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침니스의 비밀'을 읽은 독자라면, 눈부셨던 주역들만이 아니라 개성있는 조역들도 기억할 것이다. 말괄량이 아가씨 번들, 순둥이 청년 빌 에버슬리, 침니스의 주인이자 번들의 아버지인 캐터햄 경, 외무장관이라는 막중한 자리에 있으나 눈이 튀어나와 별명이 '대구'인 빌의 상관 조지 로맥스, 그리고 말없는 바위같은 사나이 배틀 총경...
침니스에서 다시 살인사건이 일어나고, 지난 사건의 인물들이 다시 등장한다. 이번 사건의 주인공은 활기넘치는 침니스의 아가씨 번들, 번들은 사건을 조사해나가면서 '세븐 다이얼스'라는 베일 속의 비밀결사와 부딪히게 된다. 그들은 누구이며 그 목적은 무엇인지, 잇다른 살인사건의 희생자인 젊은이들은 누구에 의해 왜 살해된 것인지...
전편과 마찬가지의 모험 미스터리이지만, 아가사 크리스티는 다소는 공정성 논란이 있는 트릭을 숨겨두었다('애크로이드 살인사건'보다는 훨씬 낫지만..). 이 작품 역시 나로서는 미스터리의 재미보다는 드라마의 재미를 많이 느끼면서 읽었다. 자청해서 모험에 뛰어드는 영국 귀족계급의 젊은이들의 모습을 보면 이런 식의 사회 분위기로 인해 영국에서 모험스릴러라는 장르가 활발했다는 설명도 납득이 간다.
지난번 침니스의 비밀에서 앤터니와 버지니어의 로맨스가 당사자들이 '너무 멋있어서' 두근거렸다면, 번들과 빌의 로맨스는 친근감이 가서 또 나름대로 즐겁다. 번들의 아버지 캐터햄 경과 조지 로맥스라는 캐릭터에도 애정이 간다. 캐터햄 경과 번들 사이의 대사가 아주 재미있었고, 조지 로맥스의 청혼 부분에서는 배를 잡고 웃었다. 앤터니와 버지니어의 후일담이나, 번들의 개구진 동생들 이야기도 궁금했는데 그런 부분은 전혀 없어서 약간 유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