뚜렷한 사람들이 한 인물 김두관에 대해 기술하는 글이라고 하니 호기심이 이는 것은 당연하다. 나는 <김두관의 발견>을 두 번 정독했다. 흔치 않는 일이다. 이유가 뭘까? 김두관에 대해 천편일률적으로 칭찬만 늘어놓은 책이었다면 그렇게 하지 않았을 것이다. 또 뚜렷한 근거 없이 추상적 미화 일변도였다면 읽다가 중단했을 것이다. 하지만 그렇지 않았다. 각 필자의 입장에서 지금 우리나라에 필요한 정치 영역을 설명한 다음, 그 일을 해 낼 적임자로 김두관을 가시권에 두고 있는 것이다. 그들은 꼭 김두관이어야 한다고 얘기하고 있지 않다. 김두관이 자기들의 생각에 가깝다는 점을 말하고 있는 것이다. 판단은 독자에게 맡긴 채….

 

남재희는 흔히 비판적 보수주의자 지칭되는 사람이다. 그래서인지 보수 진보를 가리지 않고 많은 지인(知人)을 갖고 있다. 언론인, 국회의원, 장관을 거치면서 산전수전 다 겪은 백전노장(百戰老將)이다. 그는 유신 정권 때 여당의 책임 있는 자리에 있던 사람인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가 멀리 있다고 생각되지 않는 것은 건전한 사고 때문이 아닌가 싶다. 나는 건전한 보수와 건강한 진보는 친구가 될 수 있다고 생각한다. 남재희는 우리의 정치지형에 대대적 물갈이가 필요하다고 역설한다. 양반층 정치인(사장, 고위관료, 법률가, 박사 등등)을 서민층을 대표할 수 있는 사람으로 확 바꿔보면 어떨까 하고 주문한다. 농사로 치면 심경(深耕)을 하듯. 나는 그의 이 말이 감정에 격해 나온 것이 아님을 잘 안다. 심경의 정치 변화, 이것은 정치 발전의 다른 이름이 될 것이기 때문이다.

 

남재희는 그 서민층을 대표할 수 있는 예로 김두관 같은 정치인을 꼽고 있다. 시골 마을 이장에서 출발해서 농민운동, 지역 언론 <남해신문> 발행인, 민선 군수, 초대 행자부 장관을 거쳐 도백에까지 오른 김두관을 남재희가 서민층을 대표할 수 있는 정치인으로 언급했다는 것은 의미가 있다. 날고뛰는 보수 정객이 부지기수인 마당에 비판적이라곤 하지만 보수적 시각을 가진 인사가 진보 개혁적 정치 행보를 걸어온 김두관을 예거했다는 것은 예삿일이 아니다.

 

더욱이 이 말은 <김두관의 발견>에서 김두관을 의식하고 사용한 말이 아니라, 그 전 어느 정치 신인을 추천하는 자리에서 한 말이라고 한다. 언론인 남재희는 이 책에서 김두관의 미숙한 언론관(言論觀)에 대한 조언도 아끼지 않고 있다. 보수 언론의 대명사 조선일보에서 발행하는 주간지에 대선 출마 예상자들을 두고 한 말에서 작은 허점이 노정된 적이 있다. 이것도 중앙정치인이 아닌 순박한 지방 정치인이기 때문에 나올 수 있는 일이라며 너그럽게 봐주고 있다. 사람을 대할 때도 위 아래 구분하지 않고 한결같이 겸손한 김두관이 언론이라고 예외일 수 없다. 그는 언론인을 부르는 사람이 아니라 필요하다면 찾아가서 대화하는 정치인이다.

 

박석무는 경세가(輕世家) 다산 정약용의 목민관을 현실에 가장 잘 적용시키는 정치인으로 김두관을 든다. 특이하게도 2세기 반 이전의 봉건왕조 관료였던 정약용의 경세 철학이 오늘날도 생명력을 가지고 있는 것에서 시대를 앞서 살다 간 다산의 탁월함을 읽을 수 있다. 김두관의 좌우명으로 알려져 있는 '불환빈 환불균'(不患貧 患不均, 백성은 가난한 것에 분노하는 것이 아니라 공평하지 못한 것에 분노한다)은 <논어(論語)> '계씨편(季氏篇)에 나오는 말이다. 다산의 애민사상(愛民思想)은 단단한 동양 사상에 기초하고 있고, 백성(국민)을 사랑하는 것은 시대를 초월해 가치를 인정받는 진리의 영역에 속하기 때문에 그의 철학이 아직도 빛을 잃지 않고 있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박석무는 김두관에게서 다산을 발견했다. 국민을 사랑하는 마음이 현실 정치에서 어떻게 발양(發揚)되어야 하는가에서 2세기 반의 시간을 두고 살아가는 두 사람에게 공통점이 있다는 것이다. 중앙 집중에서 벗어나 지방 자치의 중요성을 강조하고 있는 점이 그렇다. 다산은 <목민심서(牧民心書)>에서 입법 사법 행정의 3권을 모두 지녀, 작은 고을에서 제왕의 역할을 했던 지방관, 즉 군수 현감 현령 등의 수령들을 그 지방의 최고 지도자로 여기고 그들이 지녀야 할 자격이나 자질이 어떠해야 하느냐에 대한 접중적인 논의를 폈다(p.53). 봉건 왕조 시대 때 지방의 중요성을 인지(認知)하고 사상을 전개했다는 것은 위험천만(危險千萬)하면서도 결코 역사적 의미가 적지 않다는 것에서 다산의 위대성을 발견할 수 있다. 김두관의 목민관이 다산에게서 기인(起因)했다고 박석무는 결론 맺고 있다. 

 

독립기년관 관장을 지낸 김삼웅은 김두관의 역사안(歷史眼)을 두 가지 경험을 들어 평가하고 있다. 중국 유주시(柳州市) 대한민국 임시정부가 머물렀던 장소에 전시실을 꾸미고 개관행사가 열린 적이 있었다고 한다. 이 행사에 불청객 김두관이 불쑥(?) 찾아와서 관심을 보인 것에 대해 몹시 인상 깊게 생각하고 있었다. 대부분의 사회 지도층 인사들이 미국으로 공부를 하러 떠나는 상황에서 중국에 공부하러 와서 대한민국 임시정부의 궤적에 관심을 보인 것은 아무나 할 수 있는 일이 아니라는 것이다. 김상웅은 김두관이 뚜렷한 역사관을 가지고 있을 뿐만 아니라 우리나라에서 몇 되지 않는 지중파(知中派) 중의 한 사람이라고까지 적고 있었다.

 

또 한 번은 김두관이 몇몇 지인들과 함께 승합차를 타고 독립기념관 관람을 왔었다고 한다. 행자부 장관을 물러나고 쉬고 있을 때였다. 김두관이 고대에서부터 현대에 이르기까지 적지 않은 전시실을 빠지지 않고 관람하면서 수첩에 필요한 것을 꼼꼼히 메모하는 모습에서 공부하는 정치인을 발견했다며 흐뭇해하고 있다. 독립기념관을 방문하는 장차관 국회의원 등 사회지도층 인사들이 적지 않지만 이렇게 꼼꼼하게 메모해 가면서 구석구석을 빠짐없이 관람을 하는 정치인은 김두관이 처음이라는 것이다. 정치인들의 역사 인식이 문제가 될 때가 있다. 그들만의 탓이 아닐 것이다. 아직도 뿌리 깊이 남아 있는 식민사관을 도려내기까지는 아직도 얼마의 시간이 더 필요할지 모른다. 김삼웅은 김두관이 역사의식이 뚜렷한 정치인이라고 자신 있게 말하고 있다.

 

가톨릭농민회 운동의 상징적 활동가 정성헌은 김두관을 오래 전부터 알고 지내왔다고 한다. 김두관이 남해에 내려가 농민운동을 할 때, 정성헌의 도움을 받았을 것이라는 사실은 짐작하기 어렵지 않다. 정성헌은 김두관을 알고 지낸 사람이기 때문에 관심 갖고 지지하는 것이 아니라 김두관의 인생 역정이 그가 추진하는 생명운동에 근접해 있기 때문에 그를 지지한다고 했다. 정성헌은 앞으로의 운동은 인간 중심의 운동이라기보다 평화 생명 중심의 운동이 되어야 한다고 역설한다. 그가 맡고 있는 한국DMZ평화생명동산은 극좌도 극우도 아닌 중도의 길을 걷는 생명운동인데 여기에 근접해 있는 정치인으로 김두관 지사를 들고 있다.

 

광주 민중항쟁 지도부의 일원이었던 정상용은 한(恨)이 많은 사람이다. 개인의 한이라기보다 광주의 한, 민족의 한이다. 그를 비롯한 동지회 여러 사람의 노력으로 광주민중항쟁이 국가가 정한 기념일이 되었고, 망월동이 국립묘지로 승격되었으며 만족할 액수는 아닐지라도 보상금까지 받게 되었다. 그 후 정상용은 지역주의 타파를 위해 노력한 정치인으로 기억되고 있다. 이러한 점에서 지방분권주의자 김두관에게 호감을 갖는 것은 자연스런 일이다. 정상용의 말에 의하면 김두관을 보다 깊이 알게 된 것은 언론운동가 김태홍으로 인해서였다고 한다. 김태홍은 기자협회 회장일 때 일어난 말지 사건의 주역일 뿐 아니라 한겨레신문 창간 멤버였고, 뒤에 광주 광산구청장과 국회의원을 지낸 사람이다.

 

김태홍과 김두관 등이 중심이 되어 영호남의 지방자치단체장들이 '머슴골'이라는 모임을 만들었다. 지역 갈등의 소모성을 함께 인식하고 영호남 대립의 상처를 보듬으며, 한걸음씩 좁혀가 보자는 마음으로 만든 모임이 '머슴골'이었다고 한다. 활동을 하면서 경상도 단체장 김두관이 호남을 이해하고 생각하는 마음이 한없이 넓어 둘은 의기투합했고, 이런 정황을 김태홍이 정상용에게 전해서 김두관에 대해 구체적으로 알게 되는 계기가 되었다는 것이다. 정상용은 소인배가 판을 치고 있는 정치에 김두관 같은 통 큰 정치인이 있어 다행이라고 했다. 김두관에 대해 거는 선배 정치인의 기대가 어느 정도인지 눈치 챌 수 있을 것이다.

 

김근은 언론인이다. 그의 언론 이력도 한두 가지가 아니지만 나는 그를 한겨레신문 논설주간으로 마음에 새기고 있다. 지역주의와 보수주의에 대한 그의 논설을 읽으면서 촌철살인(寸鐵殺人)의 시원함을 맛본 것은 나만이 아닐 것이다. 그런 김근이 김두관을 주목하고 있다. 반목과 적대사회의 통합을 위해서 김두관과 같은 정치인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김근은 김두관의 세상과 적당히 타협하며 살지 않은 인생행로를 높이 평가하고 있다. 악화가 양화를 구축하듯, 제도 정치권에 들어가면 어느 정도 현실에 물들게 마련인데 김두관에게는 그런 것이 없다는 것이다.

 

김근은 사람 차별만큼 기분 나쁘고 비인격적인 것도 없다면서 영호남의 지역 구도를 누구보다 우려하는 사람이다. 나아가 이것은 단지 우리나라 내의 지역 차별뿐 아니라 한국에 와 있는 이주 외국인들을 대할 때도 마찬가지라는 것이다. 따뜻한 인정을 나누며 그들의 필요를 도와줄 때, 우리나라를 사랑하고 위하는 친구로 만들 수 있다는 것이다. 하지만 현실은 외국인들에게 너무 야박하게 대우해 줌으로써 그들의 감정을 상하게 하고, 그들이 자국으로 귀국한 뒤 철저한 반한파(反韓派)로 만드는 일을 반복하고 있다는 것이다. 우려할 일이 아닐 수 없다. 이것에 관심 두고 있는 김두관을 김근은 발견하고 있다.

 

노혜경은 시인이다. 참여정부를 출범시키는데 크게 이바지한 노사모를 만드는 데도 그녀가 일익을 담당한 것은 잘 알려진 사실이다. 그는 미국 소설가 나다나엘 호돈의 '큰 바위 얼굴'을 원용하여 김두관을 이끌어내고 있다. K형에게 보내는 편지 형식으로 이어지는 글에서 노혜경은, 글의 주인공 어니스트의 입을 빌려 큰 바위 얼굴을 만드는 것은 개더골드 같은 황금도, 올드 블러드 앤드 선더 같은 힘도, 올드 스토니 피즈의 권력도 아니고 순박한 사랑과 자비, 공동체를 위해 헌신하고자 하는 진실한 마음이라고 말한다.

 

마침내 큰 바위 얼굴이 된 어니스트는 정규학교 교육을 받은 적이 없고, 밭에서 일하며 하루하루의 일상적 노역을 사람들과 함께 했으며, 모든 큰 바위 얼굴을 닮은 사람들과는 달리, 태어나 단 한 번도 마을을 떠나본 적이 없는 변방의 사람이었다. 지금 우리의 정치 상황에서 어니스트와 가장 닮은꼴의 정치인을 꼽으라면 K형(김두관) 외에 누가 있겠느냐는 것이다. 노혜경의 김두관 대망론인 셈이다. 시인의 눈으로 보는 한 정치인이 이렇게 따뜻하게 그려질 수 있다는 것은 분명 문학의 힘이고 진실의 힘에 의해서일 것이다. 시인 노혜경의 글은 <김두관의 발견>을 결론짓는 압권(壓卷)의 글이다. 직접 당신이오가 아니라 큰 바위 얼굴을 원용한 간접 지칭이 더 설득력을 갖고 있지 않을까 싶다.

 

이상의 글로 '<김두관의 발견>을 발견하다'로 제목을 정한 이유가 얼마간 해명되었는지 모르겠다. 여기에 덧붙여 '발견'이라는 단어를 쓴 또 다른 소이(所以)가 있다. 일곱 명의 필자가 붓을 놓고 난 뒤의 막간 글 때문이다. 이 글들은 '김두관의 발견 기획위원회'에서 쓰지 않았나 싶은데, 김두관에 대해 미처 모르고 있었거나 안다고 해도 피상적으로 알고 있던 것을 새롭게 인식하는 기회가 되었다. 소중한 '발견'이 되는 것이다.

 

동아일보 등 보수 언론의 집중 포화를 맞고, 동아일보와 각별한 인연이 있는 자신을 왜 이렇게 심하게 때리느냐며 하소연하면서, 자신이 과거 생활이 어려워 동아일보사에서 발행하던 월간지 <신동아> 외판을 했던 적이 있다는 것을 들더라는 것이다. 과거의 고난을 유머로 승화시킨 실 예화이다. 남해신문을 만들면서 기사에서 배달까지 1인6역을 하며 지역 주민들을 섬겼다는 이야기, 지방자치와 분권의 중요성을 잘 아는 김두관 지사의 의회 출석률이 100%(참고로 서울시장을 지낸 오세훈은 같은 기간 의회 출석률 29.7%)로 도의회(道議會)를 존중했다는 이야기 등이 신선한 삽화처럼 글 사이에 끼어 있다.

 

김두관의 큰형은 독일 광부 출신이다. 거기에서 영감을 받아 남해군에 아름다운 관광명소 독일마을을 만들었고, 이명박 정권의 4대강 개발에 강력하게 대항한 것은 댐 건설로 파괴되는 환경 문제도 문제이지만 실제 농민들이 입을 피해를 보고만 있을 수 없어서였다는 것, 70세 이상의 가난한 노인 분들에게 혜택을 주는 틀니 사업은 '사람 중심 행정'의 모범 사례로 꼽을 수 있는데도 처음엔 다수당의 반대가 심했다는 것 등은 오늘날 필요한 환경 보호와 진정한 복지가 무엇인지를 상징적으로 보여준 예라고 하겠다.

 

2009년 5월 노무현 대통령이 서거했을 때, 나는 봉하 마을로 조문을 갔었다. 상가(喪家)를 지키고 있을 김두관에게 연락을 하니 밤샘을 한 뒤, 싸우나에 가서 씻고 있는 중이라고 했다. 노 대통령의 영결식장이 서울로 잡혔다. 서울에서 볼 수 있을 것 같은 기대감으로 김두관에게 연락을 취하니 뒷정리를 위해 봉하 마을에 남기로 했다는 것이다. 그 때는 그런가 보다 하고 그냥 지나쳤다. 하지만 영결식에 참석하기 위해 모두 봉하 마을을 뜬다면 그 뒷일을 누가 처리하겠는가? 대청소, 회계정리, 황색 리본 간수, 방문자 명단 정리 등등을 말이다. 그때 김두관으로 인해 한 방에 모든 것이 해결되었다고 책은 적고 있다.

 

"제가 이 동네 경남 촌놈입니다. 제가 알아서 할 테니까 걱정하지 마세요."

 

소리 소문 없이, 대부분이 모르게 뒷마무리는 완벽하게 이루어졌다고 한다. 김두관 자신인들 장례식장에 가고 싶지 않았겠는가며 감동적이라고 적고 있다.

 

김두관의 섬김은 몸에 체화되어 있는 듯하다. 겸손에서 나올 수 있는 행동이다. 섬김의 리더십이 대권 주자에게 뺄 수 없는 덕목이 될 것이다. <김두관의 발견>을 쓴 일곱 명의 필자가 모두 김두관 열렬 지지자인지는 모르겠다. 하지만 예전의 잣대인 혈연 지연 학연 교연(敎緣) 등을 떠나 비교적 객관적인 입장에서 오는 12월 대선에서 김두관이 야권 후보가 되기를 바라는 마음들을 갖고 있는 것은 분명하다.

 

이 책은 한 정치인에 대해 포장된 미화가 아니라 객관적 평가라는 점에서 다른 정치인 관련 책자와 차이가 난다. 필자 각인이 주어진 영역에 전문성을 담지하고 있는 사람들이어서 글의 논리성도 돋보인다. 끝으로 '옥의 티'같이 여겨지는 것은 일곱 사람이 한 정치인에 대해 글을 쓰는 만큼 내용의 중복성이 가끔 눈에 띈다는 점이다. 하지만 책의 성격 상 피할 도리가 없었을 것이다. 다가오는 12월 대선 뿐만 아니라 나라의 미래를 조금이라도 생각하는 사람이라면 꼭 읽어두어야 할 책이라는 것을 강조하면서 일독을 권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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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령에 붙잡힌 전도자 - 성령님의 나타나심과 능력으로 복음을 전하는 사람
김인중 지음 / 규장(규장문화사) / 2011년 10월
평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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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회자는 좀 권위를 지킬 줄도 알고 일반 사람들과는 품위가 달라야 하며 어딘지 모르게 거룩하게 보여야 한다는 선입견들을 가지고 있기가 쉽다. 나도 그렇게 생각해 왔다. 그런 와중에 김인중 목사를 만났을 때, 그는 전혀 별개의 목회자로 내게 다가왔다. 몇 년 전 우리 교단 연합 집회 강사로 그가 참석했을 때의 일이다. 그는 강단에도 근엄하게 올라오지 않았다. 마치 토끼가 산비탈을 뛰어 올라가듯 그런 모습으로 강대상으로 올라왔다. 그런데 급히 올라오다가 전기선에 걸려 넘어지고 말았다. 오뚝이처럼 발딱 일어난 그는 아무 일도 없었던 것처럼 강의를 시작했다.

 

그래도 마음 한 쪽엔 창피함이 남아 있었지 않았나 싶다. 그는 그 특유의 '한 바퀴 기도'로 좌중을 제압했다. 시장 경찰서장 구청장 교육감 동장 대학총장 학장 파출소장 법원장 지검장 학교 교장 회사 사장 등 100여명의 이름을 쉬지 않고 외어 대어 회중들을 웃게 만들었다가 놀라게 했다. 그의 앞에는 체면도 위신도 발붙일 여지가 없다. 그는 전도로 똘똘 뭉쳐 있는 사람이다. 그에게는 전도가 알파요 오메가인 셈이다. 어렵게만 생각되던 전도가 그의 말대로 한 번 해 봐야겠다는 다짐으로 바뀌는 것을 그의 강의를 들어본 사람이라면 모두 동일하게 느꼈을 것이다.

 

안산동산교회 김인중 목사가 책을 한 권 출간했다. <성령에 붙잡힌 전도자>가 그것인데, 작년 11월 초판 인쇄로 되어 있으니까 최 신간에 해당하는 책이다. 이 책엔 전도에 관한 김 목사의 경험을 기록하고 있다. 목회자를 실천에 강한 사람과 이론에 강한 사람으로 구분한다면 김인중 목사는 실천에 강한 목회자에 속할 것이다. 하지만 그의 이론도 결코 실천에 뒤지지 않는다. 그의 전도가 생명력을 가기고 있고 설득력이 있는 것은 이론이 뒷받침된 실천이기 때문일 것이다. 말만 풍성하고 실천이 따르지 못하는 목회자들이 부지기수인 상황에서 그의 '실천 전도학'이 소중하게 마음에 와 닿는 것은 어쩌면 당연한 것인지도 모를 일이다.

 

그는 1972년 허허벌판 안산(당시 명칭은 반월 공단으로 더 잘 알려져 있었다)에서 일곱 명의 성도로 안산동산교회를 개척하여 지금은 2만 가까운 출석교인을 가진 대형 교회로 성장시켰다. 그의 열정과 하나님의 은혜가 맞물려 이런 성장을 가져올 수 있었다고 그는 책갈피 중간 중간에 고백하고 있다. 그렇다고 김인중 목사를 교회 성장주의자로 보면 안 된다. 그는 교회를 규모와 양으로 평가하는 데에 극도로 거부감을 가지고 있다. 주님의 일을 열심히 해서 나온 결과라면 받아들여야 하겠지만 양적으로 성도 수를 늘리고 외형적으로 교회의 규모를 넓히는 데 목적을 두고 있는 목회자가 아니다.

 

전도는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주신 지상대명이다. 그리스도인이라면 거부할 수 없는 명령이다. 반드시 따라야 하는 말씀인 것이다. 그래서 전도에 대해 소개한 책자는 너무나 많다. 이론서에서부터 실무 경험서에 이르기까지 널려 있는 것이 전도학 책이다. 중요한 것은 그럼에도 불구하고 전도가 쉽게 행동으로 이어지지 않는 데 있다. 이론서는 당위를 강조한 것들이 대부분이며, 실무 경험서도 특정한 사람에 의해 특정한 시기에 특별한 장소에서 경험한 것들이기 때문에 일반화되기 어려운 것들이 대부분이다. 난 전도에 대한 책을 그래서 잘 읽지 않는다.

 

한 전도훈련 프로그램에 참여하면서 강사로부터 새로 나온 전도 책이라며 읽어 보라는 권유를 받았다. 이 책을 읽으면 전도에 대해 자신감이 생길 것이라는 말도 잊지 않았다. 김인중 목사는 성령의 사람이다. 불신 가정에 태어나서 가난으로 어머니와 형제 몇을 잃고 방탕한 아버지마저 자신을 내 팽개쳐 그야말로 천신만고의 삶을 살아온 사람이다. 초등학교 4학년 때 친구 따라 교회에 나간 김 목사는 그때부터 하나님 중심주의로 살아왔다. 어려운 조건 속에서도 신앙인의 롤 모델로 부족함이 없는 사람이다.

 

김인중의 <성령에 붙잡힌 전도자>는 전도 보고서이다. 전도 중심의 교회가 어떻게 부흥해 왔는지를 진실하게 밝힌 책이다. '안 산다 안 산다 하면서 어쩔 수 없이 살게 되는 도시' 인 안산에서 안산동산교회가 발전해온 이야기이다. 어려운 환경 속에서도 교계에 가장 건강한 교회로 세워나가는 과정을 한 목회자의 눈으로 돌이키고 있다. 자신의 전도와 교회 부흥 이야기를 드러낼 목적으로 책을 썼다면 그렇게 호감을 가지지 못할 지도 모른다. 하지만 이 책의 프롤로그에서 본 장들을 거쳐 에필로그에 이르기까지 하나님께 대한 감사와 순종 그리고 은혜에 붙들린 자신을 솔직담백하게 기록하고 있어 읽는 이의 마음을 붙잡는다.

 

250쪽에 가까운 분량의 책을 순식간에 독파할 수 있었던 이유는 뭘까? 김 목사의 필력 때문인 것 같다. 그는 행동도 말도 스피디하다. 이것저것 재는 사람이 아니다. 스피디한 성격으로 가끔 헛말이 나오고  넘어지는 실수를 하는 때도 있지만 오히려 그것은 그의 솔직한 마음의 결과인 것 같아 모두 좋게 생각한다. 이 책은 전체 4부로 이루어져 있다. 각 부와 장을 소개하는 것만으로도 그의 전도 행전을 엿볼 수 있기에 충분하다. 소개하면 세부 부절은 이렇게 되어 있다.

 

1부 ‘내가 이 복음을 가장 사랑하기에’는 1장 나는 빨간 수첩이 좋다. 2장 침묵하지 말고 일단 외쳐라. 3장 전도 열정만이 생명을 살린다. 2부 ‘죄인을 부르러 오신 예수님처럼’에는 4장 성령 받은 전도자의 전도 스타일. 5장 전도는 오직 발로 뛴 만큼 된다.  6장 기도로 전도하는 '한 바퀴 기도' 3부 ‘전도하는 이 기쁨을 모두 알도록’에는 7장 뜨거운 전도자가 전도자를 낳는다. 8장 이대로 따라하면 누구나 전도한다. 9장 모든 설교의 결론은 언제나 전도. 4부 ‘행복한 전도자, 다 되게 하소서’에는 10장 전도의 꽃은 셀 교회가 피운다. 11장 도시 지형을 바꾸는 전도의 능력. 12장 3%의 영향력으로 도시를 거룩하게.

 

각 부와 장의 제목에 김 목사의 전도 메시지가 다 담겨 있다. 이 중 특별히 기록해 둘 것은 전도 기록을 위해서 빨간 수첩을 준비하는 것. 굳이 빨간 수첩을 고집하는 이유는 예수님 십자가 보혈을 연상하게 하고 또 영적 죽음에 대해 경고하기 위해서라고 한다. 또 김 목사의 '한 바퀴 기도'는 벌써 유명하다. 그의 교회가 있는 안산 전 지역을 관공서 아파트 단지 등을 한 바퀴 돌며 이름을 대고 그들의 영혼구원과 평강을 위해 기도한다는 것이다. 이렇게 하다 보면 짧아도 두 시간 많게는 네 시간이 걸릴 때도 있다고 한다. 그는 개인 전도도 중요하지만 단체전도 집단전도를 위해 교회 시스템을 셀(Cell) 체제로 바꾸어 교회가 더 건강하게 되었다며 셀 교회로의 전환을 권장하고 있다.

 

그는 복음은 어떤 사람도 변화시킬 수 있는 능력이 있다는 것을 확신하고 있다. 그래서 그가 주창하고 있는 것이 3%의 신실한 크리스찬이 97%의 시민을 책임진다는 '3%의 영향력' 사역을 들 수 있다. 하나님께서도 구약에서 선민 이스라엘 백성들과 관계하면서 남은 자 사상을 말씀하셨고, 영국의 역사가 아놀드 토인비도 그의 책 <역사의 연구>에서 창조적 소수를 말한 바가 있다. 3%가 97%를 책임진다는 것은 3%의 염분이 바닷물을 썩지 않게 한다는 현상에서 원용한 것이지만 이미 성경과 역사에서도 다루어 검증된 법칙이기도 하다. 3%의 진실한 그리스도인을 만들어 내는 작업이 그래서 중요한 것이다.

 

안산 동산고등학교는 이미 명문 미션 스쿨로 자리잡았다. 믿는 자의 자녀들이 그 학교에 가고 싶어 중학교 때 학교 소재 도(道)인 경기도로 전학을 간다는 말들을 많이 들었다. 이 학교는 오로지 김 목사의 의지의 산물이다. 본인이 고학하며 공부한 과거 경험도 어느 정도 반영되었을 것이다. 그는 이 학교에서 충실한 그리스도인으로 단련 받은 학생들이 대학을 졸업하고 사회 각계각층의 지도적 자리에 앉아 그 자리를 하나의 선교 센터로 생각하고 복음을 전하면서 맡은 바 일에 최선을 다 할 때, 강건한 주님의 나락가 될 것이라는 확신 속에 이 학교를 경영하고 있다.

 

마지막으로 안산동산교회의 내외적 사역을 소개함으로 서평을 마치려고 한다. 이 교회의 사역은 다른 많은 교회와 목회자들에게 큰 도전을 줄 것이다. 교회 내 사역으로 동산교회의 감성동산 사역이 있다. 사랑나눔 36.5도, 21일 성품 캠페인, 감성리더십센터, Thanks Giving, NGO박람회 등은 교회 안에서 성도들을 대상으로 펼치는 사역이다. 또 교회 밖 사역으로는 해드림은행, 아워홈(Our-home), 러브 박스(Love-box), 러브미(Love-米), 푸른꿈 학교, 해피 700 등의 일들이 지역에 빛을 발하고 있다. 어느 교회든 벤치마킹해도 좋은 사역들이란 생각이 든다.

 

김 목사는 교회를 세상과 분리해서 생각하고 운영해야 함을 강조하고 있다. 세상 사업은 이익 창출에 목적을 두지만 교회에서 하는 주님의 일은 손해 보면서 해야 한다는 것이다. 한국 교회가 자본주의 논리에 입각해서 숫자 놀음에 젖어 있는 현금, 그의 주장은 상쾌함을 가져다준다. 그는 안산동산교회의 장애인 작업장을 그 예로 들고 있다. '푸른동산 보호작업장'이 그것인데, 여기엔 50 여명의 장애인들이 천연 비누를 만들어 판매하고 있다고 한다. 그런데 어떻게 된 것이 많이 팔리면 팔릴수록 이문이 남는 것이 아니라 손해를 본다는 것이다. 제조에 들어가는 원가가 판매가보다 더 많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이 작업장을 기쁨으로 운영하는 것은 이것이 하나님께서 하라고 명령하시는 일이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많은 교회와 목회자들이 깊이 새기면서 받아들여야 할 대목이 아닐 수 없다.

 

교계에 안산동산교회가 있다는 것이 자랑스럽다. 큰 교회여서 자랑스러운 것이 아니다. 김인중 목사의 참된 목회관이 전 성도들과 어우러져 지역에 선한 영향을 끼치며 하나님의 이름을 빛나게 하기 때문에 자랑스럽다. 세상 논리가 교계를 지배한 지 오래이고 사랑을 말로는 풍성하게 외치지만 실천에 옮기는 데는 인색한 교계이다. 또 모였다 하면 편 가름이요 주도권 다툼이어서 세상 사람들의 비난을 사고 있다. 이 모든 것들이 교계의 장래를 어둡게 만들고 있다. 그렇지만 한 편 김인중 목사가 이끄는 건강한 교회 안산동산교회와 같은 교회가 있다는 것은 어둠 저편의 한 줄기 빛으로 작용한다. 빛이 있다는 것은 희망이 있다는 말이다. 김인중 목사의 <성령에 붙들린 전도자>에서 이 빛의 구체적 내용을 살펴보기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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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교자 문준경의 신앙과 삶
주승민 지음 / 킹덤북스 / 2010년 10월
평점 :
품절


주승민 교수는 교회사(敎會史)를 연구하는 중진학자이다. 그가 2000년에 공간한 바 있는 도서 제목 <초대교회 집중탐구>에서 알 수 있듯이, 주로 초대교회를 중심으로 서양교회사를 연구해 왔다. 그런데 언제부턴가 우리가 살고 있는 이 땅의 교회 역사에도 관심을 두고 간간히 글을 쓰는 것 같더니 1년 전에 <순교자 문준경의 신앙과 삶>이라는 묵직한 책을 출간했다. 

 

내가 이 책을 입수한 경로는 좀 특이하다. 교회사를 공부한 사람으로서 관심을 두고 있는 학자의 논문이나 책은 즐겨 읽는 편인데, 주 교수의 이 책은 며칠 전에야 입수했다. 출간에 대한 정보는 갖고 있었는데 구입과 읽기에 게으름을 피운 것이다. 우리 지역에 한 전도 훈련 프로그램이 석 달 과정으로 진행되고 있다. 거기에 가니 주 강사가 훈련에 참석하는 사람들에게 추천하는 도서라며 주 교수의 이 책을 한 권씩 나누어 주었다.

 

순교자는 믿음을 위해서 목숨을 던진 사람을 일컫는 말이다. 이 책 표지 하단에도 박혀 있듯이 영어 'martyr'는 '순교자'를 뜻한다. 그런데 대부분 하나님을 증거하다가 목숨을 잃은 사람을 지칭할 때 이 단어를 사용하고 있다. 'martyr'는 원래 '하나님에 대해 증언하다'는 뜻으로 사용되었다. 313년 이전 초대교회 때, 로마 사회에서 하나님을 증언하는 것은 죽는 것을 의미했다. 그래서 '순교하다', '순교자' 등으로 뜻이 확장된 것이다.

 

본서 추천의 글에서 주남석 기성 총회장도 말했듯이 장로교의 주기철 손양원 목사와 같은 순교자를 우리 교단도 가질 수 있어 든든하다. 주 교수가 책의 처음부터 끝에 이르기까지 강조한 ‘순교자 영성’을 되새기며 읽어 볼 일이다. 주 교수는 헌정사에서 "이 책을 사랑하는 성결교회와 한국교회에 헌정합니다."라고 밝힘으로써 우리 교단뿐만 아니라 교계에서 널리 읽히기를 기대하고 있다.

 

이 책은 모두 11개 장으로 이루어져 있다. 책 앞에 지구촌교회 이동원 목사 외 7명의 ‘추천의 글’이 올려져 있다. 우리 교단(기성)을 넘어 타 교단의 중진 목회자들의 추천사로 볼 때, 문준경 전도사를 교단을 넘어 우리 기독교 전체의 인물로 자리매김하고 싶어 하는 저자의 의도가 엿보인다. 추천의 글을 보내 준 목회자들도 이런 저자의 의도에 호응해서 문준경 전도사는 우리 기독교사에 빛날 순교자라는 것을 함께 밝혀주고 있다.

 

문준경 전도사가 우리에게 알려지기는 오래지 않다. 그가 1891년에 태어나 1950년에 순교했으니 59세의 일생을 살다가 간 사람이다. 그의 사역에 비해 널리 알려지지 않은 것은 여러 가지 이유가 있겠지만 한반도 최남단 신안군이라는 지방에서, 그것도 여성의 몸으로 주님의 일을 한 것이 큰 이유가 되지 않았을까 싶다. 지금은 기념사업회를 중심으로 순교 기념관을 건립하고 학술 세미나를 개최하는 등 대대적인 사업으로 그의 업적을 기리고 있다.

 

하지만 솔직히 말해서 순교자 문준경을 역사적 인물로 자리매김하는 데는 많은 어려움이 따른다. 그가 남긴 기록이라고는 세 개의 짧은 글밖에 없다(‘임자면 교회 부흥기’ 「활천」1937, 84. ‘후증도교회 성전 건축기’ 「기쁜소식」1937, ‘나의 구원과 봉사’ 「기쁜소식」1938). 문 전도사에 대해 글을 쓰고 싶어 하는 사람들이 공통적으로 하는 말이 자료의 결핍을 들고 있다. 이런 좋지 않은 조건에도 주 교수는 발로 뛰며 자료를 발굴하고 증언을 듣고 현지를 방문하는 등 최대한의 노고를 아끼지 않았다. 그런 수고가 중후한 한 권의 문 전도사에 대한 책을 가능하게 한 것이다.

 

책 뒤에 부가(附加)되어 있는 참고 도서를 보니까 학술 논문뿐만 아니라 지방 군지(郡誌), 개 교회사, 대학원 석사 논문까지 소개되어 있었다. 자료가 될 만한 것은 작은 것이라도 관심을 두고 모은 학자의 마음이 읽혀졌다. 그렇다고 이 책을 온전한 학술 서적이라고 보기는 힘들 것이다. 먼저 각주 처리가 되지 않았으며, 또 저자의 상상력이 많이 동원되어 문 전도사를 형상화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것은 그야말로 문준경을 대중적으로 알리는 데 일차적 목적을 둔 서적이라고 보면 좋을 것 같다.

 

앞으로 어떤 자료와 증언이 더 나올지 모르겠지만 이 책으로 문준경의 업적과 순교 나아가 역사적 인물로 보게 하는 데는 필요충족 조건이 어느 정도 갖추어졌다고 생각한다. 총 11개 장으로 구성된 짧지 않은 글이 그것을 말해 주고 있다. 물론 11개 장 중 1장부터 6장까지가 문준경이 순교하기까지의 일대기에 해당하고 7장은 김준곤 목사의 추모 글이며 나머지 8장에서 11장까지는 문준경에 대해 주 교수의 생각을 다듬은 글들을 모았다.

 

평이한 글에 필요한 관련 사진까지 요소요소에 삽입되어 있어서 읽기에 아주 편했다. 이런 사진을 일일이 찾아 책에 올린다는 것도 많은 시간과 정성을 필요로 할 것이다. 주 교수의 학자적 성실성을 읽을 수 있는 대목이다. 이 책이 가능한 한 많은 사람들에게 읽혀 문준경의 순교적 영성이 면면히 이어지면 좋겠다는 바람을 독자의 한 사람으로서 가지게 된다. 기독교계가 침체 일로를 걷고 있는 것은 하나님 앞에 자신을 온전히 내어 놓지 않은 데서 기인한다고 본다. 그런 상황에서 자기 목숨을 내어 놓는 순교적 영성만큼 우리의 신앙을 강고하게 하는 것은 없을 것이다. 저자도 이런 바람으로 이 책을 상재(上梓)하지 않았나 싶다.

 

이 책에서 나는 많은 것을 얻을 수 있었다. 무엇보다도 문준경을 우리의 진정한 신앙 선배라는 존경의 마음을 갖게 되었다. 좋은 믿음의 선진이 있을 때 좋은 신앙인들이 많이 나올 수 있는 것이다. 거기에 덧붙여 저자의 학문적 진지함과 성실성 그리고 작은 것에까지 독자를 배려하는 마음을 읽을 수 있어서 기뻤다. 좋은 저자는 늘 독자의 형편을 고려하고 함께 하려고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몇 가지 지적 사항도 없지 않다.

 

먼저, 이 책이 대중을 대상으로 읽게 할 목적으로 쓰였다고 해도 한 인물에 대한 역사적 평가의 의미도 없지 않은 만큼 학술서적과 전혀 무관하다고는 할 수는 없을 것이다. 그런 점에서 고유 명사 뒤에 붙이는 호칭을 통일시킬 필요가 있다. 어떤 때는 '~님' 자를 붙였다가 또 다른 곳에서는 붙이지 않는 등 통일성이 결여 된 곳이 산견(散見)된다. '~님'자를 생략하고 그냥 '목사', '전도사' 등의 단어를 쓰도 무방할 것이다.

 

한 사람에 대해 연구할 때 주의해야 할 부분이 객관적인 눈을 갖고 보는 것이다. 문준경 전도사에 대해서도 이 눈은 동일하게 적용된다. 그에 대해 지나친 폄하를 피할 일이지만 사실을 무시한 과도한 평가도 피해야 한다. 가령 이런 경우가 이에 해당하지 않을까 싶다

 

"그러나 그녀(문준경)가 영성면에 있어서나 실천면에 있어서 당시 같은 교단에서 섬기던 이들 중 탁월해 육지의 어느 큰 교회에서 청빙이 있었을 것이 분명한데 다 포기하고 섬 선교의 전문가로 발돋음함에는 그녀가 얼마나 희생적인 사역자였는가를 가늠케 하여 결국 그녀의 회심이 철두철미했음을 미루어 알 수 있다."(이 책 74쪽)

 

물론 그럴 수도 있었을 것이다. 하지만 이런 주장에는 반드시 논거가 있어야 한다. 그렇지 않을 경우 미화의 함정에 빠져 문 전도사에게도 또 저자에게도 나아가 우리의 기독교사에 결코 득이 되지 않는다. 나의 소견으로는 일제시대 여성 사역자로서 아무리 탁월한 능력과 실력을 소지하고 있었다고 해도 뭍의 큰 교회에서 그런 여성 사역자를 담임으로 청빙하는 일은 쉽지 않았을 것으로 생각한다. 이것은 여성이 목사 안수를 받고 있는 현재의 관점으로 과거를 보는 데서 기인하지 않았나 싶다.

 

문준경 전도사의 순교 상황에 대해 두 이론(異論)이 있다는 것을 저자는 친절하게 소개하고 있다. '죽창에 의해 숨을 거두게 되었다는 주장'과 '가슴 부위에 총탄을 맞고 숨을 거두었다는 주장'이 그것이다. 주 교수는 이 두 주장 중 전자를 사실에 부합하는 것으로 기술하고 있다. 그 근거로 두 목사의 증언을 들고 있다. 그럴 수도 충분히 있을 것이다. 하지만 거기에 덧붙여 저자는 상상의 날개를 펼친다. 일제시대 총탄이 부족한 것을 생매장하거나 죽창 등으로 사용해 죽인 예를 들고 있다. 그런 전통으로 공산주의자들이 죽창을 사용해서 문준경을 죽였다고 보는 것이다.

 

이 주장에 약간의 비약이 있을 수 있다는 것을 먼저 지적해야 하겠다. 물론 그럴 수도 있었을 것이다. 하지만 일제시대 일본의 만행과 6.25전쟁 때의 공산군의 만행을 억지로 등치시키는 측면이 없지 않은 것 같다. 또 죽창이냐 총탄이냐를 굳이 선택해야만 하는 것인가도 의문이다. 6.25를 소재로 한 전쟁 소설에 자주 등장하는 바와 같이 총과 나무 죽창 등의 수제(手製) 무기를 병행해서 사람을 죽이는 경우도 많았다. 역사는 사실(事實)에 근거해야 하고 사실(史實)을 밝혀나가는 작업임을 고려할 때 치밀한 논구는 필요하나 선택이 아니라 종합해야 할 때도 많다는 것이 역사가 우리에게 주는 또 하나의 교훈이다.

 

이 책은 대중성을 어느 정도 확보하고 있기 때문에 앞으로 판을 거듭하여 출판될 것으로 예상된다. 그런 점에서 아주 사소한 문제지만 몇 곳 정정할 곳을 지적해야 할 것 같다. 재판 때 참고하기 바라는 마음에서이다. 괄호 안의 숫자는 페이지를 가리킨다.

 

배제학당-배재학당(34), 동거동락-동고동락(42, 110), 시각 장애자-시각 장애인(46), 배운데로-배운대로(64), 비로서-비로소(92), 감래-감내(120), 김기약-감기약(141), 선상-선산(144), 9홉 켤레-아홉 켤레(149), 무려 6억 5천원-무려 6억 5천만원(167), 전 인구의 40% 정도-전 인구의 25% 정도(169), 대표의장-대표회장(185), 재단-제단(236) 등

 

 몇 가지 지적을 했지만 이것이 책의 장점과 가치를 낮추게 하지 않는다. 이 책이 보다 많은 사람들에게 읽혀서 우리의 삶이 또 우리의 믿음이 더욱 견실해지기를 바라는 마음에서 한 충언이 될 것이다. 동서양을 넘나들며 좋은 학문적 열매들을 맺어 독자들의 욕구를 채워주고 있는 저자 주승민 교수에게 찬사를 보내며 건승을 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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