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재 결혼 시키기
앤 패디먼 지음, 정영목 옮김 / 지호 / 2002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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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렸을 적 친하던 이웃집에 놀러가서 그 집 책꽂이의 책을 정신없이 읽고 있던 중, 주변이 뭔가 시끌시끌했다. 그러던지 말던지 여전히 책에서 눈을 떼지 않고 있던 나, 뭔가 한바탕 소동 끝에 다시 현관문을 들어서신 그집 아줌마는 '얘, 너 책보다가 타죽겠다. 우리 동에 불 났었단 말이야. 놀라서 우리 식구 다 뛰어나갔는데 넌 그 소리도 안들리던?'하고 눈이 휘둥그래져서 말씀하셨다. 그후 며칠동안 그 얘기는 이웃의 화제였는데, 아줌마에게 그 얘기를 전해들으신 우리 엄마는 워낙 쟤는 그런 애려니..하는 눈으로 나를 한번 보시고는 별 말씀이 없으셨다.

하긴 우리 아빠의 어릴적 소원은 '사방이 책으로 둘러싸인 방'에서 사는 거였다 하니, 철저하게 문과형인 남편과 딸에 대해서 또 나름대로 이과형인 엄마는 그냥 그러려니로 일관하셨던 거 같다. 무슨 책을 읽던지 자유방임이셨던 부모님 덕에 이제까지 읽을거리에 대해 탄압받아본 일이 없으니, 그런 의미에서는 나도 상당한 행운아다.

그렇게 나름대로 '한 책'한다고 자부하며 살아왔건만, 강호는 넓고 고수는 많은데다, 인터넷이라는 매체를 통해서 그 고수들의 면면을 들여다보게 된 후 그 자부심은 많이 줄었다. 게다가 이 <서재 결혼시키기>를 읽고 나니 뭔가 명함도 못 내밀겠다.라는 마음이 들었다고나 할까.

책을 좋아하는 사람 입장에서 보면 저자인 앤 패디먼은 정말이지 부러운 환경에서 자랐다. 글쓰는 것을 업으로 하는 부모님 밑에서 태어나서 문학적 분위기로 가득찬 가정에서 또래의 오빠와 함께 책을 읽으면서 자랐고, 성장해서도 역시 글 쓰는 것을 업으로 하는 사람이 되어 비슷한 일을 하는 사람을 배우자로 만났으니, 평생 책과 말 그대로 밀접한 삶을 살아가고 있는 셈이다.

그런 저자가 평생 책을 읽으면서, 모으면서, 혹은 버리면서 겪었던 이야기들을 모아 놓은 이 책은 그래서 책을 사랑하는 사람들에게는 상당한 동질감을 불러 일으킨다. 메뉴판의 오타를 잡아내는 패디먼 가족의 모습을 읽으면서는 롯데월드 안내판의 오타를 잡고 문장을 수정하던 나와 내 친구의 모습이 생각나서 엄청나게 공감했고, 남편과 저자의 책을 합치면서 생겨나는 여러 에피소드들을 이야기하는 부분에서는 저런 식의 공감대를 형성할 수 있는 부부의 모습이 무척이나 부럽기도 했다. 책을 크기와 색깔별로 구분해 꽂은 인테리어 디자이너에 대해 모두 열받아하는 부분에서는 친구 하나가 결혼한 후 그 어머님이 사위의 책 때문에 집안이 지저분하고 책은 인테리어에 도움이 안되니 내다버려야 한다고 하셨다는 이야기를 듣고 나 자신이 경악했던 것이 떠올랐다.

물론 책과 관련해서 저자가 살고 있는 미국의 상황과 우리 나라의 일반적인 상황이 많이 다르기에 나타나는 차이점들도 있지만, '책에 대한 책'이라 할 수 있는 이 책은 충분히 애서가들의 사랑을 받을 만 하다. 서점이건 도서관이건 책이 많은 곳만 가면 가슴이 두근거리는 당신, 오늘도 습관처럼 인터넷 서점에 접속해서 아이쇼핑을 하면서 서평을 클릭해대는 당신(바로 내 모습이기도 하다)에게 추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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