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뮤지컬 오페라의 유령 - 감동은 이렇게 완성된다
설도윤 지음 / 도서출판 숲 / 2009년 11월
평점 :
내가 가지고 있는 취미 중에서 가장 오래되고, 앞으로도 변하지 않을 취미를 고르라면 진부하지만 역시 ‘독서’라고 할 거다. 그만큼 책이라는 매체 자체에 대한 애착이 강해서, 좋아하는 분야를 다룬다고 해도 ‘여행을 다룬 책’이건 ‘역사를 다룬 책’이건 ‘음식을 다룬 책’이건 ‘여행’과 ‘책’, ‘역사’ 와 ‘책’, ‘음식’과 ‘책’ 양쪽에 모두 방점이 찍히는 편이다. 그런데 생각해보니 안 그런 분야도 있기는 하다. ‘축구를 다룬 책’이라던가 ‘뮤지컬을 다룬 책’ 같은 경우는 책, 보다는 ‘축구’랑 ‘뮤지컬’에 확 무게가 실린다.
남들처럼 1년에 한 두 번 보는 게 전부였던 뮤지컬을, 갑자기 굉장히 많이 좋아하게 되고, 많이 보게 되고, 관심을 가지게 되면서 뮤지컬에 관련된 책 역시 이것저것 뒤지게 되었고, 그러면서 읽게 된 이 책. 뮤지컬 입문자라면 피해갈 수 없는-그리고 뮤지컬과 상관없는 사람이라도 한 번쯤은 접하게 되는- ‘오페라의 유령’에 대한, 그것도 오페라의 유령이라는 작품 전반에 대한 상세한 소개와 함께 이 작품이 우리나라에서 어떻게 만들어졌는지를 제작자가 직접 말해주는 책이니 나 같은 입장에서는 재미가 없기가 오히려 힘들다. 읽는 내내 두근거렸다.
축구팬치고는 내 축구 취향이 K리그에 확 기울어 있는 것처럼, 뮤지컬을 좋아해보니 뮤지컬팬으로서의 내 취향도 또 라이센스로 확 기운다. 제아무리 잘 만들어도 라이센스가 오리지날만 못하다는 의견을 가진 이들이 많은데 비해서, 나는 우리 배우들이, 우리 말로, 우리 무대에서 재현해낸 라이센스 무대에 훨씬 애정이 간다. 오페라의 유령 역시 몇 년 전 그 유명한 런던의 허 메이저스티 극장에서 봤던 오리지날 무대보다, 샤롯데 씨어터에서 만났던 우리 무대가 적어도 내게는 더 좋았다. 2002년 엘지아트센터의 초연도 궁금해져서 CD까지 사서 듣고 있던 바, 이 책을 읽으면서 그 초연의 과정을 같이 더듬어 볼 수 있어서 즐거웠다.
오페라와 마찬가지로, 뮤지컬도 종합예술로 분류되어 마땅하다. 그건 그만큼 한 작품을 올리기 위해 많은 과정과 인력이 개입한다는 이야기이고, 그만큼 어려운 일도 많다는 이야기다. 그렇기 때문에 그 작품이 제대로 완성되어서 올려졌을 때의 감동은 더한 거겠지. 그 모든 우여곡절을 거쳐 한국판 오페라의 유령 첫 공연이 성황리에 끝나는 부분을 읽을 때는 내가 같이 가슴이 뜨거워졌다. 그렇게 시작했던 공연이, 2009년에 다시 막을 올려 연일 성황을 이루고 있다는 사실도, 그 극장에 나도 가끔 같이 앉아있을 수 있다는 사실도 새삼 같이 고맙게 느껴졌고. 2005년에 나온 책을 2009년 오페라의 유령 재공연과 함께 다시 손질해 내놓은 책이라, 2005년 이후 이번에 다시 오페라의 유령을 올리면서 느낀 저자의 감상이 더 덧붙여졌다. 맨 땅에 헤딩하는 것처럼 오페라의 유령을 한국에 들여왔던 때에 비해, 그 몇 년 동안 대한민국 뮤지컬 산업이 얼마나 성장했는지에 대한 저자의 흐뭇함도 느껴지고, 2009년에 새로이 캐스팅된 배우들에 대한 이야기도 있어서 나처럼 이번 공연을 접한 이들에게는 더 반갑다.
그동안 뮤지컬 책들을 뒤져보니, 유명 뮤지컬 작품을 주르르 소개하는 책들은 이미 많이 나와 있는데 비해 한국 뮤지컬을 이야기하는 깊이 있는 책들은 만나기가 어려웠다. 뮤지컬과 마찬가지로 책도 물론 시장성을 생각해야겠지만, 뮤지컬 팬들이 늘어난 지금 이 책처럼 단일 작품에 대해 이야기하는 책이 많아졌으면 좋겠다. (국민뮤지컬의 호칭을 얻은 ‘사랑은 비를 타고’ 라든지, ‘노트르담 드 파리’ 라이센스판 같은 경우는 충분히 가능하지 않을까?)
솔찮은 시간과 돈을 들이면서, 뮤지컬을 왜 보냐는 질문을 받는다면 그 답으로 말하고 싶은 얘기가 이 책의 프롤로그에 있었다. “뭐 그리 좋은 것도 싫은 것도 없는 무미건조한 삶에 새로운 활력이 찾아와 가슴 저 밑에서 꿈틀대는 것과 합류하는 듯”(7쪽)해서 나는 뮤지컬을 본다. 꿈꾸는 자들이 만들고, 그리고 또 다른 이들을 꿈꾸게 하는 매체, 그 뮤지컬의 꿈이 어떻게 이루어지는지를 살짝 엿볼 수 있는 책이다.